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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노년의 풍성한 인생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Joyfule 2023. 5. 10. 04:56






    가난한 노년의 풍성한 인생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실버타운은 표정 없는 노인들의 모임이지만 한 꺼풀 걷어내면 굴 속의 개미처럼 수많은 인생철학이 굴러다니고 있다. 어제저녁은 팔십대 말의 노인과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젊어서 가난에서 출발해 치열하게 살면서 나름대로 부자가 됐어요. 좋은 집도 몇 채 만들고 좋은 차도 샀죠. 그러면서 늙어갔어요. 점점 수입이 없어지는 거예요. 삶의 규모를 줄여야겠다고 생각해서 실버타운에 들어갔어요. 생활비가 몇분의 일로 줄어드는 겁니다. 당시 평균 수명이 칠십오세정도였는데 그 정도면 여유 있게 살다가 죽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그런데 착오가 났어요. 현대의학이 사람을 죽게 놔두지 않는 거예요. 담낭 제거 수술도 오전에 가서 하고 오후에 퇴원하는 시대가 됐으니까 말이죠.”

죽을 때 죽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노인의 말이 계속됐다.

“주변을 보면 돈을 벌어 여유가 있던 사람들이 많았어요. 늙기 전에 쓸 만큼 쓰고 살자고 하면서 크루즈 여행도 자주가고 명품들을 사고 그러더라구요.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데 예상외로 수명이 길어지니까 다시 가난해지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이제는 여행중 모텔비 몇 만원도 힘에 겨워 하는 걸 봅니다. 나는 동화속에 나오는 베짱이가 되지 않기 위해 개미같이 긴축을 하고 살았고 비싼 실버타운에서 가격이 저렴한 이 실버타운으로 옮겨왔죠. 벌써 나이 구십인데 아직도 몸이 건강해요. 앞으로 백살을 살지 백이십살을 살지 모르는데 다시 가난으로 가기는 싫어요. 그래서 이 안에서 철저히 절약하면서 살고 있어요.”

늙으면 다시 가난해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돈과 죽음이라는 단어가 나의 머리에 화두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실버타운 나의 옆자리에서 밥을 먹는 잠수부출신 노인은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일흔 일곱살 때 혈압과 당수치가 높고 몸 여기저기가 고장이 났었어요. 평생을 물속 사십미터부근에서 일해서 그렇죠. 그래서 죽으려고 이 실버타운에 들어왔는데 벌써 팔십 중반을 넘었는데 아직 안 죽어져요.”

그가 살고 싶다는 건지 죽고 싶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제저녁 유튜브에서 젊은이들에게 앞날에 대한 조언을 하는 스타강사라는 오십대 여성의 강연을 우연히 들었다. 그녀가 이런 말을 했다.

“젊어서 일정액의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버세요.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면 ‘나는 이제 부자다’라고 선언하고 멈추세요. 평생 돈만 따라가면서 살면 삶이 비루해집니다. 그 시점부터는 돈을 쓰는 걸 배워야 합니다.”

그 말도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죽는 시점까지 번 돈을 남지도 않게 모자라지도 않게 쓰고 가는 일이 쉽지 않은 것 같다. 조병화 시인의 노년의 시를 보면 돈은 다 떨어져 가는데 언제 하늘에서 부르실 거냐고 묻고 있었다. 나는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왔을까. 사십대 무렵 나는 조그만 공책의 첫 장에 ‘고독하게 굶어죽을 각오를 가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문을 써서 매일 읽으며 마음에 새겼다. 항상 마음속에 소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남과 관계를 맺는데 약한 나는 외톨이였다. 주위를 보면 경조사때 북적거리게 하기 위해 사람들은 열심이었다. 나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사람들은 늙어서 다시 가난해 질까 봐 돈 몇 푼 움켜 쥐어진 손을 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모든 게 살자니 문제지 고독하게 굶어 죽을 각오만 가질 수 있다면 자유로울 것 같았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가난했다. 죽은 고모는 어린시절 함경도 회령에서 우리 집안이 제일 가난했다고 얘기했었다. 서울에서도 우리 집은 가난했다. 가난 속에서 성장한 나는 가난이라는 관념이 없었다. 그게 보통의 세상이었다.

죽음이라는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정리할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다석 류영모 선생은 글에서 ‘최후의 행진’을 제시했다. 정말 돈이 없는 상황이 온다면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걸으라고 했다. 노쇠한 몸으로 끝없이 걷다보면 바로 저 세상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비라도 와주면 더 빨리 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저술가였던 스콧니어링은 중환자실에서 각종 튜브를 꽂고 기계음 속에서 죽지 말라고 했다. 자신의 의지로 음식을 끊고 조용히 기다리라고 했다. 자기의 서재에서 글을 쓰다가 죽으라고 했다. 며칠 전 친하던 고교동기가 죽었다. 어제는 알고 지내던 자동차 정비공장 사장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와 같은 나이다. 오늘 아침신문 부고난에는 유명 사진작가의 죽음이 떠 있다. 역시 나와 같은 나이다. 아직 윤기가 남아 있는 낙엽이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것 같다. 쭉정이가 되어 겨울 나뭇가지에서 떠는 것보다 아름다운 퇴장일지 모른다.나는 기도한다.

‘영에 새로운 능력을 더 받아 가난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건 죽음과 가난에 대한 회색빛 얘기가 아니다. 찬란한 노을빛의 진정한 삶에 대한 나의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