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오늘의요절

그곳은 정말 대책이 없는 곳이었다…

Joyfule 2012. 12. 16. 00:40

 

 

 



아이티에서 연락이 왔다. 지진이 나자 전 세계에서 아이티로 구호 물품이 쏟아져 들어갔다.
그러나 그 물품들을 나누어 주는 것이 더 힘들었다.
무질서한 환경 가운데 물품을 받으러 나온 국민들이 폭도(暴徒)로 변해 갔기 때문이다.
UN에서 ‘누가 구호물품을 적절히 잘 나누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며 단체를 찾던 중에 ‘소중한사람들’이 선정되었다. 노숙인들에게 무엇이든지 잘 나누어주는 단체니, 아이티 국민들에게도 잘 나눠줄 수 있다고 인정을 받아 아이티에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지진이 일어난 아이티의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거리에는 고아들이 넘쳐났다.
어머니들은 배고픈 아기를 안고 와 “제발 내 아기를 고아로 받아 달라”고 고아원 앞에서 진을 쳤다. 기존의 고아원들은 난민수용소를 방불케 했다. 고아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누구의 보살핌도 없이 그저 후원단체로부터 무언가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화장실이 없거나 노천인 곳은 배설물이 방치되고 있다가 비가 내리면 삽시간에 홍수처럼 불어난 물 위로 둥둥 떠다닌다. 시간이 지나면 어딘가에 가라앉아 악취를 풍겼고, 전 국민이 콜레라의 공포에 떨었다. 거리에는 쓰레기가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차에 막무가내로 매달린 아이들이 과자 하나라도 구걸하려고 목숨을 걸었다. 바지를 입지 못해 다 찢어진 윗옷을 잡아당겨 아랫도리를 감추려는 여덟 살 소년의 수치심이 가슴을 저리고 아리게 하는 나라로 아이티는 나에게 다가왔다.


3년 전, 아이티에 예수 마을이 세워지다

나는 아이티에 예수 마을을 세울 것을 소원했다.
고아들과 미혼모가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쉼터가 있는 곳을 마련하고 싶었다. 그런 간절함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온 지 닷새쯤 되던 날, 한 60세 정도로 보이는 여인이 나를 찾아왔다.
그 여인은 누런 서류 봉투를 나에게 내밀었다. “보름 전에 제 친구가 저 세상으로 떠났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이 서류를 사모님에게 꼭 전해달라고 간절히 당부하고 눈을 감았어요”라며 말을 이었다.

나는 그 서류 봉투를 뜯으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2007년 가을, 한 여인이 힘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던 기억이 났다. “사모님! 제가 지금 법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습니다. 저를 도와줄 수 있나요?” “제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사모님의 주민등록증을 앞뒤로 복사한 것과 주민등록 등본 한 통을 보내주시면 제가 법적인 올무에서 풀려날 수 있어요.”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노라

불쌍히 여기는 것은 내 마음이 아니고 주님의 마음이다.
주님이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공급하실 것이다. 나는 이튿날 그녀가 말한 서류를 김포로 보내주었다.
그 이후에 그녀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나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하고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런데 그 서류 봉투 속에 3년 전에 내가 보낸 서류가 들어 있었다.
그 앞장에는 ‘다음 건물을 유정옥에게 증여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김포의 작은 아파트가 명시되어 있었다. 나는 혹시 그녀에게 자식이 있다면 얼마나 어머니를 원망할까 싶어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만 받고 자식들에게 돌려줘야지 싶었다. 그런데 가족관계 서류를 떼어보니 결혼하지 않은 분이었다.
우리는 주님이 아무런 사인을 주지 않아도 주님을 믿어야 한다.
주님은 우리의 걸음마다 함께 하는 분이시다.
주님은 우리를 지지하며 도우시며 함께 가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정확하고, 확실하게 목격하도록 보여주신다.


우리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소중한사람들’은 지체하지 않고 아이티에 센터를 마련했다.
매일 무료 급식과 예배와 교육을 하고 옷과 의약품 생필품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선교사를 파송해야 했다. 그러나 누가 아이티의 영혼들을 가슴에 품고 그 땅으로 떠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찾아도 갈 사람이 없었다. 결국 내가 가야만 했다. 신림동 동산교회에서 청년부 목사로 일하고 있는 아들을 불렀다. “아이티는 하루 빨리 급식을 나눠줘야 영양실조로 죽어가지 않을 수 있어. 그들에게 어서 회충약을 나눠줘야 해. 그래서 엄마가 15일은 한국에, 15일은 아이티에 가 있어야 될 것 같구나.” 아들은 내가 가면 시차적응 때문에 힘들 테니 자신이 교회를 사임하고 대신 아이티에 가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아들의 비장한 얼굴을 보며 주님께 감사했다. 어디든지 주님이 부르면 달려갈 충성된 종으로 준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너무 좋지! 그러나 몸이 허약한 네 아내 선인이는 어떡하니?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많은데 아이티는 실려 갈 응급실도 없어.” “주님이 건강을 책임져 주실 거예요.”

아들이 떠난 후, 나와 6년 동안 한 몸처럼 동역한 송 전도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송 전도사는 아이티에 선인 사모가 갔을 경우에 힘이 들 수도 있으니 자신이 대신 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송 전도사는 내가 내 자신보다 더 믿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아이티에 간다고 하니 말할 수 없이 기뻤다. 한편으론 6년 동안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동역해 온 그와 헤어진다는 것이 감당하기 어려워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주께서 모든 것을 공급하실 것이다

‘소중한사람들’에서는 작년에 송 전도사 부부와 강 목사 부부를 선교사로 아이티에 파송했다.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기 전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다가 아이티의 살인적인 물가에 현기증이 났다. 모든 물품을 수입에 의존하다보니 한국 물가의 3배 정도였다. 7년 동안 노숙인들에게 무료 급식을 하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두려움이었다.

‘주님! 저는 이 아이티가 너무 두려워요. 4명의 선교사도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에 왔는데 어떻게 하면 좋아요.’ 새벽기도 때 주님은 마가복음 8장으로 말씀해주셨다. 그 말씀은 모든 두려움을 밀어내고 찬양의 환호성을 외치게 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내 마음이 아니고 주님의 마음이다. 주님이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공급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