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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폭도들의 증거 사진들

Joyfule 2006. 11. 8. 01:34

  *기관단총은 軍 생활 했다고 아무나 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군이 소지 하지 않은 칼빈과 M1 탄흔은 누가 쏘았다는 이야기인가?

 

- '임천용'씨의 인터뷰 중 일부-

   그때 상황에서 여기 봉기군 능력으로 방산 업체나 그 밖의 국가 시설물을 습격한 사례나 교도소 습격한 사례, 탱크나 장갑차등 중장비를 탈취한 사례 등에서 볼 수 있었던 그런 능력이 봉기군에게 있었겠느냐, 없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있어도 한두 사람이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대중적으로 무장봉기가 될 수 있었던 여건 면에서 볼 때 광주 땅에서는 기반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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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하는 것을 들어보니까 그때 사상자들을 병원에서 수습하고 치료한 내용을 분석한 것을 보면 뒤에서 맞아 사망하고 부상한 경우가 더 많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북한에서도 그런 소리를 들은 바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북한에서 내려간 특수요원이 양쪽 진영에 포진해서 말하자면 이것은 내부교란 내지 배후교란이지요.

양쪽에서 소요를 일으켜 싸움을 붙이고 당사자들은 모르니까 말이지요. 봉기군 쪽에 가담하고 있는 사람들은 혼란상황을 이용해서 사상자를 내고 그러면 거기서 나는 사상자는 무조건 진압군 쪽에 원인이 있는 것이 되니까 문제는 북한 쪽에서 이렇게 만들어 나갔다는 것이지요.

▲이도형 : 그 광주사태 직후에 육군본부에 근무하던 내가 잘 아는 장군으로 광주지구 계엄사령부 참모였던 사람인데 희생자들 屍身彈痕(시신탄흔) 조사를 했어요. 1백68구인가 그랬는데 그 당시 국군은 모두 M16을 갖고 있었거든요. 칼빈이나 M1은 그때 국군에게 없었어요.

그런데 탄흔 조사를 하니까 약 3분의 2가 칼빈에 맞아죽었더래요. 이것이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 소위 봉기군 시민군 그 사람들의 총격에 맞아 죽은 것을 의미한단 말입니다. 자기들 끼리 쏘아죽인 것이란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요. 아무튼 그것은 전후맥락을 다시 따져 봐야 되겠지만 어쨌든 확실한 것은 북한이 광주에 커밋트(commit)했다는 사실이지요.

▲임천용 : 그거야 확실하지요. 저 혼자 이야기도 아니지요. 여기 내려와서 북한 통전부(통일전선부)에 있던 사람한테 최근에 들은 이야기 인데 통전부 지하 자료실에 대남관련 자료들이 쭉 전시되어 있대요. 그중 한곳에 광주사태 관련 자료들도 전시되어있대요.

                                                                                    <자료제공 :애국 국민>

무장폭도

 폭도들이 군인들을 사살할 때 쓰던 기관총이 도청 마당에 있다.  국군 경비병들에게는 아직 공포탄조차 지급되지 않았던 5월 21일 저녁에 시민군이 기관총으로 맹사격을 하였기에 계엄군은 5월 22일 자정에 도청에서 광주시 외곽으로 철수하여야만 했다. 



 

기관총

폭도들 중 다수가 군복을 입고 지프차를 타고 있었기에 광주 시민들은 군인과 시민군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희생된 광주시민들 중 일부는 폭도들의 총에 희생.



 



 

시민군 차량

무장 시민군의 차량 행렬



 

시민군과 광주

광주 시내에서 늘 총을 들고 다니던 시민군.  이들은 아무데나 총을 쏘았으며, 광주시민 희생자들 중 일부는 시민군의 총에 맞았다.
         (총을 잡은 폼이 직업 軍人 냄새를 풍긴다. 직업 군인? 어디 소속?)



 

광주사태

주의: 이것은 군인이 아닌 무장시민군의 사진이다.

 

출처 : 한국국민의소리 원문보기 글쓴이 : 희망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