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까지 오직 주님만 사모하세요!
나는 어릴 적부터 주님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따라 각종 부흥회라든지 산상 집회와 기도원에 많이 따라 다녔습니다.
평소의 교회 예배에서는 주님의 실상을 도저히 감지할 수가 없어서
주님을 개인적으로 가까이 알고 만나기를 몹시 사모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주님은 너무나 멀리 계신분으로 느껴졌고
다른 이들이 주님의 은총을 경험하여 그분의 음성도 듣고
가까이 지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나 부럽고 부러웠습니다.
나는 몸도 약하고 공부도 그리 시원치 않고 가난하였지만
그러한 어떤 것들도 별로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고 아무도 부럽지 않았으나
주님을 가까이 경험하였다고 하는 이들은 너무나 부럽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그러한 은사자라고 알려진 이들을 많이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주님을 만나기 위해 그들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하고 금식을 해도 주님은 아주 멀리만 느껴졌습니다.
영장이 나와서 나는 군대에 갔습니다.
나는 하나의 희망을 가졌습니다.
사람은 어려움이 있으면 하나님을 만나기 쉽다던데
그렇다면 내가 군대에서 하나님을 만날 확률이 높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군대에서는 힘든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훈련은 고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쓰러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 힘들게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동작이 굼뜨고 민첩하지 않아서 피도 많이 흘렸고
다치기도 많이 다쳤지만 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들은 내가 겁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겁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별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까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지요..
내가 그렇게 죽고 싶은 이유는 단 한가지였습니다.
즉 주님이 나를 가까이 만나주시지 않는데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나는 군대에서 성경을 많이 읽었습니다.
훈련소에서만 신약을 두 번 읽기도 했습니다.
훈련 중에 잠시 진흙탕에서 쉬는 동안 나는 성경을 읽었습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잠을 자는 시간에 나는
희미한 불빛 아래서 밤을 새워 성경을 읽었습니다.
나는 줄곧 울면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너무나 아름답고 달콤하다고 나는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나에게 만족이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더 깊은 주님, 가까운 주님을 알고 싶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주를 찾는 동안 주님이 나의 기도에 전혀 응답 하시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 위기의 순간에 응답하시는 주님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한 예를 들면 연대 알씨티 훈련을 나갔을 때 각 소대 별로, 분대 별로 텐트를 쳐야 하는데
우리 분대에서 텐트를 칠 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그 줄을 구해오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물론 칡넝쿨을 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때는 그 철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나를 평소에 벼르고 있던 고참이 모처럼 날을 잡아서
나를 때리기 위해서 시비거리를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군대에서 나는 참 많이 맞았습니다.
맞아서 이빨도 부러지고 얼굴도 피투성이가 된 적이 많았습니다.
기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 혼자만의 세계에 몰두해 있었고 그저 진리를 알고 싶었고
바깥의 내 육신은 어떻게 되든지 그리 관심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몹시 몸이 힘들고 안 좋은 상태라서 나는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오늘은 맞고 싶지 않습니다.
어디서 줄을 구할 수 없을까요..
그러나 그것은 무모한 기도였습니다.
우리 부대는 산 속의 깊은 곳에 있었습니다.
칡넝쿨은 발견할 수 없었고
이렇게 깊은 산골에 사람이 사는 집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한 굵은 나무를 붙잡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밧줄이 필요합니다. 밧줄을 주십시오..
한참을 기도하고 나는 혹시나 하고 산 속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갑자기 눈 앞에 집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집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 집에는 젊은 아가씨가 한 사람 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주 착하게 생긴 아가씨였는데 이런 산골에 젊은 아가씨가 혼자 있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내가 사정을 이야기하자 그녀는 광을 열었는데 거기에 아주 튼튼하고 새것인 밧줄이
마치 준비하고 있었던 듯이 들고 가기 좋게 묶여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녀는 돈도 받지 않고 나에게 그것을 주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과연 그 집이 원래 있었는지.. 아니면 그녀가 천사였는지 갸우뚱해집니다.
내가 그 줄을 들고 가자 모두가 다 탄성을 질렀습니다.
나에게 그것을 시킨 고참은 나를 노려보았지만 그러나 나를 때릴 수 없었습니다.
모두들 다 좋아했고 그 때문에 우리 분대가 전체 성적에서 일등을 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야간 행군 중에 나는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야간 행군 중에는 말을 하면 안됩니다.
얼굴에도 먹칠을 합니다.
총기도 번쩍거려서 보이게 되지 않도록 잘 닦아냅니다.
심사관들이 숨어서 따라다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지적되어 점수가 나쁘게 되면
그 날 밤은 잠은 다 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밤 눈이 어두워서 그만 내 위치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래 전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훈련 나가는 날 근처에 고참에게 맞다가 안경이 깨졌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더듬다가 나혼자 대열을 이탈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나는 난감했습니다.
그렇다고 소리 쳐서 다른 이들을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나는 온힘을 다해서 숲을 뒤지며 전우들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그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캄캄한 밤, 그 산 속에 오직 나 혼자 고립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이대로라면 무사할 리가 없었습니다.
아니 맞는 것은 둘째치고 부대에 무사히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 방법이 없어서 나는 그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간절하게 주님께 호소했습니다.
주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를 도와주세요...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요..
나는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갑자기 눈 앞에서 번쩍이는 인식표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분별하기 위해 철모 뒤에 붙이는 인식표였습니다.
기도하고 있는데 내 근처로 사람들이 가까이 온 것입니다.
나는 살았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랄 일이 있었습니다.
내 앞에 번쩍이는 인식표의 주인공은
바로 대열의 내 앞에 있었던 병사이었습니다.
나는 기가 막혔습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뒤에서 번쩍이는 인식표를 찾았습니다.
그도 바로 내 뒤의 병사였습니다.
나는 갑자기 소름이 돋았습니다.
내가 대열에서 이탈했으나 몇 시간이 흐른 후
모든 대열이 나를 중심으로 정확하게 제 자리로 왔던 것입니다.
나는 정말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무사히 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왔을 때 나는 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내가 내 위치에서 이탈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주님의 개입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이 기도에 응답하시면 이제 주님의 사랑과 살아계심에 대하여
만족이 되고 기쁘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나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나는 그러한 기도의 응답을 이미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 자신에 대한 접촉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응답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선물이었지 주님 자신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 이후도 주님을 꾸준히 구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옷자락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중대장을 찾아갔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나를 교육과 훈련에서 40 일동안 빼달라고.. 그리고 빈방을 달라고..
그 동안 나와 부대를 위해 40일간 금식기도를 하겠다고..
아마도 군대에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제안을 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 중대장은 무섭고 사납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소대장들도 그 앞에서는 그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소대의 소대장은 우리에게 중대장은 호랑이와 같고 한번 걸리면 죽는 날이니
그 앞에서는 행동을 아주 조심하라고 많이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으니 무섭고 말고 할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 부대는 소위 FM이라고 할까요. 철저하게 교육과 훈련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한명이라도 훈련에서 빠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중대장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를 묻더니 상부에 보고를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며칠 후에 중대장은 나를 불렀습니다.
대대장에게 보고를 했는데 자기만 미친 놈이 되었다고 한참 혼이 났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한명 정도는 열외로 할 수 있다고 한참 설득을 했지만
통하지 않았고 이거 완전히 미친 놈이라고..
너 예수장이냐? 하고 핀잔만 받았다고
나 때문에 졸지에 예수장이가 되었다고 껄껄 웃었습니다.
나는 그가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아마 다른 이들도 그가 웃는 것을 보지 못했을 테니까요.
허락은 받지 못했지만 그는 이상하게 그 이후로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었습니다.
훈련 중에 찾아와서 말을 걸기도 했고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부대 전체가 며칠 걸리는 힘든 훈련에 나가는 출정식 때는
그는 나를 불러서 단 위에서 부대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도록 시키곤 했습니다.
아마 그는 나를 참 신자로 생각했었던 것 같았습니다.
세상에.. 나는 주님을 만날 길이 없어서 그저 죽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나는 밤에 초소에서 보초 근무를 설 때 기도했습니다.
근무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와 고단한 몸을 눕힐 때도 기도했습니다.
기도 제목은 한결 같았습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것이었습니다.
시간은 흘렀지만 갈급함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고참이 되어 군대생활이 어느 정도 편해졌을 때
나는 어느 날 군대 안의 교회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나의 갈급함을 이야기하였으나 그는 납득이 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내가 다 알고 있는 성경의 여러 이야기들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교리와 이론이라면 나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 주님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방언을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주님이 필요하다면 주실텐데 뭐 구할 필요가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는 나의 고민이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제대를 한 후에도 여러 목사님들에게 나의 갈망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목회자들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몸부림 끝에 나는 군대에서 제대하기 직전에 주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오직 목숨을 걸고 추구했던 한 가지 소망이었습니다.
그 주님의 경험은 참으로 극적이었습니다.
부대에서 권총 도난사건이 있었고 주범으로 몰려 어처구니 없는 취조와 고통을 겪었으며
마지막으로 기도원으로 도망하여 목숨을 걸고 금식하며 기도했던..
그러한 와중에 나는 주님을 경험하고 방언도 받았습니다.
오랜 세월의 눈물과 갈망이 드디어 해결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해결이 아니었고 하나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나는 주님을 알아갈수록 더 많은 갈망과 사모함이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통의 기독교는 이러한 주님의 실제에 대하여 거의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나는 나의 주님을 찾기 위해서 계속 몸부림치고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내가 영적으로 아주 예민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나는 너무나 둔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남들이 쉽게 받는 방언에도
십년이 더 넘도록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남들이 쉽게 경험하는 것을 나는 몇 십배나 노력하고 추구하고
눈물과 사모함으로 주님께 나아갔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아주 조금씩 하나씩
영적인 실제와 원리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의 선물인 은사나 방언을 아주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을 나의 목숨을 담보로 하여 받았습니다.
나는 그것을 나의 목숨과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방언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서 나는 주님께 이렇게 기도했었습니다.
주님.. 만일 저에게 방언을 주신다면 저는 일생동안 하루도 주님을 떠나지 않고
일생동안 오직 주님만을 추구하겠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그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방언을 받은 후 나는 내 기억으로는 주님을 기억하고 의식하지 않고 산 날은 없었습니다.
나는 밤에 잠들기 전 항상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잠이 들었습니다.
남들은 아주 쉽게 그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어렵고 힘들게 그것을 얻었기에 결코 잊어버릴 수 없었습니다.
나는 젊은이들이,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찾다가 금방 은혜를 체험하고 아주 좋아하다가
어려움이 오면 쉽게 그 열정을 잃어버리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듯이 사모하는 것 같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 열정이 식어버리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나는 목회를 하면서 결혼 전에는 청년들이 열심히 주를 찾는 듯 하다가
결혼을 하고 현실적인 삶에 부딪치게 되면 그 열정을 잃어버리고 타협을 하고
주님에 대하여는 관심을 잃어버리는 모습들을 많이 보고 많이 울었습니다.
열심히 꾸준히 주를 부르는 이는 주의 가까이함을 입을 것이며
갈망을 잃어버린 자들은 주님도 그들을 멀리 하실 것입니다.
찾는 자는 찾을 것이고 관심이 없는 이는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법칙이며 누가 대신하여 찾아줄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여호수아의 말을 이해합니다.
오늘날 너희는 섬길 자를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길 것이라..
그 말에는 그의 심령의 간절함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저는 고별 설교를 하겠습니다.
다시는 저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실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주님은 너무나 좋은 분이십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주님만을 좇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저는 이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아니.. 온 세계가 이 주님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와 나의 집은.. 오직 주님을 추구할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강력한 메시지에 놀랬던 걸까요?
그 모든 청중들은 다같이 외칩니다.
우리도 여호와를 섬길 것이라고..
물론 그들은 그러한 감동과 결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심령과 목숨으로 우리 인격의 가장 깊은 곳에서 믿는 것이지
순간적인 감동이나 기분, 희열에 의해서 믿을 수 있는 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새벽시간이나 밤의 기도 시간에 처녀들의 외치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오.. 주님.. 내 평생에.. 주님을 좇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얼마 가지 않아 그녀들이 타협하고 주를 버리는 것을 보고 많이 울었습니다.
주님께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그녀들의 마음을 빼앗기고
결혼들을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감정의 달콤함은 그리 오래가는 것이 아니며
주를 찾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많이 아팠었습니다.
나는 이제 주님의 달콤한 임재와 꿀같이 흐르는 주의 사랑을 구하는 이들은 많지만..
그 감동과 희열에 빠지기 원하는 이들은 많지만
꾸준하게 인내하고 주를 구하며 주를 위하여
댓가를 지불하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오직 주를 구하며 그의 소유가 되고 그를 위하여
댓가를 지불하기 원하는 이들이 일어나기를 여전히 소원합니다.
이제 나는 주를 구하며 그분을 가까이 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은혜가 빨리 오지 않는다고 속상해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권면을 하고 싶습니다.
마음을 급하게 가지지 말라고..
인내하며 기다리라고..
주님의 때가 올 때까지 순종하며 당신을 그 발 앞에 복종시키라고..
내가 수 많은 시간동안 좌절하며 고통의 세월을 보내었지만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당신도 포기하지 말라고..
우리의 영혼이 조금씩 열리게 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는 많은 꿈과 열망을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오직 한가지 소원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입니다.
주님을 아는 것... 주님께 소유되는 것...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오직 주님의 뜻과 그 품을 그리워하는 것...
오직 그 한 가지 소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이성과의 사랑에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에서,
가족이나 배우자의 사랑에서,
여러가지에서 만족을 얻으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그림자요 헛것에 지나지 않으며
영원한 것, 참된 것은 오직 주님 뿐인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가 올 때까지 우리는 더욱 더
주님만을 사모하고 사모하고 또 사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은 오직 주님과의 만남,
그 정점을 위해 달려가고 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데 그리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주의 이름을 불러도 주의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임재가
가까운 곳에서 임하는 것을 나는 느낍니다.
그것을 너무나 오랜 세월 구하고 구하고 사모했던 것이기에
그것은 나를 너무나 행복하게 합니다.
그 주의 임재가 나에게 너무나 만족과 행복을 주었기에
나는 이것들을 주를 사모하는 많은 이들과 같이 나누기를 원합니다.
나의 마지막 사는 날까지 그 주의 사랑과 임재를 전하고 싶습니다.
수 많은 몸부림의 결과 주님이 은총의 문을 조금 여셨기에
아직도 너무나 많이 굶주리기는 하지만..
이제 조금씩 그의 임재를 여는 문을 같이 열고 싶은 것입니다.
나는 좀 더 많은 이들이 이 사랑의 주님을 구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일시적인 행복이나 만족이 아닌
주님 자신과 주의 뜻을 구하고 또 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께 순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부디 주를 구하고 또 구하십시오.
그것이 곧 행복이며 천국입니다.
자신이 주를 구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인내와 꾸준함과 사모함으로
겸손한 자세로 대가를 지불하며 꾸준하게 그 길을 걸어가십시오.
주님의 놀라우신 은총이 주를 사모하는 모든 이들에게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