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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론’과 ‘실사구시’, 結果로 판단해야

Joyfule 2020. 7. 29. 04:59



관념론’과 ‘실사구시’, 結果로 판단해야


4*19 직후 美언론, “한국 경제기적가능성 全無”
虛構的인 지도자폄하 극복해야 先進化


박정희 대통령의 부정적 측면을 합리화할 필요는 없겠지만, 긍정적 측면을 무시하는 것 또한 잘못된 것이다.

그에 대한 평가를 하려면 8*15해방 이후 우리민족이 직면한 역사적 과제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자. 이 과제들 중 첫째는 민족국가의 수립이었고, 둘째는 빈곤의 탈출이었으며, 셋째는 민주적이고 생산적인 대의정치를 확립하는 것이었고, 마지막은 남북통일이었다.


觀念으론 現實해결 못 해

첫째과제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건립한 이승만 박사의 지도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역사적 정통성에서 벗어난 북한공산주의와 싸우다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을 직시했고, 단독정부노선을 통해 남한을 자유민주주의 나라로 이끌었다.

사회 일각에서는 북한 김일성이 친일파를 숙청해 민족정체성을 바로 세웠는데, 남한 이승만은 친일파를 관용해 민족정기를 말살했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민족적 정통성이 없는 나라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정기’‘민족정체성’같은 것은 하나의 관념이며, 이러한 관념으로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관념과 현실을 동시에 통찰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경륜과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소련공산주의 남하를 저지하는 것이 최대의 민족적 과제라고 믿었고, 친일인사를 숙청하는 것보다 포섭하는 것이 그의 反共정책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박정희 대통령 역시 민주주의의 경제적 기초가 없으면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경제개발이 불가능하므로 자신의 역사적 사명은 민주주의의 경제적 기초를 만드는 것이라 믿었다.

이승만, 박정희 두 사람 모두 “허구(虛構)와 관념(觀念)을 배척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가치관에 입각해 개인의 삶과 국정을 개선한다”는 구한말 ‘개화(開化)주의’노선을 이어받았고, 결국 개화주의가 염원했던 개인의 자유,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다.

관념론(觀念論)과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어떤 쪽이 발전적이었는가는 결과를 놓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민족정기와 민족정체성을 세웠다는 김일성은 동족상잔(同族相殘)의 6*25동란을 일으켰고 김일성 부자는 북한사회를 지금과 같은 비참한 상태로 만들었다. 반면 실사구시노선을 택한 남한은 파란곡절(波瀾曲折)을 겪으면서도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발전했다.


朴대통령, 공산화 막고 빈곤서 해방

두 번째 과제인 빈곤의 탈출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박대통령은 북한의 적화통일을 거부하는 안보태세를 확립하는 동시에 이 나라 국민을 전통적 빈곤으로부터 해방시켰다.

1960년 10월 발간된 미국의 Foreign Affairs는 당시 한국경제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실업자는 노동인구의 25%, 1960년 국민1인당 GNP는 100불 이하이고, 전력산출량은 멕시코의 6분의1, 수출은 200만 달러, 수입은 2억 달러. 한국의 경제적 기적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


대한민국은 경제빈곤과 침체 속에서 적화통일의 함정에 빠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정치력과 지도력은 찾기 어려웠다. 비참한 현실이었다. 이때 5*16혁명이 일어났고 불과 18년 만에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한국은 각광받는 산업국가로 탈바꿈했다.


이승만*박정희, 獨裁 아닌 권위주의 정권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라 비판한다. 그러나 적어도 3권 분립이 있고, 지나칠 정도로 정부를 비판하는 국회와 언론이 있고, 학생데모가 끊이지 않는 나라를 독재국가라 칭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외국의 학자들이 독재정권이 아닌 권위주의 정권이라 부르는 이유도 이에 근거한다.

물론 박정희 대통령의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인권유린 등 정치폐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자신을 보좌한 사람들의 이 같은 과오에 대해서도 책임을 회피하려 하지 않았다. 후일에 비난을 받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말했다.


내가 보기는 박대통령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모르거나, 부정하고 있었다고 할 수 없다. ‘새마을운동의 계획과 집행을 마을사람들의 철두철미한 토의와 합의에 맡겨, 이 운동이 민주주의의 도장이 되게 하라’고 장관들에게 지시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그러나 그가 한국의 정당정치에 혐오와 불신을 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고, ‘정치는 내가 맡을 것이니 경제장관들은 오직 경제개발에만 전념하라’고 당부하곤 했다.


이념적 지도자*현실적 지도자, 모두 존경해야

우리는 지도자의 양면을 균형 있게 판단하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지도자는 이념적(理念的)지도자와 실천적(實踐的) 지도자로 구별할 수 있다. 영국의 경우 존 로크와 J.S.밀 등이 전자(前者)라면, 크롬웰(Oliver Cromwell)은 후자(後者)로 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존 로크의 영향을 받은 매디슨, 해밀턴 등이 전자였고,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워싱턴, 링컨이 후자였다. 우리나라의 이념적 지도자는 백범 김구 선생, 도산 안창호 등이 널리 알려져 있고, 실천적 지도자로는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을 꼽아야 한다.


이념적 지도자는 현실을 비판하고 이상을 드높인다. 그러나 실천적 지도자는 이념을 현실에 적용하려는 과정에서 엄청난 난관에 부딪치고 때로는 그 이념에 반하는 행동이 강요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글과 말로 좋은 소리를 하는 지도자에게는 존경을 표하지만 나라의 각박한 현실을 타개키 위해 흙탕물에 뛰어든 실천의 지도자는 ‘옷에 흙을 묻혔다’하여 지나치게 깎아 내리는 경향이 있다. 김구 선생의 동상은 있어도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은 있던 것도 끌어 내렸고, 박정희 대통령의 동상은 찾을 수 없다. 이념의 지도자를 존경해야 하지만 실천의 지도자도 존경해야 한다.


일부 정치세력이 허구와 관념으로 과거를 평가하고 과거의 지도자들을 폄하하고 있는 이 때 그릇된 역사의식부터 고쳐나가는 것이 선진화의 과제 중 하나라 느끼고 있다.


김성욱  2006-09-27 오후 3:3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