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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承晩 대통령은 1955년 "앞으로 30년 열심히 일하면 우리도 잘 살 수 있다"고 예언했다.

Joyfule 2020. 7. 29. 04:36



李 대통령은 1955년

"앞으로 30년 열심히 일하면 우리도 잘 살 수 있다"고 예언했다. 
 
趙甲濟    
 
 故 金溶植 외무장관의 회고록 '새벽의 약속'(김영사, 1993년)엔 이런 대목이 있다. 1955년 그가 일본 주재 한국 대표부의 대표로 있을 때 진해에서 휴양중이던 李承晩 대통령을 찾아가 업무보고를 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金 대표에게 지시를 내리면서 이를 구술시킨 후 늦여름의 조용한 진해만을 내려다 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자네, 내가 무엇을 기도하는 줄 아는가?"
 李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늘 하나님께, 우리 민족도 다른 민족들 못지 않게 잘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그리고 그런 기회가 올 때에 나로 하여금 알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네"
 
 "각하, 언제쯤 우리도 남부럽잖게 살 수 있겠습니까?"
 "한 30년 걸릴 걸세. 그때까지는 지금처럼 바쁘게 지내야 할 걸세"
 
 金 전 장관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1985, 86년에 李 대통령의 예언을 회상하면서 남다른 감회로써 지냈다고 했다.
 <86년도의 아시안 게임이 서울의 잠실에서 개최될 때, 관람석의 한 모퉁이에서 나는 30년 전 李 대통령이 한 말을 회상하였다>
 
 李承晩 대통령은 독립투사 시절부터 한국인의 저력을 확신했다. 한국인으로선 최초의 박사였고, 미국의 一流대학 3개(조지 워싱턴 대학, 하버드 대학, 프린세튼 대학)를 다닌 그는 엘리트 의식에 함몰되지 않고 민족의 고민과 꿈을 항상 자신의 것으로 느끼면서 살았다.
 
 그는 한국인의 우수한 잠재력을 살리는 길은 언론과 학교를 통한 교육과 각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독립투쟁을 항상 언론과 학교를 통해서 했다. 그는 자신을 민족의 교육자라고 생각했다.
 
 한국의 민중도 자신들에 대한 李承晩 대통평의 이런 호감과 기대를 알고 반응했다. 그에 대한 지식인들의 바판은 거셌으나 국민들의 지지는 절대적이었다. 이 民心이 그를 建國의 지도자로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李承晩과 국민 사이의 義理관계인 것이다. 1945년 직후 지식인들이 하자는대로 했으면 한국은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대중의 지혜가 지금도 좌경화된 한국을 살리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