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출세욕
미세먼지가 빌딩사이의 허공에 안개같이 가득 차 있다. 노년의 한적한 일요일 오후 세 시경이다. 나는 ‘TV다시보기’에서 지나간 드라마를 보고 있다. 팔십대의 고교은사가 전화로 ‘미스티’라는 드라마가 재미있다고 보라고 했다. 팔십대의 스승과 육십대 중반을 넘긴 제자는 이제는 친구 같다. 텔레비전 방송국 보도국의 기자주인공이 화면에 나온다. 출세욕이 가득하다. 경쟁자를 짓누르면서 성공의 계단을 올라간다. 마침내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되어 가는 장면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출세의 마지막은 대통령주변이나 국회의 금 뱃지를 다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는 것 같다. 정말 그게 성공일까. 젊은 날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때 ‘삐리리릭’ 하고 스마트폰의 신호음이 울렸다. 스마트 폰의 화면상단에 이웃에 사는 대학선배의 이름이 떴다. 칠십대 중반의 그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그런 출세의 과정을 밟은 사람이었다. 일간지 기자를 하다가 정부대변인으로 그리고 대통령 정무비서관과 차관을 지내고 퇴직했다.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가고 싶었던 걸 이미 다 거치고 우면산 기슭의 집에서 조용히 나머지 인생을 보내고 있었다.
“뭐해?”
그가 물었다.
“드라마 봐요.”
“나와, 도로 건너 골목길의 커피점에서 기다릴 께”
나는 옷걸이에 걸려있던 쟈켓을 들고 걸어서 오분 정도 거리에 있는 커피점으로 갔다.
“어이 여기”
머리가 하얗게 바랜 대학선배가 커피점 창가의 구석자리에서 팔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선배 다탁에는 이미 시킨 카페라떼컵이 보였다. 나는 주문대에 가서 녹차라떼를 시켜 그걸 받아 가지고 선배가 앉아 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요즈음은 집에서 뭘 하면서 하루를 즐기십니까?”
내가 물었다.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친구들과 당구를 쳐. 당구모임에 이명박 대통령의 민정수석도 같이 치는 멤버야. 그 친구 우스개 소리도 잘하고 리더쉽도 있어. 저녁이면 드라마를 봐. 얼마 전에 ‘미스티’라는 드라마를 집사람과 같이 재미있게 봤어.”
“나도 조금 전 그 드라마를 보니까 보도국 기자가 청와대의 러브콜을 받고 대통령 대변인이 되려고 달려가는 장면이 나오던데 선배가 그랬잖아요? 어때요? 그 결정이 좋았어요?”
“내가 그랬었지. 정부대변인을 하다가 대통령 정무비서관을 오래 한 셈이지.”
“드라마를 보니까 대통령 비서관이 권력의 화신 같이 나오던데 어땠어요? 어떤 권력을 행사했었죠?”
“한번은 대통령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언짢은 장면을 보고 내게 연락을 했어. 그 말을 듣고 내가 바로 방송국 사장과 담당국장에게 전화를 걸었어. 드라마였는데 몇 회 가지 않아서 중단을 시켰지. 정부가 방송국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니까 방송이 말을 안 들을 수가 없는 구조야. 헛소리를 하는 사회자나 논객들이 있으면 출연시키지 말라고 뒤에서 조용히 지시를 내리기도 했지. 그 시대는 그렇게 했어.”
세상에 비밀은 없다. 세월이 가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기자로 출발해서 청와대로 가시고 차관으로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셨는데 그만하면 세상에서 성공한 축에 들지 않아요?”
“절대 그렇지 않아. 후회하고 있어.”
“다시 젊은 날의 기자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내가 기자일 때 여러 유형을 봤어. 정치부기자의 경우는 유력정치인의 보이지 않는 참모를 하다가 정계로 진출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봤지. 나같이 대변인으로 가는 경우도 있고 말이야. 그런데 그때 동료 한 사람은 자기분야를 정해 놓고 나름대로 일가견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거야. 세상을 보는 자기만의 시각을 갖추는 게 참 중요해. 예를 들면 일류 사진작가는 일상에서도 기가 막힌 예술적인 한 장면을 떠내잖아? 기자도 마찬가지야. 보석을 볼 줄 아는 자기 시각을 만드는 게 중요해. 그게 거저 되는 게 아니지. 뼈를 깍는 고통과 집념 끝에 나오는 거야. 동료였던 그 친구는 수도승이 어느 날 도통을 하듯이 드디어 자기만의 그런 뷰포인트를 얻은 거지. 그는 수많은 책을 보았어 그리고 그 책들에서 자기가 인용할 무수한 문장들도 수집해 여러 공책에 적어 놨어. 책을 시장에서 사온 야채에 비유하면 그가 쓴 문장들은 그 야채를 다듬어 요리하기 직전의 준비상태로 만든 거라고나 할까. 그 친구는 어떤 팩트든지 기자들이 취재해서 가지고 오기만 하면 자기가 최고의 기사나 컬럼을 쓸 수 있다고 하더라구. 그 친구는 칠십대 중반인 지금까지 변함없이 글을 써서 세상에 발표하는 거야. 그런데 난 뭐야 도중에 글 쓰는 걸 그만두니까 늙어서 하는 게 없는 것 같아. 당구치고 드라마나 보고 그러지. 기자로 시작했으면 그 자리가 나한테는 가장 적합한 곳이었지. 그런데 그걸 벗어난 거야.”
경험에서 오는 진한 향기가 풍기는 교훈이었다. 하늘이 자기에게 준 작은 직업에 만족하면서 소걸음으로 일생을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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