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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잎 내리는 - 조병화(趙炳華)

Joyfule 2008. 11. 5. 01:58
      
        가랑잎 내리는 - 조병화(趙炳華) 
        가랑잎 내리는
        오후의 잡초원 같은 내 가슴에
        실망하기 쉬운 엷은 마음을 내리고
        흐린 날이 머물렀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 이미 내 것이 아니올시다.
        깊은 산중
        검은 열매와 같이 남모르게 익어 가는
        마음과 마음을 그대로 당신에게 안기기 위하여
        우수수 가랑잎 내리는 내 우울이
        가슴에 소리없이 고여들어야 했습니다.
        당신은 깊은 내 어둠의 거울
        밤이 내리면
        나 호올로 이 지구 먼 한 자리
        남아 있으면
        별이 흐리다 개이고
        별 처럼
        나와 내가 님에 비춰듭니다.
        님이여.
        우모(羽毛)와 같은 님의 손으로
        내 오랜 녹슬은 마음의 유리창을 열어 주십시오.
        열린 유리창 안에
        나와 가까이 오시어
        나에 안겨
        님의 비밀을 술술술 이야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사랑을 가난한 나에게 담아 주십시오.
        찬 겨울 눈 깊은 한밤중
        온 인생이 소리없이 사라지면
        검은 장갑을 벗고
        아름다울수록 허전해지는 마음의 거울을
        이렇게 빈 가슴에 비춰 보는 것을
        님은 알으십니까.
        행복은 내 것이 아니올시다.
        충돌과 인내의 긴 인생을
        세월에수레를 몰고
        청춘이
        사랑이
        사업이
        모조리 지나간 빈 자국을
        이렇게 둘둘둘 굴러내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님이여 보십시오
        검은 밤
        훨훨 타오르는 마지막 이 가슴의 불꽃
        황홀해지는 내 거울에 비춰
        이글이글 이글거리는 내 육체를 보십시오.
        인생이 지나가면 회상이 남는다.
        님이여
        가랑잎 내리는 오후의 잡초원 같은
        내 가슴에
        영 흐리지 않을 마음의 겨울을 비춰 주십시오.
        실망하기 쉬운 내 가슴에
        영 타오르는 마음이 불꽃을 비춰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