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숲, 탄생의 터전 / 박시윤

Joyfule 2015. 11. 7. 12:20

 

 (만든이:김포정운)-외국곤충도감(1탄)

숲, 탄생의 터전 / 박시윤

 

 

“예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야 해.”

두 눈을 감고 기도를 올리는 아이 앞에 또 하나의 무덤이 늘었다. 아이는 작은 손으로 흙 봉오리를 만들고 얼마나 정성들여 토닥였는지 모른다. 감은 눈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다.

 

 늦은 오후의 휴양림은 도시와는 달리 해가 빨리 잦아든다. 설핏설핏 마지막 햇살을 남기며 해가 넘어갈 무렵, 휴양림의 주변은 온통 곤충의 천지가 된다. 빛이 싫어 낮 동안 몸을 숨기고 있다가, 어둠이 내리자 활동을 시작하는 곤충들이 낮게 비상하면 밖은 아이들의 소리로 왁자해 진다. 곤충과 아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한바탕 놀이잔치를 벌인다. 일제히 달려 나와 곤충을 잡으려고 몰려다니는 아이들 소리에 여섯 살 난 둘째가 귀를 세운다. 평소 곤충에 관심이 많아 스케치북을 온통 곤충으로 그려 넣던 작은아이도 신이난건 마찬가지다. 잠자리며 나비의 날갯짓을 따라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갔다 몰려온다.

 나는 아이들의 무리를 바라보다 작은아이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이상하다. 아까부터 작은아이는 아이들의 무리에서 떨어져 있다. 무엇을 골똘히 살피는가 하면, 바닥에 오래토록 쪼그려 앉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엄마! 빨리 와 보세요. 큰 일 났어요. 아파서 죽으려고 해요!”

다급한 부름에 나는 쏜살같이 아이가 있는 참나무 아래로 가 쪼그려 앉는다. 그간 책에서만 보아왔던 사슴벌레다. 배는 이미 뭉그러져있고, 체액이 흘러나와 움푹 페인 몸뚱어리 속에는 이미 개미가 잔뜩 꼬였다. 사람의 발에 밟힌 흔적이 역력했다. 아직 숨이 끊이지 않은 사슴벌레의 움직임이 너무 고통스러워 보인다. 마지막까지 삶의 끈을 놓고 싶지 않은 것일까. 더 이상 가망이 없어 보이는 몸을 이끌고 어디론지 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겨우 손가락 두 마디크기의 어린 녀석이 가혹한 형벌을 받고 사경을 헤매고 있다.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내게 어떻게 좀 해 보라며 애원한다. 나는 작은 나뭇가지를 주워 꼬여있는 개미를 걷어내고는 사슴벌레 앞에 나뭇가지를 갖다 댄다. 사슴벌레는 마지막 힘을 다해 나뭇가지를 부여잡는다. 나는 사슴벌레를 들어 올려 참나무의 크고 웅장한 옹이에 고이 올려놓는다.

 

 “엄마! 이제 사슴벌레 안 죽는 거지? 엄마가 간호사니까 사슴벌레 치료해 준거지.”

나는 아이 앞에 쪼그려 앉아 눈을 맞추고 희망의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나는 안다. 머지않아 사슴벌레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것을. 아이는 생각한다. 아기사슴벌레가 어른으로 자라서 커다란 집게를 가지고 나쁜 곤충들의 무리를 없애버릴 것이라는 것을.

 

 산림의 공간마다 휴양객들은 하루, 이틀간 휴식을 즐길 터전을 마련한다. 사람들은 나무와 나무사이에 해먹을 걸고 자신의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나무에게 지운다. 말없이 무게를 떠안고 서있는 나무 곳곳에 벗겨지고 부러진 상처가 보인다. 어떤 이들은 나무아래 숯과 탄을 피워 고기를 굽는다. 불빛을 찾아 날아든 나방들의 날개에 가차 없이 불이 옮겨 붙었고, 흔적 없이 사라졌다. 나무 가지가 열기에 누렇게 죽어가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삼삼오오 쳐진 텐트들은 하나같이 수 십 개의 줄을 나무에 동여매고 숨통을 옥죄고 있다. 아이가 나무를 걱정하며 또 한 번 눈물을 글썽인다. 아이도 나무도 아파하고 있다. 자연自然이 소리 없이 아파하고 있다.

 

 아이는 울다 잠이 들었고, 나는 밤새 뒤척이며 휴양림에서의 첫 밤을 보낸다. 밤새 비가 내렸고, 비가 그친 아침은 참으로 싱그럽다. 운무가 드리워진 산마루를 바라며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숲이 새삼 내 앞에 있음에 감사했다. 풀끝에 맺힌 이슬의 영롱함, 막 봉오리를 여는 산나리, 개망초, 붓꽃, 창포들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푸스스, 잠에서 깬 아이의 손을 잡고 아무도 걷지 않은 아침의 숲 속 길을 걷는다. 여전히 아이는 곤충을 찾기에 여념이 없다. 날개를 가진 것들은 하나같이 꽃잎에서, 풀잎에서 젖은 몸을 말리고 있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땅에 몸을 기대고 어디론지 분주하게 오고 간다. 다시 쪼그려 앉은 아이가 유심히 곤충들의 몸놀림에 관심을 쏟는다.

 

 툭-, “아야!” 아이가 머리 위로 떨어진 것을 바라본다. 매미다. 비가 내리던 간밤에도 멈추지 않고 울어대던 그 매미였을까. 수명을 다한 것일까. 아니면 육중한 몸을 바닥으로 던져 스스로 목숨을 버릴 만큼 감내하기 힘든 삶이 있었을까. 나는 조용히 아이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쏠리기를 바라지만 아이는 어느새 죽은 매미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있다. 그리고는 여기, 저기 한없이 흩어져있는 곤충의 주검을 바라보며 “왜, 왜?”하며 내게 답을 구하고 있다.

숲은 지금 사방이 죽음이고 천지가 주검이다. 장수풍뎅이, 물잠자리, 나비, 벌, 나방, 사슴벌레…. 아이의 눈에 하나, 하나 주검들이 들어찬다. 아이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리고 인기척이 드물고 제법 볕이 잘 드는 곳에 구덩이를 판다.

 “이 녀석은 꽃을 좋아하니까 여기, 이 녀석은 물을 좋아하니까 여기, 이 녀석은 나무뿌리를 좋아하니까 여기.”

그간 책에서 습득한 지식으로 무덤을 만든다.

 

 “넌 왜 죽은 것만 가져? 난 이렇게 살아있는 거 많이 잡았는데.”

매미채를 든 아이가 무덤을 만드는 작은아이에게 커다란 곤충채집통을 내보이며 자랑질을 한다.

“살아있는 걸 함부로 잡으면 어떡하니? 녀석들의 엄마가 얼마나 애타게 찾고 있는지 몰라? 빨리 놓아줘. 그 녀석들이 자라야지 또 알을 낳고 굼벵이가 되고 곤충이 되지!”

야물딱지게 아이가 쏘아 붙인다.

 

 아이가 묻는다.

 “엄마! 매일매일 안 죽는 곤충도 있어? 있었으면 좋겠어.”

나는 또 한 번의 거짓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어느새 아이의 앞에 무덤이 뭉게뭉게 늘고 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아이의 슬픔은 몹시도 깊고 길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아이는 제일 먼저 곤충들의 무덤으로 달려가 “잘 잤어?” 하며 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또 다급히 나를 부른다. 조막만한 무덤가에 어젯밤엔 없었던 버섯 서너 개가 돋았다. 회한에 찬 아이가 말한다.

 “야호! 곤충들이 예쁜 버섯으로 다시 태어나려고 해요. 저기요, 저기서도 애기 싹과 버섯이 돋아나고 있어요”

이슬에 젖어 고요하기만한 숲이 이내 왁자해진다. 상수리나무 아래서도, 전나무 아래서도, 소나무, 떡갈나무 아래서도 가만가만 이름 모를 생명들이 탄생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이의 눈에 숲은 지금 사방이 탄생이고 천지가 창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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