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47) 성령 충만의 중요성
요한계시록 3장 1-6절
오늘은 일곱 교회 중 다섯 번째로
사데 교회에 하신 주님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사데 교회에 편지하시는 주님이 어떻게 묘사되어 있습니까?
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이란 성령을 말하고,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교회를 충만하게 하는 성령'의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묘사된 것은
"이 교회가 성령 충만한 역사가 필요가 교회이구나?" 하는 짐작을 하게 합니다.
실질적으로 사데 교회는 성령 충만한 역사가 필요가 교회였습니다.
성령님이 없다면 그 교회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데 교회에는 칭찬이 없이 책망만 하셨습니다.
어떤 책망을 하십니까? 본문 1절 말씀 하반부를 보십시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사데 교회는 살아 있는 교회처럼 보이는데 죽은 교회라는 말입니다.
바로 앞에 언급된 두아디라 교회도 행위 속에
이세벨의 흐름이 있다고 책망 받기는 했지만(2장 19-20절),
사데 교회는 더 심해서 철저히 형식만 남은 죽은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겉으로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주후 800년부터는 교황권이 황제 이상의 권력으로 군림하던
'강력한 교황시대'가 시작되고 결국 1517년에 종교개혁이 일어나는데,
그때까지의 교회가 사데 교회의 성격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이때를 중세 암흑시대라고 하는데,
이때의 교회는 성령님이 떠나고 철저히 형식만 있는 빈 껍데기 교회였습니다.
우리는 "이 사데 교회의 모습이 우리 자신의 모습은 아닌가?" 하고
겸허한 모습으로 매일 말씀과 기도 안에서 자신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을 힘써야 합니다.
어떤 분은 성령 충만의 반대말을 '연기 충만'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연기 충만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질식할 것 같습니다.
비판과 정죄와 교만으로 '있던 불'도 꺼집니다.
표정도 어두컴컴하게 됩니다.
반대로 성령 충만한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같이 활활 타올라 뜨거워집니다.
얼굴도 빛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도 그 모습을 보고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창세기 26장 28절에 보면 블레셋왕 아비멜렉이 이삭을 보면서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이 성령 충만한 우리를 보고
"과연 믿는 사람답다"는 말이 나올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입니다.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