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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古木)과 나 - 모윤숙

Joyfule 2013. 11. 11. 00:45

 

 

고목(古木)과 나 - 모윤숙

          

사람은 늙어버리면 멋도 풍류도 없다 해서 쳐다보는 이도 없다. 또 기운도 빠지고 마음도 수축되어서 쇠잔해지고 만다. 그런데 늙을수록 멋과 젊음을 그대로 지닐뿐더러, 엄과 신의마저 있어 쳐다보게 하는 상대는 아마 늙은 나무일 게다.

 

나는 5년 전에 이 변두리 장안동長安洞으로 이사를 왔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때였다.

그러나 친구들의 걱정을 대답할 겨를도 없이 이 동리로 나왔던 것은 대문 옆에 서 있는 느티나무 때문이었다. 물론 다른 이유로는 시내보다 땅이 싸고 조용하고 많은 방문객을 만나지 않아도 좋으니 건강에도 유리할 듯해서였다. 그러나 얼른 내 기분을 움직이게 한 이유는 저 늙은 느티나무 가지에 있다.

동리 사람들 말로는 5백 년이 지났다 한다. 대대로 살던 사람들이라 그 연대는 들어맞는다.

온 동리는 이 나무 밑에 서낭당을 차려 놓고 무꾸리도 했고, 앓는 식구를 위해 빌고 절도 하면서 울긋불긋 헝겊 오래기들도 달아매고 동리를 보호하고 지켜 주는 수호신같이 섬겨왔다든가 한다. 그러나 차차 서울물이 들어가면서 이런 일을 나무에다 대고 하는 일이 겸연쩍어도 지고해서 5, 6년 전부터는 그 일을 못 하고 있다 한다.

 

노인네가 유난히 많은 이 동리는 늦가을까지 이 그늘 밑이 사교장 겸 피서지로도 사용되고 머언 뚝섬벌을 바라보는 관망대로도 사용되어 왔다. 내가 이사 올 때는 앞의 터가 팔리지 않아 자유로 동리 사람들이 그 터를 밟고 고목을 찾아 올라왔던 것이다. 늘어진 음성으로 바둑 장기 놓는 소리, 소주잔에 얼근히 취해 가지고 웃고 떠들썩하다가는 주먹다짐까지 해 가면서 담소 화락談笑和樂이 그칠 새가 없었던 자리다.

 

그런데 작년에 이 앞의 터를 문안 사람이 사 가지고 얌전한 기와집을 지었다. 느티나무는 샌드위치 모양으로 그 집 울타리와 내 집 대문 사이에서 숨을 못 쉬게 되었다. 그럴 바엔 모 선생毛先生집 담을 터놓고 이 나무 보토도 좀 하시고 보호하시면 어때요?하는 이가 있으나 나는 동리 눈치도 눈치려니와 집안 뜰에 큰 나무를 안 들여 놓는다는 친구들 말에 오히려 다행함을 느끼면서 쳐다보는 것으로 내내 즐거움을 가진다.

 

과히 키는 크지 않은 고목이나 옆으로 가지가 그처럼 번성할 수가 없다. 펼쳐 간 가지가 마당 절반에 그늘을 준다. 나는 그걸로 만족하고 고마워할 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지금도 조그만 오솔길을 통해서 동리 노인네들이 올라와 여전히 휴식들을 하신다. 수십 년 전에 한번 낙뇌 落雷가 떨어져 부러져 나간 통가지에 비가 오면 물이 괴고 그 물이 나무 원등거리에 새어 들어가 나무가 위태하니 큰일났다고들 했다. 나는 시멘트를 사서 구멍마다 막았다. 한결 나무는 그 전보다 싱싱해 보인다. 나무통에 생긴 굴이 하도 커서 6.25때 백 명의 중공군이 거기 숨었다 갔다 한다.

이런 흠집이 모두 이 나무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어 보토를 해 주고 나무뿌리가 드러나서 뼈를 이룬 자리에 둘러앉는 일만은 능사로 아는 일은 좀 삼가야 되지 않을까 염려한다. 은근히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저 느티나무가 앞으로 5백 년을 더 견딜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다. 퍼진 가지의 잎새가 떨어지는 가을이 되면 그 쭉쭉 뻗은 벗은 가지의 의지는 참으로 장하고 볼 만하다.

 

이제 오래지 않아 잎사귀를 작별할 때가 가까워 온다. 눈이 내리면 검은 가지는 일제히 소복을 하고 하늘에 웃는다. 나는 또 밤 삼경에 검은 가지 사이로 지나가는 달을 본다. 그 달의 의미를 나는 아직 모른다. 기우는 달이 더 그렇다. 오래오래 문턱에 서서 내 눈은 검은 가지에 매달려 간다. 이제 저 고목은 동리 사람들의 제사를 받으려 서 있는 게 아니라 생존한 인간의 사모와 애정을 받으며 천지 사이에 윤회하는 진리를 매개하는 중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봄에 뒷산 언덕에 섰는 고목 하나를 밤중에 누가 잘라 갔다. 알고 보니 그 고목으로 고사를 지내기 위해서였다 한다. 동리 사람 중엔 분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백 년은 착실히 되었을 나무다. 불평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나무에서 오는 자연의 풍미風味를 차차 알아가는 듯도 싶다.

 

나는 오늘도 종일 마당에 앉았거나 방에 있으면서 오래지 않아 낙엽이 부서질 이 마당의 풍경을 상상해 본다. 낙엽은 저 나무에 명예다. 내년에 더 많은 잎사귀를 낳기 위한 가을의 선언이다. 친구도 멀고, 흥나는 일 하나 없는 요즈음 나는 저 오래오래 서 있는 느티나무의 생명을 쳐다보는 것으로 눈이 즐겁다. 하나의 독서하는 심경으로 나무를 읽는다. 거기 얽힌 역사의 사연은 가지마다 오늘을 증언한다. 잎사귀도 꽃도 없이 늙어가는 인간이 있다. 나이에 굴복하면서 시들어가는 인생이 있다. 그런 인간을 쳐다보며 통곡하는 심정보다 저 푸른 고목은 얼마나 높은 자연의 밀사密使인가. 내 어깨에 내린 고목의 그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