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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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무렵이었다. 나의 법률사무소로 고교동기인 친구가 그 형과 함께 법률상담을 하러왔다.
“토지매수인이 골프장을 만드는데 그 일부 귀퉁이에 있는 우리 임야가 필요하다고 해서 사놓고 지금에 와서는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계약이 무효라고 하면서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걸어왔네요.”
매개 계약금에 관련된 흔하게 벌어지는 사항이었다.
“계약서를 볼까요?”
내가 말했다. 친구 형이 계약서를 보여주었다. 계약서에는 명확히 골프장허가가 나와야 계약이 유효하다는 문장이 나와 있지 않았다.
내가 서류를 보고 있는 동안 친구 형이 내게 말했다.
“허가가 나오지 않았으니까 받은 계약금 일 억원을 돌려주는 게 맞지 않나요?”
착한 사람이었다. 대부분은 욕심이 가득해서 남의 돈을 거저 먹으려는 세상이었다.
“계약서 조항에 골프장허가가 조건으로 되어 있지도 않고 또 그쪽에서 먼저 소송을 걸어왔고 돈도 그쪽이 많은 사업가이고 이쪽은 시골마을의 작은 땅들을 가진 사람이니까 한번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아 그런가요?”
그의 얼굴색이 환해졌다.
“이건 의사로 비유하자면 맹장수술을 하는 정도라고 할까요. 젊은 변호사가 열심히 소송을 하면 이기실 수 있다고 봅니다. 또 설령 진다고 해도 계약금을 돌려주는 거니까 본전장사 아닙니까? 이기면 일억을 먹고 지면 젊은 변호사 발품 파는 값 정도 가 손해 아닐까요? 한번 생각해 보시고 다시 오세요.”
“알겠습니다. 마을의 여러 사람이 소송이 걸려있으니까 이장하고 의논하고 올 께요.”
이야기를 마치자 친구 형이 무료상담을 받았으니 대신 점심을 내겠다고 했다. 우리는 사무실 옆 빌딩의 일층에 있는 음식점으로 갔다. 점심시간 근처의 오피스빌딩에서 쏟아져 나온 손님들로 식당이 꽉 차 있었다. 탁자로 다가온 종업원에서 전 한접시와 떡국을 시켰다. 탁자위에 있는 스테인 물병에서 물을 잔에 따라 마신 친구의 형이 말했다.
“사업을 하려다가 허가를 받지 못했으니 계약금의 얼마라도 돌려달라고 정직하게 말하면 돌려줬을 텐데 어려운 법률을 들이댄 법원의 소장이 날아오니까 마음이 좀 그러네요. 솔직한 마음을 정직하게 말하지 못하나?”
점심으로 떡국을 먹으면서 우리들의 화두는 정직에 대한 것이 되어 버렸다. 내가 먼저 이런 고백을 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열등감이 있어서 그런지 십대 말부터 이십대에 거짓말을 참 많이 했어요. 어떤 때는 과시하기도 하고 말이죠. 그게 버릇이 되니까 나중에는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사항도 거짓말을 하게 되더라구요. ”
“맞아요, 나도 한참 젊었을 때는 남보다 잘 나고 싶고 재고 싶고 그래서 과장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 세상에서 거짓말이 제일 힘든 일 같았어요. 한번 거짓말을 하면 간단한 거라도 계속 여러번 이어진 거짓말을 해야 하잖아요? 그걸 머릿속에 기억해 두어야 하구요. 무엇보다도 하고 나면 마음이 편치 않은 거예요. 괴로운 거죠.”
“저도 그런 적이 있어요. 이십대 때 친구들 앞에서 저는 열심히 허풍을 떨면서 거짓말을 한참 하다가 친구들 눈을 보니까 모두 믿지 않는 눈이더라구요. 그래서 너희들 내 말 하나도 믿지 않지?하고 물으니까 모두 말은 안하고 씩 웃더라구요. 모두 알아차린 표정이더라구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거짓말이나 과장을 안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버릇을 고친 거죠.”
“저도 사업을 했는데 과장이나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어느 때부터 결심했어요. 젊어서는 허풍도 많이 쳤어요. 그런데 정직하다 보니까 오히려 신용을 얻고 사업도 잘 됐어요. 그리고 딱한 사정이 있으면 상대방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속마음을 진정으로 보였어요. 소송이나 잘난 체 하는 법리보다 그게 더 좋은데 사람들은 이렇게 소송을 걸어오는지 몰라요. 와서 진정으로 사정을 하면 내가 계약금을 돌려주거나 반이라도 줄 거 아닙니까?”
내가 본 법정은 이해가 상반된 사람들의 거짓말 대회장 같은 때도 많았다. 더 심한 거짓말과 덜 심한 거짓말의 싸움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판사들은 거짓말에 오염되어 진실이 어떤 건지 모르기도 했다. 그 나라 국민의 정신적 수준은 얼마나 정직한지가 척도 아닐까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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