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포에 서다 - 조숙
구룡포라는 지명속에는 근육질 붉은 사내가 연상된다. 4차선 막힘없이 뚫린 도로를 휭 하니 달려 대로가 끝나는 지점이 구룡포이다. 마을입구에 들어서면 건장한 사내의 거친 호흡처럼 훅~ 다가오는 비릿한 냄새와 피부에 감겨드는 끈적끈적한 갯바람이 먼저 달려 나온다. 구룡포만의 인사법이다. 몸을 사리며 탈탈 떨거나 시쳇말로 까칠한 성격으로 발끝을 들고 걷고자 하는 손님은 구룡포도 그 속내를 다 보여주지 않는다. 그게 구룡포의 자존심이다.
선창가에 차를 대고 낮은 신발로 갈아 신었다. 시멘트 바닥이 한낮의 열기로 화닥화닥 뜨겁다. 선창에 물기가 마르면 어촌사람들의 살림살이도 쪼그라들기 마련이다. 농촌에 춘궁기가 있듯이 어촌에도 흉어기가 있다. 바다가 아무것도 꺼내놓지 않으니 그저 맥없이 앉아 물때를 기다리는 것이 전부이다. 곤궁한 삶은 인심도 팍팍해져서 어촌의 보릿고개를 넘을 때마다 어부들의 이마에 고랑줄이 하나씩 잡힌다. 정박해 놓은 배들은 코뚜레 씌운 소처럼 처량하다. 종일 등허리휘도록 들일하고 돌아와 헛간에 매인 소처럼 바다의 밭을 경작하는 일도 쓸쓸한 일이긴 매한가지이다. 장화 발소리 출렁거리던 사람들은 파도처럼 밀려가고 주차장으로 슬그머니 용도 변경한 선창에 검고 흰 차들이 엎드려 고양이처럼 눈알을 부라리며 끄렁~ 시동만 걸면 떠날 태세다.
방파제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다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그물에 발이 걸린다. 앞만 보고 걷는 걸음에 대한 제동이다. 옆도 보라는 것일까? 아래도 내려다보라는 충고인가? 제 눈높이 보다 높은 곳을 보느라고 허공을 향해 시선을 두고 발아래 풍선을 딛고 곡예하듯 걷는 내 걸음걸이가 황망해 보였던 걸까. 성글게 짜여진 그물 코 하나가 천천히 걸으라고 조언한다. 엎어진 김에 그물코를 자세히 보니 나름 질서 있게 정방형이다. 그물은 무엇을 가두기만 하는데 소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하는 통로가 된다. 눈과 귀와 호흡을 차단하는 벽과는 다른 휙을 긋지 않는 분리 일 뿐이다.
벌집에 꿀물이 들어차듯 희한하게 그물코 하나에 한 마리씩 멸치가 송송 박히면 나른한 어촌가도 기지개를 켠다. 횡대로 늘어서 그물 한쪽씩 움켜잡고 굳이 알아들으려고 귀 기울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후렴구에 맞추어 멸치 그물을 턴다. 멸치 비늘에 반사된 햇살이 선창을 환하게 비추고 어부들 구릿빛 얼굴에 엉겨 붙은 생선비늘은 보석처럼 반짝인다. 함지마다 그득하게 은멸치가 담겨지고 물소리, 고함소리, 리어카 바퀴소리 한데 섞여 왁자한 선창! 개평으로 얻은 멸치 한 조각 얻어 물은 누렁개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한바탕 축제가 끝나고 나면 무심하게 돌아 앉아 그물 깁는 어부의 모습이 삽화처럼 그려진다. 어촌에서 나고 자란 내게 익숙한 그림이다.
방파제에 올라서서 하늘과 바다의 합일을 본다.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푸름이다. 저 단순한 색깔 속에서 비워내는 법을 읽는다. 처음부터 때 묻지 않은 순진무구純眞無坵가 아니라 풍상과 진동을 겪은 후에 얻어낸 정화이며 통찰이다. 세상 이치가 어찌 착한 파도와 어진하늘만 있었겠는가. 바다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날을 견디며 심해가 되어 갔을 것이다. 조화롭게 밀려가고 밀려오는 파도와 하늘의 교감을 지켜보며 밤새 뒤척여도 풀리지 않는 분노로 베갯잇을 적시던 얼룩조차도 생트집이었음을 깨닫는다.
일본인들이 살던 적산가옥을 지나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시간을 올올이 엮으면 세월이 된다. 세월이 닦아 놓은 길이 골목이다. 구룡포의 집들은 대문마다 활짝 열려있다. 더 감출 것도 은밀한 것도 없다는 듯 자신만만한 사람만이 내 보일 수 있는 속내를 꺼릴 것이 없이 활활 가슴을 열어두고 있다. 까치발로 넘겨보면 안방에 걸린 옷가지 까지 보이는 담장! 코딱지만한 마당에 멀뚱멀뚱 접시꽃 피고 그 아래 채송화가 졸래졸래 앉아 마당과 꽃밭의 경계를 말해준다.
금방 꼬부라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빈집을 찾아 들었다. 꾹 짜면 땟국물이 주르르 흐를 것 같이 꼬질꼬질 낡은 마루 틈 사이에 먼지가 비집고 들어와 앉았다. 시간의 더께 혹은 세월의 궤적이라고 해두자. 이 늙은 집에도 역사는 흘러갔으므로. 이집에 유일하게 이기적인 흔적인 돌계단 밑에 이끼만 파랗게 살아있다.
주인 없는 틈을 타서 변방으로 밀려나 있던 이끼가 행세하는 것이다. 흐르는 물에도 이끼가 끼듯 시간과 시간사이에도 자연스럽게 이끼가 끼는 것을. 부엌이 제법 한 살림한 흔적이 남아있다. 솥을 걸었던 아궁이가 세 개나 아직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하며 널찍한 부뚜막이 아직 온기를 잡아두려는 듯 그을음을 껴안고 있다. 부뚜막에 걸터 앉아 아궁이에 불씨 살려 내듯 가물거리며 꺼져 가는 기억의 편린들을 모아 이 집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여태 있는 듯 없는 듯 같이 걷던 외삼촌이 입을 열었다.
"니 아버지와 여기서 한참 살았제. 그때 나는 막 군대에서 제대했고, 무엇을 해서 먹고살아야 하나 앞날에 희망도 바램도 없었제. 누가 알려주기나 했나. 니 엄마와 매부가 구룡포로 오징어바리 갔다는 소식을 듣고 물어물어 찾아온 게야. 저 언덕 위 문간방에 살았제 기저귀차고 더듬더듬 걷던 니가 있더라. 내가 군대 들어갈 땐 없던 니가.
일 년 쯤 지냈나. 그날도 오징어바리 채비하고 뒤따라 나서는데 갑자기 너거 아부지가 고만 돌아가라 카더라. 우째던지 육땅에 발디디고 살아라 카더라."
삼촌 목울대가 요동쳤다. 반질반질한 갈색목덜미가 구룡포 사내를 닮았다. 삼촌이 내려오시기 전날 숙모로부터 어둠속에서 낮은 전화를 받았다. '너희 삼촌 내려가실거야 담배 너무 좋아하시더니 폐암이래 얼마 못 간데.....'
구룡포에 오면 다시 시작하고 싶어진다. 항구는 떠나기 위해 떠날 채비로 바빠지고 느슨했던 핏줄들이 다시 팽팽하게 감겨지고 정박해있는 배들조차 좀이 쑤셔 저리 어깨를 들썩거린다. 갈매기 알레그로 날아드는 포구! 밍크고래는 출산의 고통을 견디고 붉은 구룡포 사내들은 장화를 신는다. 출어를 앞둔 오징어배가 전구를 모두 켜고 대낮을 밝히고 있다. 오늘밤 수평선에 미뉴에트 울려 퍼지고 무도회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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