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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재상을 뽑는 법

Joyfule 2015. 6. 19. 11:45

 


[고전명구 262] 훌륭한 재상을 뽑는 법

 

훌륭한 재상을 뽑는 법

 

평소에는 그가 어떤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지 살펴보고,
가난할 때에는 그가 어떤 것을 취하지 않는지 살펴보며,
처지가 궁할 때에는 그가 어떤 일을 하지 않는지 살펴보고,
현달할 때에는 그가 어떤 사람을 추천하는지 살펴보며,
부유할 때에는 그가 얼마나 남에게 베푸는지 살펴보는 것이 실로 사람을 감별하는 대원칙이다.

 

居視其所親, 貧視其所不取, 窮視其所不爲, 達視其所擧,
거시기소친, 빈시기소불취, 궁시기소불위, 달시기소거,
富視其所與, 實爲相人之大法.
부시기소여, 실위상인지대법.


- 최한기 (崔漢綺, 1803~1877)
「측인문(測人門) 5, 접인운화(接人運化)」
『인정(人政)』 권5


조선 후기의 실학자 최한기는 인사(人事) 행정 이론서인 『인정(人政)』이란 책에서 위 5가지 덕목을 인재 감별의 대원칙으로 언급했습니다. 사실 위 덕목들의 출처는 『사기(史記)』 「위세가(魏世家)」로, 본래는 나라의 재상을 뽑는 덕목이었는데 최한기는 이를 모든 인사에 적용할 수 있는 광범위한 덕목으로도 보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사기』의 이야기를 한번 들여다보겠습니다. 중국 전국 시대(戰國時代) 위(魏)나라의 기틀을 잡은 명군(名君)인 문후(文侯)는 위성자(魏成子)와 적황(翟璜) 중에 누구를 재상으로 삼을지 고민하다가 이극(李克)에게 자문을 구하였습니다. 이때 이극이 재상을 감별하는 기준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위 5가지 덕목이었죠.

 

이에 따라 결국 위성자가 재상이 되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적황은 왜 자기가 위성자에게 밀렸느냐며 이극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극이 “위성자는 자신의 봉록 중 9할을 남에게 베풀었고, 그 덕분에 복자하(卜子夏), 전자방(田子方), 단간목(段干木)의 세 현인(賢人)을 초빙할 수 있었습니다.

임금께서는 이 세 사람을 모두 스승으로 삼았고, 반면에 그대가 추천한 사람들은 모두 그냥 신하로 삼았습니다. 그러니 그대가 어찌 위성자와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적황도 승복하지 않을 수 없었죠.

 

이 중에서 후대인들이 가장 모범으로 삼았던 덕목이 바로 “가난할 때에는 그가 어떤 것을 취하지 않는지 살펴보며, 처지가 궁할 때에는 그가 어떤 일을 하지 않는지 살펴본다.”입니다. 사람은 아무래도 가난하거나 처지가 어려울 때 제일 구차해지며 나쁜 유혹에도 빠지기 쉬운 법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해도 부정(不正)한 것을 취하지 않고 처지가 어려워도 불의(不義)한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일국의 재상으로 삼을 만한 위인(偉人)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옛사람들은 이 덕목을 ‘청렴(淸廉)’이라 부르며 숭상했습니다.

 

재상은 이른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라고 합니다. 그만큼 중요하고도 막강한 위치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재상을 뽑는 일은 다른 벼슬자리와는 차원을 달리했죠. 고대에는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 점을 쳐서 길흉(吉凶)을 살폈는데, 재상을 뽑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점을 쳤으므로 이른바 ‘복상(卜相)’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사람의 판단력에만 오로지 의존하지 않고 하늘에게까지 그 가부(可否)를 물었을 정도로 선택을 신중히 한 것이죠. 후대에 재상을 선출할 때에는 고대처럼 점을 치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복상’이라는 말을 써서 그 차별성을 꾸준히 강조하였습니다.

 

근래 들어 우리나라는 옛날의 재상 격에 해당하는 국무총리 선임을 두고 잇따른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위정자(爲政者)들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만, 이제 다시금 새 총리를 뽑아야 하는 시점에서 옛사람들이 어떻게 재상을 뽑았는지 한 번쯤 돌아본다면 무언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한편으로 재상 선출을 하늘에 물었던 고대인들의 신중함도 고려되었으면 합니다. 민심(民心)이 곧 천심(天心)이니까요.
 
글쓴이 : 허윤만(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