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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崇美" 아닌 "用美"

Joyfule 2020. 7. 29. 04:30


  • 이승만은 "崇美" 아닌 "用美"
  • 연합뉴스
    입력 : 2007.08.0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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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만은 빈틈이 없고 책략이 풍부한 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우리(미국)를 궁지로 몰아넣었다(월터 로버트슨 극동문제 국무차관보)”

      흔히 이승만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이자 숭미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충남대 차상철 교수는 “반공주의자라는 표현은 맞지만 숭미주의자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지미(知美)나 용미(用美)가 적절한 표현이다”라고 주장한다.

      차 교수는 뉴라이트재단의 주최로 9일 서울 을지로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건국(建國)과 보국(保國): 이승만의 구상과 역할’을 주제로 한 발표를 통해 이승만의 대미외교를 재평가할 예정이다.

      차 교수는 “긴 미국유학과 망명생활을 거치면서 미국이 저지른 기만과 배신, 무관심을 목격한 이승만은 결코 맹목적인 숭미ㆍ친미주의자가 될 수 없었다”고 단정한다.

      이승만은 약소국의 희생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살벌한 국제정치 현실에서 초강대국 미국이 지닌 힘과 영향력을 익히 간파하고 신생 대한민국의 독립과 생존을 담보하기 위해 철저히 미국을 이용했다는 주장이다.

      차 교수는 용미주의자 이승만의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협상을 꼽는다.

      이승만은 험난한 협상과정에서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 고위 정책결정자들에게 과거 미국이 저지른 실책과 배신을 자주 상기시켰다.

      “미국에 대한 우리의 확고부동한 신뢰에도 불구하고 1910년 일본의 한국합병과 1945년 한반도의 양분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과거 두 번씩이나 미국에 배신당했다. 지금의 사태진전은 또 다른 배신을 시사하고 있다”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위해 서울을 방문한 월터 로버트슨 극동문제 담당 국무차관보는 이승만의 날카로운 지적에 얼굴을 굳히고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위해 이승만은 ’벼랑 끝 전략’도 서슴지 않았다. 남한 내 북한 포로 가운데 반공의사를 밝힌 2만7천 여 명을 직권으로 석방한 이른바 ’반공포로 석방’은 이승만의 승부수였다.

      이승만은 미군 감시원을 내쫓으면서 반공포로를 석방했고 휴전을 낙관하던 미국에 한국의 동의 없이는 휴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시켰다. 또 한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보장하지 않는 한 결코 휴전에 동의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1953년 8월8일 서울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가조인된 날 이승만은 “우리는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많은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조약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번영을 누릴 것이며…우리의 안보를 확보해 줄 것이다”라고 감회를 피력했다.

      차 교수는 “이승만에게 한미군사동맹의 체결은 신생공화국의 사활이 걸린 생명줄과 같은 것이었다”며 “이승만의 ’나라 세우기(建國)’와 ’나라 지키기(保國)’가 제공한 단단한 기반 위에서 1960년대 이후 고도성장을 통한 ’나라 키우기(富國)’이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학술회의에서는 ’국가론의 관점에서 본 대한민국 건국의 의의(김영호ㆍ성신여대)’, ’대한민국 건국의 정치외교사적 고찰(김용직ㆍ성신여대)’, ’근대 국가 체제의 막을 올린 건국헌법(강경근 ㆍ숭실대)’ 등 대한민국 건국의 의미를 평가하는 논문 9편이 발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