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yful자료실 ━━/신앙간증

고통 가운데 있는 너를 들어 쓰리라!

Joyfule 2020. 2. 12. 00:43




      고통 가운데 있는 너를 들어 쓰리라!
       이희성 집사, 인애교회


위암선고를 받은 고통의 날들...

  나는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친구와 함께 교회에 가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교회의 여러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즐거워 예배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나는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남편은 내가 교회에 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6년의 결혼생활동안 착실하게 교회에 참석하며 주어진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랜 신앙생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에 성령체험도 없는 그저 형식적인 교인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2003년 여름의 어느 날부터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약국에서 소화제를 사다먹기 시작하였다. 몇 개월 동안 약을 복용했지만 낫지 않았고, 속은 더 불편해져만 갔다. 그래서 그해 겨울 무렵 고통을 견디다 못해 병원을 찾아 위내시경검사를 받았다. 검사결과가 나온 날 담당의사는 급히 다른 의사를 불러 그전에도 나와 같은 검사결과가 나온 환자가 있었다며 바로 조직검사를 해보자고 말했다. 두려움에 휩싸인 채 조직검사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린 나에게 찾아온 것은 뜻밖에도 암이라는 불청객이었다. 참으로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담당의사는 종양이 양성이긴 하지만 수술하기 어려운 위치에 자리잡고 있어서 악성종양보다 더 위험하다고 했다. 차라리 단순악성종양이라면 수술을 하겠지만 내 경우는 수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조치해준 것은 스스로 노력해서 식도를 통하여 음식물을 잘 넘기라는 것 뿐이었고, 만약 음식물을 식도로 넘기지 못하고 토하게 되면 바로 병원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며칠 동안은 음식물을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조심스레 먹은 음식물이 넘어가지 않고 그대로 넘어오는 것이었다.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의사는 양성종양이 악성으로 변한데다 암세포가 퍼져 병이 위독해졌고, 앞으로 1년 정도밖에 살 수 없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주었다. 나는 온몸에 힘이 빠지며 눈앞이 캄캄했고, 남편과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절박한 심정에 교회의 담임목사님과 친한 집사님들에게 기도부탁을 드리고 싶었지만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죽을병에 걸렸나’ 하며 수군거리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렇게 한 달 동안 삶의 의욕을 잃은 채 “하나님!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렸나요”라고 절규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기만 했다.


하나님의 약속의 음성을 들려주시고...

  그런데 갑자기 ‘내가 이렇게 울고만 있을 때가 아니지. 어차피 1년밖에 살수 없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교회직분이라도 사는 날까지 충실히 잘 감당하리라. 그러다 보면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 치료해 주실 지도 모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는 예전의 형식적인 믿음이 아닌 주님께서 직분주심에 대한 감사와 병을 고쳐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봉사하고 믿음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몸에 좋다는 약을 찾아 헤매었고, 소문난 한의원에도 가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진맥이 60도 안 되는 등 기력이 쇠하고, 음식물을 넘길 수 없었기에 약을 지어주지 않는 것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1년의 삶이 다 소멸되어가고 있을 때, 온몸을 압박해오는 통증을 느끼며 화장실도 기어서 가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나는 성경을 붙잡고 한 장이라도 더 보려고 울면서 몸부림쳤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읽는 하나님의 말씀은 꿀 송이 보다 더 달았다. 그리고 예전 건강했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며, 형식적인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내 인생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싶어서 강남금식기도원을 찾게 되었다. 1년 동안 병마와 싸워오며 황폐하게 지내온 내게 강남금식기도원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졌고,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감사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기도원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가족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다. 남편의 대학원등록금문제와 6살짜리 철부지 어린 아들을 생각하며 ‘저는 하늘나라에 가면 아픔과 고통이 끝날 테지만 엄마 없이 불쌍하게 살아갈 아들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책임져주세요’라고 기도하였다. 그리고 남편을 위해서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갖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다. 기도원에 도착하니 고통이 더욱 심해져 갔으나 예배 때 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가족을 위해 기도하였다.
  일주일 금식을 작정하고 3일째 되는 날, 내 눈에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 어깨 위에 앉은 천사가 보였다. 너무나도 신기하여 옆 사람에게 천사가 보이냐고 물어보았지만, 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내 눈에는 정확히 3번이나 목사님 어깨 위의 천사가 보였다. 그 상황을 목격한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왔고 “내가 너의 눈물을 보았다. 이제 너의 슬픔이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기도시간에 하나님은 또 다시 “내가 만민 중에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 너를 들어 쓰리라”하시는 음성을 들려주시며 환상을 보여주셨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큰 은혜에 예배가 끝난 후에도 나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밤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나를 향한 주님의 음성에 감격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며 뒤척이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성경 이곳저곳을 보여주시며 “너의 짐을 내려놓아라. 너의 아들은 내가 책임져 주겠다.”는 음성을 들려주셨다. 아들을 위한 기도에 응답해 주심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장학금을 국가로부터 받게 되었다는 남편의 연락을 받았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그 후로는 ‘내가 살 수 있는 날까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써주세요’라고 기도하게 되었다.


위암을 치료받고 기도하는 사람으로...

  원래 금식기간동안에는 설사를 안 한다고 하는데, 나는 금식 4일째 되는 날부터 설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5일째부터는 피가 비치기 시작했는데 평소에 생리통이 워낙 심했던 터라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신기하게도 생리기간에는 늘 배가 차디찬데, 이번에는 오히려 불덩이 같이 뜨거웠고 핏덩이들이 자꾸 쏟아지는 것이었다. 나는 배가 너무 아파서 떼굴떼굴 구르며 사탄마귀를 쫓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딸아. 너의 고통은 사탄의 장난이 아니다. 그 고통가운데 있는 너를 건져내 주겠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깨끗이 고쳐주겠다. 며칠만 참아라!”라고 주님께서 치유의 음성을 들려주시면서 또 "내가 너에게 성령의 불을 주어 신유의 은사를 주겠다" 라고 말씀 하시는 것 이었다. 신기하게도 작정한 일주일 금식 중 남은 2일부터는 고통이 사라졌고, 하나님께서 위암을 치료해주심을 확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할렐루야!!
  그 결과로 기도원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고 식구들과 교회에 가서도 간증을 하게 되었다. 믿지 않던 부모님도 먼저 보냈을지도 모르는 딸을 하나님께서 고쳐주셨다고 믿음으로 간증하시며 기뻐하셨다.
  기도원에서 내려와 보호식을 하는 동안에는 위암수술을 받고 캐나다로 이민 간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위의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되어 복수가 찼고, 간이식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식할 장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잠자리에 누워 그 친구를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너의 친구가 병들었으니 쉬지 말고 네 친구를 위해 기도해라!”라고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벌떡 일어난 나는 위암에 걸려 위태로운 친구를 위해 3일을 금식하게 되었다. 금식을 마친 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장기를 기증한 한 한국유학생의 교통사고사망으로 무사히 장기이식 수술을 마쳤다고 했다. 불교신자였던 친구 부모님은 교회를 다니는 친구들을 싫어하셨는데, 그 일 이후 우상을 버리고 예수님을 영접하셔 교회에 다니시게 되었다. 할렐루야!
이 모두가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이루신 역사이다. 죽을 영혼을 새 생명으로 허락하신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더욱 충성할 것을 다짐하며 전능하신 영광의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