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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들의 행진을 보며 - 임병식

Joyfule 2013. 2. 7. 11:23

 

개미들의 행진을 보며 - 임병식

 

 

길을 가다가 별스런 광경을 보게되면 발걸음이 멈춰지고 바라보게 된다. 그것은 크게 보이는 광경이나 미세한 광경을 가리지 않는다. 나름의 질서가 보이고 생태가 엿보여서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산책을 할 때면  큰 길을 걷지 않고 한가한  논두렁길을 택해  걷는 걸 좋아한다. 그런 길도  경지정리가  되어 일자로 죽 뻗어난  길 보다는 지형에 따라  구불텅한 논 두렁길을 만나면 반갑다.  혹자는 이런 나를  보고 '일부러 사색을 하려고 그러는가 보구나 ' 하겠지만, 그것은 아니다. 자연의 생동감을  느끼면서 어떤 별스런 관경을 만나지 않을까 기대감 때문이다.

 

논두렁길을 따라 걷다보면 자주 하늘강아지나  풍뎅이, 그밖에 지렁이나 뱀을 만나게  된다. 그중에서 가장 반가운 녀석은  개구리이다. 이 놈들은 가끔  운동화에 찔끔 오줌을 내 갈리고 달아나는데, 그때마다  놀라기는 하지만 싫지는 않다.   

제 놈도  놀라서 달아나는데   그 동작이 여간  재미 있지 않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논둑길을 걷다가 개구리를 만났다. 놈은   인사라도 하듯이  바짓가랑이와 운동화에  오줌을  찔끔 내갈겨 놓고는 잽싸게 이리 저리 뛰어서   풀섶으로  사라졌다. 그걸 보노라니  문득  옛 사람들이하던, ' 여자가 뛰는 방향과 개구리가 뛰는 방향은 알 수 가 없다' 는  말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는   대단한  규모의 행군대오를  만나게 되었다. 몸길이가 채 1미리도 안 되는  작은 뿔개미 수만마리가  그야말로 남부여대(男負女戴)하고  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리는  논둑과   한길사이로  이동거리는  불과 몇 미터에 지나지 않지만,  그 숫자가  엄청났다. ' 이토록 많은 놈들이 어디를 가는 것일까.'

 

그 모습을 보니  마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기을 한  장관을 연상시켰다. 나는 그 대열이 하도  하도 기이하고 엄청나서  걷던 걸음을  멈추고  한참동안 들여다  보았다. 한데   동작들이 한결같지가  않았다. 앞으로만 묵묵히  기어가는 놈이 있는가 하면, 해찰부리 듯 자꾸 머뭇거리는 놈도 있었다. 그리고  아예 행렬을 벗어나  다른 곳을 향하는 놈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대열의 모습은 정연해 보였다.

 

작은 몸으로  먼길을 가자니 얼마나 고달플까. 사람의 계산법으로는 고작 서너 발걸음에 지나지 않지만, 개미들에게는 실히 한나절 길은 될성싶은데, 무슨 곡절이 있는 것일까. 무리 중에  어떤 놈이  역주행하여 가기에 보았더니 다른 동료를  끌고서 가기도 한다. 제마다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신비롭기만 하다 .전에 읽은 이문열의 '사색'이란 책 중에 보면 '개미는 길을 가다가 자기보다 배고픈 동료를 만나면 자기가 먹을 것을 토해준다'는 대목이 있었다.  정말 그런지는 모르나 의협심만은  남다른것 같다. 이런 무리를 이끄는 리더는 예사 뛰어난 지도자가 아닐 것 같다. 사람도 일개 중대병력이 되면 통솔이 어렵다는데, 이렇게 수효가 많으니 얼마나 애로가 많을까. 

 

 나는 놈들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 보기  위해  카메라 랜즈를 들이대듯 좀더  눈을 가까이 대고  들여다보았다. 그래도 몸뚱이가 어찌나 작은지 움직임을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겨우 2,3미리 미터의 작은 몸인데다 생김새도  비슷비슷하여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추적하는 걸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개미는 이 지구상에 4천 여종이 산다고  한다. 출현한 역사도 사람보다 훨씬 앞서서  6백만 년이나 됐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이 작은 뿔개미는 가장 작은 종에 속한단다. 나는 꼬리를 문 행진을 보면서 절로 나오는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   문득, 인생을 생각해 본다. 지금  힘겹게 가고 있는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몰라도 바로 이런 여정이 인생행로가 아닐까,    

 

시장통 길을 걷다보면  불과 일 만원 남짓한 푸성귀를 앞에 두고 물건을 파는  할머니를 만난다. 또한  1톤 차를 몰고 나와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달라'고 호객 하는 과일장수도 본다. 아마도 개미들의 일상도 그러하리라. 고단한 행군이 마무리된 무렵에는 녹초가 될 것이다. 작은 것들을 한참을 보다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 본다. 조금 전까지 맑아있던 하늘이  짙은  먹구름이 끼면서 금방 비를 뿌릴 것 같다. 아하, 개미들은 이런 날씨변화를   예측한 것일까. 비가 올것 같으니 피할 곳을 서둘렀을까. 그 생각이 드니  매미 특유의 예지력이 놀랍고 신비롭기만 하다.(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