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yful 쉰 여섯번째 묵상 겔러리
준비됐나요?
최근들어 가까운 분들의 소천 소식을 들으면서
이제 나에게도 죽음이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분뿐인 시누님이 어제 돌아가셨고
내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십년가까이 방문하시던 회원이
두 달째 방문하지 않아서 무척 궁금했는데
소식을 들으니 두 달전에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다른 어느 때보다도 무심할 수 없는 것은 나이 때문인지....
낙엽을 보며 인생의 가을을 생각하게 되는 계절때문인지....
죽음은 어느 누구에게나 찾아 온다고 말은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와는 무관한, 남의 이야기쯤으로 생각한다.
나는 아직 젊으니까 그날이 아직 많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살고 죽는 것은 내 임의로 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명 주신이도 하나님이시고, 데려가시는 것도 하나님의 뜻대로이다.
태어 날 때는 순서대로 태어나지만, 갈 때는 순서대로 가지 않는다.
아침에 웃고 나간 사람이 오후에 시체가 되어 돌아오는
예측 불허의 일이 세상엔 많이 일어난다.
아기가 태어나려면 엄마의 자궁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하듯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다가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이쪽 방에서 저쪽 방으로 가기위해서는 문을 통과해야하는 것 처럼....
신생아는 엄마 배속에서 나오면 죽는 줄 알고 놀라서 자지러지게 울지만
사실 이 세상은 엄마 배속보다 더 넓고 좋은 아름답고 멋진 곳이다.
우리가 사모하는 천국은 살기 좋다는 이 세상보다 더 아름답고 좋은 곳이다.
거기는 어두움도, 눈물도, 미움도, 근심도, 아픔도 없는 곳,
모든 선함과 아름다움, 사랑과 기쁨, 평화와 하나님의 영광만 가득한 곳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언제 가게될지 모르지만
두려움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죽음에 대한 준비를 잘해야 한다.
준비된 죽음은 놀라지도, 억울해 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임종시에도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들은 남아 있는 가족들을 위로하면서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평온한 모습으로 숨을 거둔다.
누구에게나 오는 죽음이지만 다 같은 모습으로 죽음을 맞는 것은 아니다.
예수없이 살다가 가는 사람들은 임종할때
몸부림을 치고, 눈을 부릅뜨고, 공포심으로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진다고 한다.
자기를 데려가려고 온 악령들이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이 죽음에 임했을 때 그 자세를 보면
성숙한 신앙인인지 아닌지를 알수 있다.
자기를 돌로 쳐죽이는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하늘 영광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며 평화롭게 웃으면서 숨을 거둔
신약시대의 첫 순교자 스데반 집사의 죽음은 모든 성도들의 좋은 본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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