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따뜻한 재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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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법과대학의 친구들이 저녁을 함께 했다.
대부분이 정년퇴직을 했다. 대학시절 우리는 사회를 향해서 흐르기 시작한 산골짜기의 물방울이었다. 그 물방울이 긴 인생의 강줄기를 따라 바다 근처의 하류에서 빙빙 돌고 있다. 한 생을 다 살아온 우리는 어느 물길을 통해 왔던지 그 누구나 이제 모두 보통사람이었다. 바다를 눈앞에 두고 빙빙 도는 지금은 모두 차이 없이 평등해졌다. 서로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막 걸리 잔을 부딪치며 정담을 나눈다. 앞에 얼마 전 한참 유산상속으로 국내를 들썩였던 재벌가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 친구가 있었다.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바벨탑 같은 사무실에서 호령하는 재벌2세였다.
“그 회장 어땠어?”
“뭐가?”
“인간성이 말이야”
“내가 본 재벌치고 따뜻한 사람은 없었어.”
그 친구를 보니까 요즈음 아내와 함께 보는 주말드라마가 떠올랐다. 지금의 세상은 돈이 계급을 만든다는 말이 있었다. 성 같은 저택 안에서 사는 오너의 가족은 왕족같이 묘사되고 있었다. 그룹 회장은 황제였다. 딸은 여왕이었고 딸은 공주쯤 되는 것 같이 표현했다. 드라마의 작가나 보통사람들이 상상하는 재벌가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전혀 별세계의 인종들처럼 묘사했다. 변호사를 삼십년간 해 오면서 여러 재벌가 회장들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았다. 많은 회장들의 내면이 추위에 떨고 있는 겨울나무 같았다. 텅 빈 저택에서 가정부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쓸쓸하게 살다가 그 많은 재산을 남기고 죽은 사람을 보기도 했다. 황제인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고 자식에게 유폐된 채 해외를 떠돌다가 허망하게 죽기도 했다. 사람들이 버글거리는 장례식장에서 진심으로 따뜻한 눈물을 흘려주는 사람을 거의 발견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들 자체가 추운 겨울나무인데 남들을 따뜻하게 해 줄 수가 없을 것이다. 더러 그들의 영혼에 따뜻한 불을 지펴줄 천사 같은 사람이 다가가기도 한다. 믿음이 깊은 한 친구가 모 그룹회장의 비서실장으로 발탁됐다. 그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딴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성격도 온유했다. 그는 내게 자기의 목적은 회장의 추워하는 영혼에 따뜻한 불을 지펴주는 거라고 했다. 그는 전심전력을 다했다. 심지어 나와 만나는 사적인 모임에서 조차 회장님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면서 함께 기도를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이따끔씩 언론보도를 통해 나오는 그 회장의 모습에서 기쁨에 찬 따뜻한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재벌가 회장부부들만 전문으로 맡아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는 클럽의 매니저한테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회장님이나 사모님의 표정을 보면 항상 불안하고 쫓기는 것 같다는 것이다. 마사지를 받다가도 주가가 내리거나 그룹에 관한 가십기사라도 뜨면 당황해서 정신없이 자리를 뜬 다는 것이다. 그 돈 많은 회장님이 돈도 자기부분만 내고 사모님의 것은 내지 않고 가는 경우도 봤다고 한다. 이기주의적이라는 것이다. 공허한 마음들인 것 같다. 재벌가의 입장에서 보면 사방에서 살점을 뜯어먹으려는 하이에나 떼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인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경제인을 대표하는 모 그룹 회장이 나와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다. 그의 집에 가서 둘이 마주앉아 밥을 먹은 적이 있다.
그는 내게
“대한민국에서 재벌은 ‘공공의 적’인 것 같아” 라면서 속을 털어놓았다.
그룹 내부의 직원들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벌그룹의 회장이 되려면 직원 앞에서 눈을 똑바로 뜨고
“넌 해고야”라고 할 정도로 냉정해야 그룹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내가 알고 지내던 또 다른 재벌가의 회장이 있었다. 백년의 전통을 가진 뿌리 깊은 한국의 부자 명문가였다. 그 그룹은 방직업과 대한민국 전체에 필요한 소금을 생산하는 사업으로 시작됐다. 회장 아들이 초등학교 때였다. 회장은 아들의 학교에서 보낸 가정환경 조사서의 아버지 직업란에 ‘소금장사’라고 기재했었다고 한다.
며칠 있다가 그 아들은 반에서 제일 뒷자리로 밀려났다. 가난한 가정의 아이취급을 당한 것이다. 담임선생이 우연히 가정방문을 와다가 대궐 같은 한옥 집을 보고 놀라 자빠질 뻔 했다. 동네 소금장사가 아니라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였던 회장의 집을 본 것이다.
몇 달 후 아이의 담임선생은 그 집을 찾아와 무릎을 꿇고 대리점 하나만 하게 해 달라고 사정하더라는 것이다.
그게 보통사람들의 욕심과 비굴함이었다. 부자는 부자대로 보통사람은 보통사람대로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탈을 씌워놓고 보는 것 같다. 손가락도 저마다 다르다. 머리도 사람마다 그 지능이 다르다. 살다보니 재물도 운도 그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제저녁 부자인 친구를 만났다. 학교 때 공부를 그렇게 잘한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성적이 모자란 편이었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서 하는 일마다 돈이 붙는 것 같았다. 실패도 거의 없었다. 함께 카레라이스를 먹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실 때였다.
“며칠 동안 발이 아파서 집에서 가만히 있었어. 답답하고 심심해서 오전이면 노트북을 펼치고 재미삼아 주식을 했어. 쉬는 동안에 이십 육억을 벌었어. 이번에 번 돈으로 어머니에게 한강변 좋은 아파트를 사 드리려고 해.”
운 좋은 친구는 병이 나도 자는 사이에 돈을 버는 것 같다. 그가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집사람과 함께 고등학교 때 가장 친하던 친구를 찾아가 밥을 사줬어. 고교시절 그 친구는 내가 보기에는 천재였어. 학교에서 회장도 하고 말이야. 그런데 이 친구가 집사람 보는 앞에서 내가 공부 못하던 얘기만 자꾸 강조하더라구. 듣다듣다 화가 나서 와 버렸어.”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서로 존중하면서 사는 따뜻한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타고날 때부터 존재하는 지능의 차이같이 부도 그런 것이 아닐까.
‘꾸뻬씨의 행복찾기’라는 책을 보면 행복의 첫 번째 비결은 남과 비교하지 않는데 있다고 적혀 있는 게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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