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잎 내리는 - 조병화(趙炳華)
가랑잎 내리는
오후의 잡초원 같은 내 가슴에
실망하기 쉬운 엷은 마음을 내리고
흐린 날이 머물렀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 이미 내 것이 아니올시다.
깊은 산중
검은 열매와 같이 남모르게 익어 가는
마음과 마음을 그대로 당신에게 안기기 위하여
우수수 가랑잎 내리는 내 우울이
가슴에 소리없이 고여들어야 했습니다.
당신은 깊은 내 어둠의 거울
밤이 내리면
나 호올로 이 지구 먼 한 자리
남아 있으면
별이 흐리다 개이고
별 처럼
나와 내가 님에 비춰듭니다.
님이여.
우모(羽毛)와 같은 님의 손으로
내 오랜 녹슬은 마음의 유리창을 열어 주십시오.
열린 유리창 안에
나와 가까이 오시어
나에 안겨
님의 비밀을 술술술 이야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사랑을 가난한 나에게 담아 주십시오.
찬 겨울 눈 깊은 한밤중
온 인생이 소리없이 사라지면
검은 장갑을 벗고
아름다울수록 허전해지는 마음의 거울을
이렇게 빈 가슴에 비춰 보는 것을
님은 알으십니까.
행복은 내 것이 아니올시다.
충돌과 인내의 긴 인생을
세월에수레를 몰고
청춘이
사랑이
사업이
모조리 지나간 빈 자국을
이렇게 둘둘둘 굴러내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님이여 보십시오
검은 밤
훨훨 타오르는 마지막 이 가슴의 불꽃
황홀해지는 내 거울에 비춰
이글이글 이글거리는 내 육체를 보십시오.
인생이 지나가면 회상이 남는다.
님이여
가랑잎 내리는 오후의 잡초원 같은
내 가슴에
영 흐리지 않을 마음의 겨울을 비춰 주십시오.
실망하기 쉬운 내 가슴에
영 타오르는 마음이 불꽃을 비춰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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