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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하지 말라!

Joyfule 2014. 8. 29. 05:13
 
근심하지 말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모든 짐을 주님께 가지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의 짐을 맡긴 자에게 안식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이것은 아주 실제적인 약속의 말씀이다.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여행과 그 짐을 내려놓고 빈 몸으로 걸어가는 여행은 
가벼움과 자유함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만약에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자기의 짐을 
주님께 의탁하지 않고 스스로 지고 간다면 어떨까. 
그것은 믿지 않는 이와 별로 차이가 없는 삶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과 불신자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을 들자면 
그리스도인들은 짐을 맡길 대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며 
불신자들은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짐을 지고 
이 불확실성의 인생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실제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자신의 문제를 주님께 의탁하지 않고 
스스로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으로도 모자라 남의 짐까지 짊어지고 가고 있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이다. 
이래서야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을 제대로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다른 사람의 짐을 짊어지고 사는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부모들이다. 
그들은 항상 자녀들의 짐을 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안다.
부모들은 항상 자식들의 걱정을 한다. 
"이 나이에 내가 소원이 뭐가 있겠어.. 자식이 잘 돼야지.." 하고 말한다. 
별로 나이가 많지 않은 사람들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나마 자녀들을 위해서 걱정하는 내용도 다 물질적이고 유한한 문제들이다. 
주로 대학입시 걱정, 취직 걱정, 결혼 문제에 대한 걱정.. 등이다. 
자녀의 영혼이 발전하고 의식이 발전할 것에 대하여 걱정하는 이들은 드물다.
사람의 미래를 만드는 것은 의식의 수준이며 영혼의 수준이다. 
그러므로 어떤 아이가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성적이 좋아도 
그의 의식 수준이 낮고 어둡다면 그의 삶은 잘 풀려나갈 수 없다. 
아무리 유명한 대학에 가고 안정된 직장을 얻어도 그의 삶은 풍성하기 어렵다.
하지만 부모들이 이러한 부분에 깨어있어서 
자녀들의 의식이 깨어나고 발전하기를 기도하고 소원하는 경우는 드물다. 
자신들도 그러한 상태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영혼이 깨어나고 진정한 것이 무엇인지 볼 수 있는 부모만이 
그 귀한 것들이 자녀들에게 임하기를 기도하게 된다. 
그러나 부모들의 영적 발달 수준이 
돈과 편안한 환경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믿는 수준에서는 
다른 소원과 기대를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좌우간, 자녀의 건강을 염려하든 대학입시를 염려하던 그것은 자녀를 더 괴롭히는 것이다. 
자녀의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염려와 어두움의 기운이 
악한 에너지가 되어 자녀를 누르기 때문이다.
몸이 약한 자녀에게 어머니가 이야기한다고 하자. 
"제발. 부탁이니 아프지 말아라.."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자녀는 더 아프게 된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의 기운은 자녀를 억압하게 된다. 
부모의 영이 강하다면 그의 강한 어두움의 영력 때문에 
자녀들의 몸은 더욱 더 약해지게 된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도움이 되기 원한다면 그들은 밝고 맑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부모가 자녀들을 생각할 때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감이 느껴진다면 
그러한 영적 에너지는 자녀들에게 임한다. 
그래서 자녀들은 부모를 통해서 신선한 에너지를 공급받게 된다. 
영적 에너지는 물리적인 거리와 상관없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부모들은 일체 자녀들에 대해서 근심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 자녀를 망치기 싫다면 그래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에 대한 염려와 근심이 떠나지 않으면 어떡하는가? 
성경에도 복음서에도 자녀들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나아온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이 부분을 조심하여 듣기 바란다. 
당신이 지금 자녀들에 대하여 어떤 근심이나 염려나 걱정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생각과 에너지는 분명히 파괴 에너지라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 에너지가 아니고 파괴에너지이다.
생각을 해 보라. 
당신이 그러한 근심에 잠겨 있을 때 당신은 밥맛이 좋은가? 
일이 잘 되는가? 
잠이 잘 오는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파괴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당신이 자녀에 대해서 
그러한 근심과 파괴 에너지를 담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그 에너지가 자녀들에게도 전달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각 에너지, 마음 에너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서울에 있고 자녀는 미국에 있어도 당신의 근심은 자녀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우울하고 어두운 사람이라면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당신은 평생 다른 이들에게 파괴 에너지를 공급하며 살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말이 가혹하게 들리는가?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당신이 가는 곳마다 우울하고 슬프고 가라앉은 분위기는 퍼졌을 것이다. 
그것은 창조 에너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자녀들에게 대한 근심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그것은 악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서 기도한다고 하자. 
그리고 주님께서 이 문제를 맡아주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당신의 영은 자유롭게 되었으며 마음 속에 기쁨과 감사가 충만해졌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 안에 있던 파괴 에너지가 창조 에너지로 바뀌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당신은 자녀를 파괴하는 부모가 아니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통로가 된 것이다. 
조금 전까지 자녀에게 지옥을 주는 부모이었으나 이제 비로소 천국의 통로가 된 것이다.
당신은 자녀에게 말할 것이다. 
"걱정하지 말아라. 우리가 기도했단다. 너는 잘될 것이다." 
당신은 기쁨과 확신 속에서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말할 때 빛과 건강의 에너지가 자녀들에게 전달되게 될 것이다.
당신이 누구를 향하여 근심하고 염려할 때 
당신의 그 에너지가 상대방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러므로 당신이 만약 다른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원한다면 
당신은 항상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 속에 걱정과 염려가 남아있는 한 
그것은 항상 파괴적인 에너지로 쓰여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자녀가 부모가 일생동안 기도한 대로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아름다운 그릇이 되었다고 하자. 
그런데 부모는 일생의 훈련동안 영혼이 별로 발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성질 급함과 이기심, 욕망 등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영계의 아주 낮은 수준에 있다. 
그는 분노와 음란과 아집과 탐심으로 가득하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부끄러운 구원이야 받겠지만 천국의 성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자녀 문제에 신경을 쓰느라고 자신의 영혼은 전혀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정말 비참한 일이 아닌가? 
성경에 있던 위대한 영성인들의 가족을 보라. 
모세의 자녀들은 어떠했는가? 
다윗의 자녀들은 어떠했는가? 
사무엘의 자녀들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부모의 신앙과 영성을 이어 받았는가? 
영성은 대물림되는가?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각자에게 달린 것이다.
부모들은 주님이 허락하시는 범위만큼 자녀를 다스리고 섬겨야 한다. 
하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점차 자녀들을 떠나보내는 준비를 해야 하며 
그들 자신의 선택을 존중해야 하고 그들의 의지를 깨워야 한다. 
그들을 위해서 권면하고 기도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인생과 선택을 존중해야 하며 그들의 인생을 짊어지고 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일종의 우상이다.
우리의 영혼이 깨어나고 변화된다면 우리는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불행할 것이다. 
자녀가 어떻게 되는 그 상태에 따라서 
우리가 행복하고 불행하게 느낀다면 그것은 깨달은 것이 아니다.
행복과 불행은 자신의 영혼의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다. 
다만 무지와 미망 속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그것이 환경에서 나온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녀 때문에 한숨이 나오며 
남편 때문에 한숨이 나온다고 믿게 된다. 
그것이 아니다. 
그 한숨은 당신의 영혼에서 나오는 것이다. 
질식 상태에 있는 영혼이 안타까워서 한숨을 내쉬는 것이다. 
깨달을 때 그 한숨은 사라진다.
부디 당신의 자녀 때문에 근심과 염려를 가지고 살지 말라. 
그것은 어두움의 삶이다. 
그 자녀의 문제를 주님께 의탁하고 즐겁고 기쁘게 살라. 
그럴 때 당신은 자녀에게 빛의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
자녀 때문에 괴롭다고 절대로 착각하지 말라.
당신의 영혼이 깨어나고 주님과 가까운 교제의 상태에 있으면 
당신은 자녀와 상관없이 절대적으로 평안한 상태에 있게 된다. 
괴로움의 상태는 당신 영혼의 상태이지 절대로 환경에서 다른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지만 
당신의 영적 기능이 깨어난다면 이 말이 사실인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안에는 지옥의 근심과 슬픔과 염려가 언제든지 틈타고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슬픔이 다 지옥에서 온 것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대체로 슬픔과 근심과 두려움과 분노는 지옥에서 오는 것이다. 
그런데 영혼이 어둡고 낮은 차원에 있는 사람일수록 
그러한 지옥의 생각들을 잘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영적으로 발전하고 올라갈수록 그러한 어두움의 영계와 멀어지게 된다. 
그래서 환란 속에서도 감사하며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포용하고 용서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영성의 수준이며 실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육체가 이 땅을 떠나게 되고 완전히 천국에 속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분노와 두려움과 혼란과 같은 지옥의 영들, 
지옥의 생각이 우리 안에 침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원천적으로 봉쇄가 된다. 그래서 천국이 되는 것이다.
근심과 두려움은 좋지 않은 것이다. 
또한 남의 인생을 짊어지고 사는 것도 좋지 않은 것이다. 
우리 분량을 넘어선 그러한 걱정은 일종의 우상이며 집착과도 같은 것이다.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녀에게는 그들을 위한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으며 
우리는 신뢰하는 마음으로 주를 의뢰하며 그 인도하심에 자신을 드려야 한다.
남의 인생을 짊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와 비슷하게 남의 인생을 사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나의 삶, 나의 영혼이 영향을 받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남녀들이 흔히 이러한 상태가 된다. 
즉 상대방의 자세나 태도에 의해 자신의 영혼이 흔들리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기에게 잘해주느냐, 못해주느냐에 따라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살기가 싫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삶은 무엇인가? 바로 노예와 같은 삶이다. 
로보트와 같이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삶인 것이다.
이것이 바른 삶인가? 물론 잘못된 삶이다. 
바람에 움직이는 갈대와 같이 그러한 삶은 정함이 없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결정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이들은 타인의 상태에 의해서 피동적으로 움직여지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결혼이란 작은 두 개의 원이 서로 섬기며 사랑하고 발전해 가는 가운데 
좀 더 아름답고 온전한 두 개의 원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두 사람이 서로 도움으로써 다 지혜와 사랑과 모든 면에서 
온전하게 발전해 가는 것, 그것이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서 상대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 
그것은 건강한 상태라고 보기 어렵다. 
그것도 일종의 묶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독립된 영혼이다. 
그러므로 독립된 상태에서 더 아름답고 지혜롭고 풍성하게 발전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영적성숙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이들의 태도나 상태에 의해서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요동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의 무례한 태도나 불합리한 언행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영혼의 평화를 상실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 바르지 않은 것이다. 
악하고 어둡고 낮은 차원의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 때문에 우리의 영혼이 어두운 데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
그것도 역시 의존이며 묶임이다.
오늘날 세상은 요동친다. 
정치도 악하고 경제도 악하며 문화에도 교육에도 많은 악이 자리잡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경우가 없으며 무례하고 많은 근심과 염려와 분노가 
우리의 영혼과 마음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려고 애를 쓴다. 
그들은 우리 안에 지옥을 집어 넣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굴복해야 하는가? 
그럴 필요는 없다.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 
우리는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으며 즐거워할 수 있다. 
사랑할 수 있으며 희망을 가지고 내일을 창조할 수 있다. 
우리가 천국에 속한 사람이라면 그것은 가능하다. 
우리는 세상의 지옥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우리는 지옥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우리는 천국의 빛을 경험하고 천국의 빛을 나누어 줄 수 있다.
우리는 고유한 영혼이다. 
이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우리는 남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세상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남의 인생을 짊어지고 
스스로 어두운 곳에 떨어지려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고유한 영혼이다. 
우리는 천국에 속해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람들이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주님의 손 안에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디 쓸데없는 짐을 지고 고난의 삶을 자처하지 말라. 
그것은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부디 천국의 빛 속에 거하라. 
자유함의 삶을 살라. 
그리스도인들은 자유한 사람들이다. 
그것을 구하는 자들에게 주님의 더 풍성하고 자유로운 삶을, 
천국의 빛을 허락하여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