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하신 하나님
뇌성마비 송명희 시인은 몇 미터 떨어진 용변기에 앉기 위해서도
온 몸이 부르르 떨리고, 땀이 범벅이 되고,
용변을 극도의 인내로 참으며 엄청난 사투를 벌인다.
또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한 마디 말을 하려면
온 몸 전체의 힘을 목에 싣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에야 간신히 띄엄띄엄 그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시에서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주신 하나님을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찬양하고 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가끔 “왜 그에게 주어진 것이 내게는 없을까?” 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에게 주시지 않고 자신에게만 준 것도 많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다. 행복의 기회와 가능성은 똑같이 주어진다.
하나님은 내게는 ‘이것’을 주고, 남에게는 ‘저것'을 주시는 하나님이다.
그런 다양성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행복의 기회와 가능성은 똑같이 주어지지만 행복의 열매는 자신이 심은 대로 주어진다.
불평은 대개 평등과 공평의 오해에서 비롯된다.
성경에 ‘평등’이란 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공평'이란 말은 무수히 많이 나온다.
하나님은 획일적인 평등보다 공평을 원하신다.
사람은 자신이 공평하지 않은 길을 갈 때 더욱 하나님을 불공평한 분으로 느끼게 된다.
문제는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공평하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 문제이다.
공평의 참된 의미를 모를 때 불평이 나온다.
살면서 잃을 때도 있고 얻을 때도 있다. 잃은 것에 집중해서 살면 인생은 더 어렵게 된다.
받은 것을 생각하며 살라. 남이 의도적으로 상처를 준 것도 아닌데
스스로 비교의식에 빠져서 열 받는 삶을 살지 말라.
비교의식은 나를 왜소하게 만들거나 반대로 교만하게 만든다.
온갖 불행은 비교의식에서 생긴다. 비교의식을 버리라.
하나님은 나만의 특징과 장점과 행복을 조건을 주셨다.
하나님이 어떻게 공평한지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지만
하나님이 공평하신 분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히 믿으라.
삶의 태도가 삶의 높이를 결정하고, 말의 태도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적절하지 않은 말은 다섯 마디도 많고, 불평하는 말은 한 마디도 많다.
하나님의 공평하심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내가 지금 공평한 길로 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결국 자신 안에 있는 불평은 자신의 길을 살피라는 내적인 싸인이다.
심지 않고 거두려고만 하면 거둘 것이 없다.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의심하지 말고 의심하려면
자신의 삶과 인생을 대하는 자세부터 먼저 의심해보라. (080425)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