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북한의 국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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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법률들을 소개하는 책을 쓴 적이 있다. 자료를 구하는 과정에서 북한에서 발행되는 여러 책들을 읽고 사람도 만났다. 주체사상이라는 책을 얼핏 본 적이 있다. 경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성경속의 하나님 자리에 ‘인민대중’을 집어넣은 것 같았다. 국민을 하나님같이 여긴다면 정말 좋은 관념일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북한의 대학에서 쓰는 법률교과서들을 살필 때였다.
책의 첫머리에는 항상 ‘사회주의적 대가족주의’라는 말이 나오곤 했다. 북한 전체를 하나의 봉건적인 가족개념으로 구성한 것 같았다. 그들의 책에는 많은 기적과 신화가 담겨 있었다.
김일성이 솔방울을 수류탄으로 변하게 하기도 하고 그가 조선혁명군을 이끌고 들어와서 이 나라를 해방시켰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김일성은 성경속의 모세같이 지팡이 하나로 대제국인 이집트의 왕을 제압하고 백성들을 제국에서 구해낸 영웅이었다.
김일성은 민족을 이끄는 대제사장이고 주체사상은 하늘에서 받은 율법과 흡사한 구조를 가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북한은 거대한 종교가 지배하는 왕국 같았다. 북한 전역에 김일성의 상이 모셔져 있다. 평양에 김일성을 모시는 성전이 만들어지고 북한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이 그 지성소에 가서 죽은 김일성 앞에서 참배하게 되어 있는 것 같다.
이따금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비치는 북한주민들 중에는 눈물을 흐리며 수령동지를 열광하는 사람들을 본다. 교회의 부흥회에서 소리를 치고 울부짖고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신도들과 흡사한 것 같다. 북한에서는 집에서 불이 나도 김일성초상화를 제일먼저 들고 나가야 한다. 김일성의 초상화를 제대로 모시지 않은 노인이 맞아죽었다는 얘기도 있다.
북한 정권은 이천만 인민의 머릿속에 수신기를 달아 맹종하는 신도로 만드는 작업에 성공한 것 같다. 북한 뿐 아니다. 방송을 통해 주체사상을 학습한 남한의 주사파들도 북한 종교의 신도인 것 같다. 김일성대학교수출신이라는 내 나이 또래의 북한 사람을 만나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평양의 넓은 아파트에 산다는 그는 북한에서 상류층인 것 같았다. 그는 마르크스 레인주의나 모택동 사상이 뭔지 잘 모른다고 했다. 러시아와 관계가 소원해 질 때면 러시아에 대한 책이 모두 없어졌고 중국과 멀어졌을 때는 모택동에 대한 책들을 볼 수 없었다고 했다.
북한은 마르크스 레닌의 정통 공산주의 와도 다른 것 같다.
북한은 거대한 원리주의적 종교단체의 성격을 가진 것 같다. 잘못된 관념이라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면 그는 그 관념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
그런 사상이 제대로 박히지 않았다고 의심되는 사람의 머리를 총을 쏴서 죽이는 사회에서는 조금의 저항도 불가능하다. 나는 북한이 그렇게 보인다.
금강산 관광을 가서 혼자 산책을 할 때였다. 안내 겸 감시를 맡은 여자는 내가 김일성 기념물에 털썩 주저 앉을까봐 두렵다고 했었다.
이런 원리주의적 도그마에 잡혀있는 나라와 마주하고 있다.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건 어쩌면 그 세뇌된 영혼 속에 들어있는 거짓 우상일지도 모른다.
겉으로 두꺼운 껍질을 가진 생물의 속살이 더 연하다. 담장 높은 집의 안은 오히려 황폐할 수도 있다. 강대국을 끼운 북한과의 정치외교 협상보다 북한주민들이 한국을 구경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남해의 독일인 마을에 사는 탈북자인 한 분은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면에서 보고 탈북하기로 결심했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냥 남한사람들이 자유롭게 사는 모습들을 보기만 해도 개종의 가능성이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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