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밟는 페달 - 박연식(朴蓮植)
며칠 전 모 일간지에서 자전거를 선물로 준다며 판촉활동을 하였다. 독자가 얼마나 없으면 십 여 만원이나 되는 물건으로 환심을 사려 할까? 기어는 21단이며 국산 제품이니 믿으라고 하였다. 더도 말고 18개월만 구독하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좋은 것을 공짜로 주다니’ 나는 깜짝 놀랐다. 바퀴는 빨갛고 몸체는 은빛으로 번쩍번쩍 빛나서, 보기만 하여도 날렵하고 멋있게 보여 몇 분 동안 만지작거리며 그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마치 아이가 장난감 가게를 맴 돌듯이.
서 너 달 전에도 전기히터로 환심을 사려는 신문사가 있었는데 점점 선물의 단가가 높아진다. 솔깃하다. 이번기회에 자전거를 받기위하여 신문을 바꿔볼까.
이십 여일 전 일요일 새벽 여섯시에 “국민생활체육진흥회”주관으로 무료 자전거 타기를 실시한다는 광고를 보았다. 그 후 부녀회원 30여명이 모여 자전거 동호인을 구성하였다며, 팀장이 나에게 권하는 말을 남편이 듣고 “그 나이에 무슨 자전거를 배운다고 그래”하며 핀잔을 주었다.
어릴 때부터 자전거 잘 타는 사람을 부러워하였기에 나이를 잊고 망설이다가 동참해 보았다. 그러나 허리와 다리를 삐면 이 나이에 큰 낭패라는 마음은 떨칠 수 없었다. 같은 날 시작한 젊은 아줌마가 삼 일만에 잘 달리는 것을 본 후 나는 더욱 용기를 잃고 이내 빠져버렸다. 남이 하는 것은 수월하게 보였지만 나는 무서워서 도저히 땅에서 발을 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오륙 학년 때 시오리길을 가끔 자전거 뒷자리에 타고 학교엘 다닐 수 있었다. 비와 눈이 많이 와서 발이 퐁퐁 빠질 때나, 난로 당번으로 장작을 들고 갈 때면 우리 뒷집에 사는 선생님께서 한사코 사양하는 나를 읍내까지만 태워다 주셨기 때문이다. ‘따르릉’ 소리에 학생들은 길가로 비켜서며 나를 태우고 가시는 선생님께 인사를 하였다. 같은 마을 친구들에겐 미안하고 어색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선망의 대상이 된 듯 어깨가 으쓱하기도 하였다.
여고시절, 아버지께서 달밤에 자전거 앞자리에 나를 태우고 뒤에서 잡아주신 적이 있다. 그때는 자전거 자체도 투박하려니와 뒤에 짐 싣는 자리까지 넓어서 넘어지면 온몸을 다치기 쉬웠다. 아버지는 몸을 아끼지 않고 사력을 다해 다리를 버티며 잡아 주셨지만 나 때문에 아버지까지 넘어져서 무릎과 정강이 부위를 피가 나도록 다쳤던 기억이 새롭다.
그 때 배웠어야 했는데 끝내 못 배우고, 지금까지 자전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씽씽 달려볼 때가 있으리라는 희망은 갖고 있었다.
“멀리 보아라, 넘어 지려는 쪽으로 핸들을 틀어야한다” 라는 40여 년 전에 들었던 아버지의 말씀은 엊그제인 듯 귓전에서 생생하게 맴돌았지만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페달 밟기와 핸들 조종하는 일 이었다.
담력이 없어 자전거는 영 배울 것 같지 않다. 계란을 지고 돌담 근처를 못 간다는 속담이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
내 삶이 힘들 때마다 “멀리 보아라”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라 위로가 되었다. 인생은 마라톤이야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십 년 후에는 낳아지겠지? 하며 아버지 말씀을 떠올렸다. 페달을 밟다가 멈추면 자전거가 그 자리에 멈추는 것을 보았다. 내가 만일 절망하고 포기하였다면 이만큼이라도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건강해서 여기까지 무난히 왔다고 생각한다. 내 몸이 아프거나 노력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가정생활도 꺼져가는 불씨처럼 멈추었을 것이다.
자전거 하이킹 코스가 잘 되어있는 신도심으로 이사 온 후 어른 아이들이 아침저녁 신나게 달리는 모습을 자주 볼 때마다 부러워하였다.
“저기 봐 저기 저-어“ 남편과 같이 운동장트랙을 일곱 바퀴 걷고 나오던 어느 날 밤, 남녀가 2인용 자전거를 타고 휙 지나가는 모습을 처음 보는 순간 신기 하여 환호하는 내 소리를 남편이 들었다. 남편은“자전거가 그렇게 타고 싶어?”하고 물었다.
2인용은 앉을 자리와 페달이 두개로 분리되어 있어서 뒷사람과 동시에 밟으면 쉽게 달릴 수 있다. 부끄러워하는 내 마음까지 편하게 하려고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인적이 뜸하고 가로등 불빛이 희미한 곳으로 달렸다.
“뭐해? 안 돌리고” 그이의 숨찬 소리다. 내발은 페달에서 더듬거린 지 한참 된다. 기교를 부리는지 아니면 청년시절을 재연하는지 지그재그로 핸들을 틀 때마다 넘어 질 것 같아 불안하였다. 그러나 페달을 더듬거린다는 고백은 할 수 없었다.
그 후로도 꽤 운동이 된다면서 자주 태워주곤 한다. 그이는 자전거 타는 폼까지 아주 멋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그이가 시간을 정해놓고 헬스클럽엘 가기 보다는, 등산이나 탁구 등등 내 취미 쪽으로 맞추려는 것 같아 늦게 철든 내목소리는 부드러워진다.
아들 역시 집에 내려오면 탁구 파트너가 되어주기도 하고 2인용 자전거를 신나게 태워준다. 어느 날 저녁 핸드폰으로 안부를 묻기에 시민공원에서 자전거 타고 있다고 말 한 적이 있다. 녀석은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들이 밟는 페달의 힘은 안심하게 느껴져서 더욱 상쾌하다. 녀석도 적은 돈으로 크게 효도하는 느낌인지 싱글벙글 이다. 그 앤 아직 제 애인이 없어서일까? 내가 주책을 떨어도 살가운 마음으로 잘 받아준다. 인생의 행복은 어디 먼 곳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자전거조차 포기하고, 남편이 밟는 페달에 의지하여 행복을 맞으러 간다. 조용한 달밤에…….
한 가장이 가족이라는 짐을 싣고 거친 세상을 향하여 페달을 힘차게 밟을 때, 그 가정은 평온하고 안정감이 있을 것이다.
비단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는 총장님과 학생들이, 국가에서는 대통령과 각료들이 함께 밟는 페달이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나는 남편의 힘을 덜어 주기 위하여 함께 페달을 밟으리라.
수필가. 광주출생. 한국수필로 등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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