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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패 / 황인숙

Joyfule 2015. 11. 13. 10:53

 [2014 5회 백교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예쁜글씨pop-문패

 

 문패 / 황인숙

 

 늦은 밤, 상주에 있는 친정 집에 도착했다. 덩굴장미를 화환처럼 두른 대문옆 문패 아래 평상에 쪼그리고 앉아 계시던 아버지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신다.

 

 "밤인데도 차가 밀리더냐? 왜 이리 늦었누?"

 

 늙고 초췌해진 아버지의 야윈 어깨 너머로 문패가 보인다. 조그만 나무판에 새긴 아버지의 이름 석 자가 가끔 달빛에 숨었다 얼굴을 내미는 붉은 장미꽃 송이와 함께 달 그림자에 찰랑인다. 이름 석자의 공간에 숨은 여백을 달빛이 채워준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도시인들에게는 집은 있으나 문패는 없다. 아파트는 몇 동, 몇 호 같은 숫자가 문패를 대신하여 주인을 알려주고 있고 단독주택이란 것도 올해부터 도로명 주소로 바뀌에 문패를 찾아보기가 어렵게 됐다.

 

 자꾸만 메말라 가는 인간의 서정이 한낱 숫자에 갇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면서 문패를 바라본다. 아버지의 얼굴은 햇빛에 그을려 까맣게 채색이 됐다.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투박한 바람과 맞서며 삶을 개척해나가느라 나이보다 더 들어보이는 시골 할아버지의 모습이 문패에 오버랩된다. 한 인생의 파노라마가 울먹이는 딸과의 사랑으로 어루어져 아름다우면서 가슴 아픈 풍경화를 그려낸다. 아버지의 초상화는 늘 그랬다.

 

 제과공장을 운영하셨던 아버지는 가족보다도 친구를 더 소중하게 여기셨다. 가족으로서는 참으로 야속한 분이셨다. 어머니가 차려놓은 아침밥상을 뒤로한 채 친구에게 보증을 서주셨던 아버지의 이름 석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빨간 딱지가 되어 반찬처럼 밥상 위로 올라앉았다. 입에도 댈 수 없는 흉물스런 반찬 앞에서 우리 가족은 더 이상 '가족이라는 이름의 공동체'로 묶이기 힘들었다.

 

 맨주먹으로 시작해 어렵게 일으킨 제과공장과 집 등 모든 재산이 채권자에게 억류되었다. 그 파문은 너무 커 아버지를 폐인처럼 만들었다. 빚잔치를 하고 겨우 건진 작은 집 한 채에 당신과 사랑하는 가족 모두를 맡긴 아버지는 술과 낮잠으로 하루 하루를 보냈다. 그때 멍한 모습의 아버지 얼굴은 쾌활하고 기분을 낼 줄 알던 과거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집안 살림이 어렵게 되자 어머니는 과수원에 나가 일을 하셔야 했다. 어쩌다 집에 손님이 오시는 날엔 창피하다며 손님이 돌아갈 ?까지 어머니를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어머니의 지친 몸을 길바닥에서 쉬게 했던 지극히도 당당하고 완고한 분이 아버지였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공무원 시험을 치라는 아버지와 대학진학을 고집하는 나의 팽팽한 실랑이는 급기야 황소 마냥 두 눈만 끔벅이는 아버지의 눈물샘을 자극하고야 말았다. 대학 합격통지서를 손에 쉬고 한참이나 생각에 잠긴 아버지가 무겁게 내린 결론은 집을 팔아서 대학을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그해 따라 유달리 추웠던 12, 아버지는 약초 캐는 일을 시작하셨다. 밑천없이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었다. 오토바이 위에 덩그러니 얹혀 매서운 바람 앞에 온 몸을 웅크리고 산으로 향하시는 모습은 지금도 선명한 영상으로 남아 잊을 수가 없다.

 

 입학식 하루 전날, 학교 근처에 마련한 자취방을 손수 정리해 주시더니, "잘있거라. 아버지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넌 아무 생각말고 공부만 열심히 해. 그리고 여기 녹음기, 방은 비록 조그마하지만 우리집이라 생각하고......" 말끝을 끝내 맺지 못하고 돌아서서 가시던 아버지, 그 쓸쓸하던 뒷모습은 무능한 아버지라고 그토록 원망했던 내 가슴에 나를 흔들어 깨우는 종소리가 되고도 남았다.

 

 나는 매일 매일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대학생활을 했다. 장학금을 받아야 아버지의 고생을 덜어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공부에 매달렸다. 아버지께서는 한여름 뙤약볕에도 아랑곳없이 산 속을 누비셨고, 한겨울에도 칼바람 속을 헤매셨다.

 

 나는 다짐을 했다. 나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팔았던 집을 반드시 되찾아드리고 결혼을 하겠다고. 그래서 아버지처럼 아낌없이 그늘을 만들어 주는 한 그루의 느티나무가 되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을 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또 한 번의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다. 오늘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고 해서 당장 시원한 그늘을 만들 수 없음을 깨닫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이라니......

 

 아버지께서 환갑이 다가올 무렵 옛집을 되찾았다. 옛집에 살던 분이 집을 팔겠다고 내놓아 살던 집을 처분해 산 것이다. 아버지는 그만큼 옛집에 대한 애정이 컸다. 매입 후 도시계획에 따라 옛집의 넓었던 마당 가운데로 도로가 지나가 옛 모습 그대로는 아니었지만(대신 보상금이 주어졌다) 어렵게 되찾은 아버지의 아늑한 울타리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솟았다. 대문 위 덩굴장미 사이로 걸려 있는 아버지의 이름 석 자가 새겨진 문패는 돌담 위에 얹혀있는 누런 호박의 정겨운 미소를 닮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버지를 두 번 다시 뵐 수가 없다. 작년 5, 어버이날을 이틀 앞두고 약초를 캐러 가셨던 아버지는 그만 산에서 쓰러지셨다. 병원에서는 폐에 기흉이 생겨 회복이 어렵다고 했다. 두달 동안 몇 번의 수술을 받고도 자식들이 걱정할까봐 애써 웃음을 보이시던 아버지, 아직은 더 살고 싶다며 마지막 끈을 놓지 않고 호흡기에 의지해 온몸으로 버티셨지만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1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는 안 계시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아버지 이름의 문패를 그대로 걸어두고 있다. 아버지의 체취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문패를 흔들고 가는 바람 한 떨기, 덩굴장미와 벽돌에도 생명을 불어넣는 아버지의 문패, 그것은 아버지의 삶이 승화된 사랑의 징표이다.

 

 살아가면서 지치고 힘들 때면 내 가슴속의 울먹이는 사랑으로 용기와 희망의 꽃씨를 심어준 아버지의 드라마가 이제는 꽃물로 타오르고 있다. 하나의 카타르시스다.

 

 닷새 있으면 아버지의 첫 기일이다. 친정 집을 찾는다. 작년처럼 문패 아래 평상에 아버지가 앉아 계시다가 금방이라도 일어서서 맞아주실 것만 같다. 불과 한 시간이면 닿는 거리인 곳을 살아계실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가지 못했던 불효를 뒤늦게 후회해보지만 돌이킬 수가 없다. 풍수지탄이다.

 

 한여름 가뭄에도 결코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물로 가냘픈 가지에도 싱싱한 꽃대를 피워 올렸던 삶에 나는 또 하나의 문패를 달아드리고 싶다. '감사'라고 . 푸른 안개처럼 솟아오르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간절히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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