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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칼럼(17) 리브가의 4가지 아름다움

Joyfule 2009. 8. 27. 08:41

가정칼럼(17) 리브가의 4가지 아름다움


  창세기 24장은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얘기를 다룬 창세기에서 가장 긴 장이다. 이삭이 리브가를 맞이하는 모습은 예수님이 성도를 신부로 맞이하는 모습의 모형이다. 결국 리브가의 아름다움은 성도들이 추구해야 할 아름다움이다. 리브가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1. 순결함의 아름다움(16절)


  얼굴의 아름다움보다 더 중요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믿음으로부터 풍겨 나오는 아름다움이다. 믿음이 있으면 평안하고, 평안하면 행복해 보이고, 행복해 보이면 그 행복이 얼굴도 아름답게 만든다.


  얼굴은 내면의 세계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마음이 거기에 나타난다. 내면의 상태가 건강하면 얼굴도 좋아지지만 내면에 불만이 있으면 아무리 화장을 잘해도 그 불만이 나타난다. 그 불만이 오래 지속되면 어두운 얼굴로 굳어진다. 그래서 링컨은 사람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얼굴을 타고났어도 속에 무엇이 들어있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얼굴이 달라진다. 반대로 좀 못생긴 얼굴을 가지고 태어났어도 살의 질에 따라서 얼마든지 품위 있는 얼굴을 만들 수 있다. 내면의 세계를 밝게 하고 마음에 성스러움과 경건함을 품고 있으면 평화로운 얼굴이 된다.


  성도는 얼굴도 잘 가꾸어야 하지만 모습도 잘 가꾸어야 한다. 사람이 오래 살게 되면 자신의 모습이 만들어진다. 창기는 “나는 창기가 아닙니다.”라고 변명해도 자신이 창기인 것을 숨길 수 없다. 그의 모습 속에 이미 음란함이 배여 있기 때문이다. 창기는 아무리 고상한 옷을 입혀 놓아도 그 모습에서 고상함이 나오지 않는다. 반면에 교회 장로는 “나는 장로입니다.”고 말하지 않아도 대개 장로의 모습이 나타난다. 진실한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면 반드시 순결한 아름다움이 그 얼굴과 모습에 나타난다.


2. 근면함의 아름다움(19절)


  근면함 속에는 무엇보다 소중한 샘솟는 사랑의 의지가 느껴진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선행이 아니라 선행 자체가 몸에 배인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공동체에서 어머니처럼 포근하게 해주는 여성을 보면 외모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남성들은 그 포근함의 마력에 이끌리게 됩니다. 그와 같은 포근함이 있으려면 관심이 있어야 되고, 그 관심을 잘 표현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사람을 위대하게 보이게 하는 것은 특별한 인간적인 능력이 아니다. 그런 능력은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 드러낼 것이 못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오직 겸손한 사랑이다. 그 겸손한 사랑을 구체화시키려면 근면해야 한다.


  근면한 사람은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주님은 도적 같이 오신다고 했지만 열심히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도적 같이 오지 않고 손님 같이 온다. 그런 의미에서 준비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 남편이 귀가할 때 아내가 앞치마 두르고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으로 기쁘게 맞아주면 그것은 천상의 아름다움이다. 건강하려면 보약보다 소화력이 더 중요하다. 보약도 소화할 능력이 있어야 진짜 보약 역할을 한다. 그 소화력도 근면함을 통해 주어진다.


3. 결단력의 아름다움(58절)


  결단력이 어디서 오는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할 때 온다. 한번 선택한 것은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것도 결단력이 좋은 것이고, 그 선택에 헌신하는 것도 결국 결단력이 좋은 것이다.


  어떤 분들은 부부싸움을 하면서 “나는 본래 착한 사람인데 당신하고 결혼한 다음부터 나빠졌다”고 말한다. 그 말은 변명이다. 사실상 좋은 사람은 누구하고 살아도 좋고, 못된 사람은 어디에서나 못되게 준다. 일년에 한번씩 이직하는 사람은 어느 직장에 가도 만족이 없다. 그러면서 변명도 많다. 변명이 많으면 아무리 본인이 부인해도 결단력이 없는 사람이다. 지금보다 좋은 여건이 필요하다고 변명하지 않는 결단력이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


4. 정숙함의 아름다움(65절)


  정숙한 마음과 순종하는 마음은 통한다. 정숙함에 참 자유의 길이 있다. 가정이 어려워지는 가장 큰 이유는 곁눈질 때문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여 부부가 되었으면 다른 여자 및 남자는 보아서도 안 되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사랑은 때로 배타적이다. 그래서 사랑의 속박은 남을 생각하지도 못하게 하고, 쳐다보지도 못하게 한다.


  사랑의 속박은 결코 부자유가 아니다. 스스로 자유를 반납한 것이다. 자유를 기쁘게 반납할 때 진정한 자유가 있다. 진리를 위하여, 양심을 위하여, 하늘나라를 위하여 자유를 속박하는 것은 보다 높은 차원의 자유이다. 나는 중학교 때 졸업을 얼마 앞두고 신이 나서 학교 기물을 크게 훼손한 적이 있다. 그런 자유는 참된 자유가 아니다.


  저항과 항쟁에서는 자유인의 모습을 보이지만 건설하는 데는 자유인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불의와 악한 세력과 독재와 싸우는 데는 명수인데, 건설하고 보호하고 창조하는 데는 실패자가 되는 사람이 많다. 그것은 큰 단점이다. 풀려나는 자유가 아니라 세우고 건설하고 협력하는 보다 차원 높은 자유를 추구하라. 애굽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만이 자유가 아니라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자유이다. 그런 적극적인 의미의 자유는 정숙한 마음과 순종하는 마음에서 얻어지게 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