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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새 삶을 회복시키신 은혜

Joyfule 2020. 2. 9. 19:54




       행복한 새 삶을 회복시키신 은혜
        이필순 집사. 남,  은혜교회


어려서부터 낙인찍힌 범죄자


나는 넉넉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나 서울 종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 아버지는 신문사와 출판업을 운영하는 등, 사업을 크게 확장하며 약간의 빚을 끌어 썼다고 한다. 그러나 사업이 잘 되지 않아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 아버지는 다시 사업을 일으키려고 백방으로 뛰어 다니시다가, 빚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과로로 병을 얻어 급기야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시고 말았다.
  온 집안은 슬픔에 잠겼고, 남겨진 빚과 어린 남매들을 키우는 일이 막막했던 어머니는 자식들과 함께 죽을 결심까지 하셨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는 노점상부터 국밥집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고, 돈벌이가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셨기에 나중에는 여자들이 접대하는 술집까지 하셨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려서부터 그런 환경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다.
  그러다가 내가 열 살 무렵에
어머니가 재혼을 하셨는데, 내성적인 성격에다 아버지라는 단어가 너무나 어색했던 나는  낯선 사람에게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에 적응할 수 없었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새아버지의 눈길이 너무 무서워 점점 말수가 더 없어지고 주눅이 들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아버지의 심부름을 나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친구들을 만나 한참을 어울려 놀다가 집에 늦게 들어가게 되었다. 뒤늦게 아버지의 심부름이 생각나 급히 돌아왔지만, 오래 나를 기다리시던 새아버지는 화가 많이 나셔서 각목으로 나를 마구 때리기 시작하셨는데, 그동안 쌓여왔던 나에 대한 미운 감정들이 폭발한 것 같았다. 그때 팔을 잘못 맞아 팔꿈치를 많이 다쳤는데, 상처는 며칠이 지나니 붓고 고름이 나오며 통증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장사를 하시느라 매일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오셨던 어머니는 뒤늦게야 내가 아픈 것을 아시고 나를 병원에 데려가 치료받게 하셨고 마음 아파하시며 눈물을 많이 흘리셨다.
  나는 그 일로 새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마음 깊이 자리 잡게 되어 점점 성격이 비뚤어지고 세상마저 원망하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급기야 초등학교 4학년 때는 가출을 하기 시작했는데, 막상 집을 나와서는 딱히 갈 곳이 없었기에 여기저기 거리를 배회하다가 남의 집 굴뚝 밑에서 잠을 자고 며칠 동안 굶주리다가 겨우 집에 돌아가곤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새
아버지의 구타가 따랐기에 다시 집을 나와 불량배들과 어울리곤 하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불량배들과의 패싸움으로
소년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었고, 그렇게 한번 발을 들여놓게 된 교도소에는 그 후로도 자주 들락거리게 되고 말았다. 그곳에서 예수님을 믿으라는 전도를 많이 받았으나 원망과 증오로 가득 찬 내 마음은 악에 바쳐 있었기에 아무리 좋은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하나님을 만난 후 새 삶을 회복

  집행유예기간을 합한 긴 형기를 마치던 날, 교도소를 나오며 “이번엔 마지막으로 크게 한탕한 후 잡히지 말고 잘 살아봐야지......”라고 마음먹고는 어머니와 동생과 연말을 함께 보내기 위해 그토록 들어가기 싫었던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12월 23일로 기억되던 그날, 집으로 가던 길의 어느
교회 앞을 지날 때였다. 마침 교회 안에서 몇 명의 젊은 사람들이 환한 얼굴로 웃으면서 나오고 있었는데, 그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 중 한 여자가 천사처럼 보였고, 또한 빛처럼 나를 비취는 것 같은 그들의 밝은 모습에 비해 내 자신은 병들어 초라한 짐승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천사같은 그녀와 그들의 웃는 얼굴이 눈앞에 교차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의 마음은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교도소에 있는 동안 예수 믿으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어도 관심이 없었는데, 그 날 밤 내 마음은 어느새 교회에 앉아 있었고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에 그 교회를 찾아갔지만 막상 들어갈 용기가 없어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보며 교회 앞을 서성이고만 있었다. 그러던 중 전날 보았던 천사같은 그녀가 나에게 다가와 교회에 들어가자고 말하여 얼떨결에 따라 들어갔다.
  그날 본 교회의 광경은 정말 좋았다. 맨 뒤에 앉아 아기예수의 탄생부터 부활까지의 내용을 담은 성극을 보는 동안 왠지 모르게 자꾸만 눈물이 흘렀는데, 그 순간 나는
변화되기 시작했다. 모든 순서가 마치고 다음 주에도 교회에 올 것을 그녀에게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후의 일주일이 얼마나 느리게 지나가는지 조바심이 났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본 가족들은 좀 멍해 보이지만 좋아 보인다고 하며 나의 변화를 반겨주었다.
  그렇게 해서 계속 교회에 나가게 된 후, 알지 못하는 힘에 이끌려
철야기도를 하게 되었다. 철야기도를 하며 나도 모르게 새아버지를 미워한 것과 범죄를 계획한 일 등 갖가지 를 계속해서 회개했고, 은혜 가운데 기도하는 동안 드디어 범죄의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기도하며 6개월을 지낸 후 목사님의 소개로 한 인쇄소에 취직하게 된 나는 전과자라는 낙인을 벗기 위해, 그리고 목사님과 나의 천사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남보다 더 성실하게 일했다.
  그리고 2년 동안의 많은 우여곡절 끝에, 내가 26살 되던 해에 3살 연상인 그녀와 꿈만 같은 결혼을 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결혼 3년 후에는 예쁜 딸과 씩씩한 아들도 갖게 되고, 내 사업도 갖게 되었다. 점차로 사업은 실속있게 잘 되어 제법 돈도 모아지는 등
새 삶을 시작한 세월은 행복하게 흘러갔다.


새로운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그러나 1995년 5월, 나는 지옥으로 떨어진 것만 같은 악몽 같은 힘겨운 시간을 맞아야 했다. 천사같은 사람, 나를 구원으로 이끈 사람인 내 사랑하는 아내가 폐암에 걸렸다는 것이다. 나는 평소 건강하던 아내가 폐암에 걸렸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 망연자실했지만 정작 아내는 침착했다. 아내는 며칠 기도해 보더니 곧 나을 병이니 상심 말고 함께 일주일 동안 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를 하자고 했다. 나는 아내의 말을 그대로 믿고 싶었고 아내와 함께 강남금식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시작했다.
  
금식을 시작한 지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집에서 급히 연락이 왔다. 아내의 진단결과가 미심쩍어 정밀히 판독을 해보니 폐암으로 착각할 정도로 흡사할 뿐이지 폐암은 아닌 것 같으니 다시 검사를 해보자는 병원의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기뻐 뛰며 “할렐루야!”를 외쳤다. 벅차고 감사한 마음으로 작정한 금식기간을 채우면서 나의 신앙더욱 견고해져갔다. 기도원에서 흩날리던 꽃잎이 나를 축복해주시는 하나님의 미소같이 느껴질 정도로 그 해 봄은 나에게 새로운 환희를 안겨주었다. 기도를 마치고 내려온 후 병원에서 재검사를 한 결과 아내는 정상이었다.
  그 후 우리 부부는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어 일 년에 몇 번씩은 강남금식기도원을 찾고 있다. 그때 마다 은혜를 새롭게 부어주심을 진정으로 감사드린다. 나에게 이런 귀한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