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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 선교사 이야기 - 닥터 홀의 조선회상

Joyfule 2018. 5. 17. 09:14

  

감동적인 선교사 이야기 - 닥터 홀의 조선회상 

셔우드 홀 지음

  

첫 아이

크리스마스가 어느덧 눈앞에 다가왔다. 해산일이 가까워지자 나는 메리안에게 병원 일을 점점 줄여가도록 했다. 그런데 아기를 낳기 전 어느 날 밤 긴급 환자가 생겼다. 50킬로미터쯤 떨어진 동네의 장폐색증으로 누워 고통당하고 있는 환자였다. 우리는 급히 왕진 준비를 하여 떠났다. 이윽고 수술이 시작되었다. 12센티미터나 되는 매우 탈색된 내장을 꺼냈다가 그걸 다시 뱃속의 제자리에 넣자 등잔을 들고 있던 두 조선인들은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사랑방으로 돌아오자 방안엔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예수를 믿을 때 얻는 새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리하여 또 하나의 전도 지역의 문이 열렸다. 환자가 회복되자 그곳 두 마을에서 교회를 세워달라고 요청해왔다. 우리들은 그 지역에도 정기적으로 의료 사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메리안의 출산은 잘 진행되었고 조선인들이 예견한 대로 아기는 사내아이였다. 부모 노릇이 순풍에 돛단 듯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을 무렵, 해주에는 전에 있었던 동학을 상기시키는 반외국, 반기독교 단체가 활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병원과 학교에 대해 기회만 있으면 우리 선교회의 노력을 나쁘게 평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기 시작하자 조선은 ‘은둔 왕국’에서 ‘허가 왕국’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는 소문이 퍼졌는데, 그것은 허가 없이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중 위생 계몽과 교육을 위해 마을을 찾아다니며 강연회를 열려고 했는데 이 일을 못하게 하는 끝없는 방해에 부딪혔다. 이런 일들은 내게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내가 결핵 요양소를 반드시 설립해야 한다는 마음을 굳히고 있을 때, 미국에서 메리 버버그라는 사람이 죽으면서 조선에 새 병원을 짓는데 쓰라고 유산을 남겼다는 유언 내용을 선교회에서 통지받은 적이 있는데, 유언자의 조건이 공중 위생 교육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로 고심하고 있던 어느 날, 진찰을 받으러 온 환자들 중에서 낯익은 사람을 발견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가 공중 위생 집회를 가지려고 할 때마다 허가를 내주지 않고 항상 우리를 애타게 했던 바로 그 관리였다. 그를 괴롭힌 기침의 이유를 알아내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폐병이었다. 그의 얼굴은 충격과 공포로 굳어졌다. 그는 곧 몸이 마르고 병색이 짙은 소년을 데리고 다시 나타났다. 그가 애지중지하는 외아들이었는데 그 아이는 병균이 폐에만 있는 게 아니라 목의 내분비선까지 감염되어 있었다. “저 아이는 저한테는 금과도 같습니다.”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그는 흐느껴 울었다. “선생님, 그 기독교 신의 신통력을 제발 써주세요. 사람들은 이곳을 ‘구세병원’이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제발 제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네?”

 

이번 일은 그 관리와 아들의 생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보다 큰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우리가 조선에서 결핵과 싸워 이기려면 이들이 치료를 받아 완쾌되어야 했다. 나는 기독교 신자들에게 우리가 성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 조선 기독교인들의 믿음은 산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강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기도의 응답을 많이 보아왔다. 나 자신도 경험상 기도의 힘을 절대로 믿었으며, 덧붙여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각각 알맞은 지성을 주셨기 때문에 이 지성을 닦고 훈련시켜서 지혜롭게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항력이 없고 말라서 가죽만 남은 그 소년을 성공적으로 치료하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소년이 차츰 회복되자 우리는 햇볕을 조금씩 쬐게 처방했다. 이 일광욕은 목의 내분비선에 감염된 결핵을 매우 빠르게 녹였기 때문에 다들 경탄할 정도였다. 소년은 곧 체중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소년의 아버지도 병세가 회복되었다. 어느 사이 소년은 병원의 귀염둥이로 등장했다.

 

하루는 닥터 김이 평소의 침착성을 잃고 흥분한 모습으로 내 사무실로 뛰어들어왔다. 옛날 평양에서 선교 개척을 시작한 우리 부모들을 박해했던 행정관이 이 도시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가 왜 왔는지에 대한 의문점은 곧 밝혀졌다. 장본인이 내 진찰실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는 참으로 놀랍게도 우리의 특별 결핵 환자인 소년의 할아버지였던 것이다! 아들과 손자를 만나고 난 다음 그는 나와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당신은 아마 나를 모르고 있겠지만 나는 당신을 잘 알고 있소. 당신은 전에 내가 죽이려 했던 사람의 아들이오. 당신 부친의 조수였던 김창식도 내 손에 죽을 뻔 했었소. 그 감방에 들어갔다가 죽지 않고 살아나온 사람은 사실 김창식뿐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 기독교를 박해했던 우리들은 점점 세력을 잃은 반면 기독교인들은 매우 강해졌소. 우리 상식으로는, 이제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을 박해하던 사람들에게 보복해야 할 차례요. 그러나 당신네 기독교인들은 내 아들과 손자에게 베풀어 준 것과 같이, 사랑과 친절을 보여주었소. 나는 기독교인들을 존경하게 되었소.”

 

이 일이 있고 난 뒤에는 모두 기쁜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와 그의 아들이 우리와 교회를 보호해주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소년은 빠지지 않고 주일학교에 나왔으며, 그 아버지와 할아버지 역시 환등기로 ‘예수의 생애’를 보여주는 집회에 참석했다. 나는 이러한 일련의 기적들을 조선에 결핵 요양소를 세우려는 나의 꿈을 곧 실현하라는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으로 받아들였다.

 

얼마 후 우리 아들 윌리엄과 많은 조선의 아기들이 함께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 거룩한 세례식이 진행되고 있는 자리에서 갑자기 흰옷 정장을 입은 한 조선 사람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세례를 받고 있는 저 백인 아기가 평범한 보통 아기가 아니라 하락(닥터 윌리엄 제임즈 홀을 중국 발음으로 표기한 조선 이름) 선생의 손자라는 사실을 아는 분들은 얼마나 되시는지요? 인생의 수렁에서 날 꺼내주신 분이 바로 하락 선생이었습니다. 나를 광명의 세계로 구해주신 분이 바로 하락 선생이었습니다.”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가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라는 탄성만이 터져나올 뿐이었다.

 

식이 끝난 후 우리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기쁘게 인사를 나누었다. 아버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윌리엄은 언제나 그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내가 이제 시작하려는 사업을 나의 아버지, 윌리엄의 할아버지가 축복해 주시는 것 같았다. 짧았지만 선교 사업에 일생을 바쳤던 아버지께서 내 갈 길을 다져주셨음을 알 수 있었다.

***

그 이후 닥터 셔우드는 해주에 결핵 요양소를 열고 많은 환자들을 치료했으며 크리스마스 씰을 만들어 결핵 퇴치에 이바지했다. 그러나 1940년에 들어서자 일본 군부는 조선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자유를 속박했다. 심지어 그를 스파이로 몰아 엉터리 재판을 하고 형까지 언도했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그토록 사랑했던 조선을 떠나 인도로 의료 선교의 길을 떠났다. 훗날 그가 캐나다에서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양화진 아버지의 묘 옆에 안장되었고, 메리안도 5개월 뒤 그를 따라 양화진에 묻혔다.

***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닥터 셔우드는 우연히 어머니의 일기 속에서 이런 글을 발견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어머니의 영적인 고뇌가 끝나던 순간에 씌어진 일기였다.

 

남편이 내게 주었던 『살아 계신 그리스도』라는 책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라고 표현한 성경 구절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한복음에만도 이러한 표현이 서른 곳이나 된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은 선교사의 완전한 표본으로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고 남을 위해 행하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세상에 보내노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명은 예수님의 사명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이 사명은 너무나 크고 높아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힘을 주시지 않고는 부탁하시지 않는 분이다. 예수께서는 늘 말씀하셨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시다.” 그리고 우리를 보내시면서 말씀하신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라는 요한복음의 예수님 말씀을 반복해 읽으면서 비로소 나는 전에는 깊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깨달아 알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왜 아들을 보내셨을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 말씀은 말로 형언키 어려운 사랑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나를 보내셨고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같이 나는 저들을 사랑합니다. 어째서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정말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압니다. 그토록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를 위해 고통을 당하라고 예수님을 보내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이 조선 사람들도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만나는 사람마다 잡고 ‘이 좋은 소식’을 말하고 싶은 열망에 불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