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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영성(Christian Spirituality) (1) - 안영복

Joyfule 2024. 9. 5. 21:48



기독교 영성(Christian Spirituality) (1) - 안영복

                
          제 1장 영성(Spirituality)의 개념

 

C.비정상적 영성과 참된 영성

 2.참된 영성(True Spirituality)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이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할수록 영성이 발달하기는 커녕 오히려 옛날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처럼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는 모습을 많이 본다.  이것은 많은 사람이 영성에 대한 오해의 늪에 빠져참된 영성에 대한 인식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늘 우리는 옛날 바리새인처럼 예수님으로부터 위선자라는 책망을 받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1)영성에 대한 오해 ---
        <영성>은 ‘물질적인 것’ ‘인간적인 것’ 혹은 ‘문화적인 것’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그런대도 오늘 많은 사람들은 영적인 것은, 물질적인 것도 아니며, 인간적인 것도 아니며, 문화적인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만일 그렇다면, 인간은 결코 영적인 존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몸은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간은 인간적인 범위 안에서 살고 있는 문화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물질적이 아니고 인간적이 아니며 문화적이 아닌 모든 것은 영적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큰 오류를 범하는 주장임이 틀림없는 것이다.   인간은 물질로 구성된 존재이고 죄성과 나약성을 가지고 있으며, 문화 속에서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긍정적인 연관성을 맺고 살아갈 때 그것은 영적인 삶이 되는 것이다.  영적인 삶은 하나님과 성경적인 관계를 맺고 사는 삶이다. 
  

  영적인 것과 몸은 서로 적대관계의 개념을 갖고 있지 않다.  영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육신이 쇠약해야 하고, 육신이 강해지면 영적으로 쇠약해진다는 생각은 비성경적이다.  
    영성과 인간성도 서로 모순이 되는 개념이 아니다.  인간성이 좋다고 해서 영성이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참으로 영성이 좋은 사람은 인간성이 좋아야 한다.  교회의 직분을 선정할 때에 “외인에게도 칭찬을 받는 자”라는 말은 바로 영성과 인간성의 밀접한 관계를 지적하는 말이다.  영성발달의 목표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간성을 동시에 가진 훌륭한 인격자 이셨다.   
 

    영성은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의 역동적 결합이다.  신자가 믿는 하나님은 구속자이면서 동시에 창조주이시며, 그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성은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결합된 영성이다.  만일 영성과 물질이 반대가 된다면, 하나님께서 크리스천에게 물질을 주시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물질축복이란 용어도 비성경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하면, <청빈사상>은 그 자체가 반드시 성경적인 가치관은 될 수 없다.  
    영성은 또한 문화와 반대 개념이 아니다.  반문화운동이 영성발달 운동은 아니다.  문화를 등지고 산 속으로 들어간 사람을 영성이 발달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도시에서 문화생활을 누리며 사는 사람을 향해 영성이 낮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어떤 문화 형태에서 살든지 그 문화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얼마나 잘 맺고 살며 또한 타인들과의 관계를 얼마나 잘 맺고 사는가가 영성발달의 중요한 척도이다.  물질과 몸과 인간성의 문화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맺는 도구로 쓰여질 경우에만 그 모든 것 속에 영성이 포함될 수 있다.   
     그리스도는 그 당시의 종교인들이 입던 제사장 옷 등의 성의를 입지 않고 말씀을 전파하였어도, 영성의 최고봉을 이루셨다.  왜냐하면 그 분은 주어진 문화권 속에 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 및 그 문화 속에 사는 인간과의 관계를 올바로 맺으시면서 사셨기 때문이다.  

    (2)참된 영성(Treu Spirituality) ---
      기독교의 영성은 근본적으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그래서 팍스(Fox, 1991)는 영성을 “생명으로 충만한 삶” 혹은 “영으로 충만한 삶의 길”이라고 정의한다.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및 타인들과 관계를 잘 맺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에너지가 바로 영성의 참된 근원이다.  
   신자의 영성의 목표되시는 예수님의 영성은 십자가 사건에서 가장 잘 드러났다.  십자가 사건은 관계 회복의 사건이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 및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가장 위대한 사건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맺고 타인과의 관계를 잘 맺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가?  그것은 타자중심주의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맺기 위해서는 하나님중심주의의 삶이 필요하며, 사람과의 관계를 잘 맺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 중심의 삶이 필요하다.  즉 자기가 아닌 타자 곧 위로 하나님을 중심하여 순종하는 삶을 살고, 아래로 혹은 옆으로 다른 사람을 중심하여 화목하는 삶을 살 때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좋아지고 사람과의 관계도 좋아질 것이다.  
  

  하나님중심이라는 개념은 그리스도중심이라는 개념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지 않고는 그 누구도 하나님중심으로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은 그 안에서 우리를 만나신다.  구약시대의 <성막>이 그리스도의 모형이었고, 사람들은 그 성막 안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는 성막의 본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중심주의로 살아가는 것이 곧 하나님중심으로 사는 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중심이 아닌 영성은, 아무리 꾸미고 닦아도 어디까지나 세속적 인본주의에 불과하다.   
   기독교 영성의 참된 목적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얼마나 무엇을 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고, 우리가 얼마나 거룩한 모습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가 하는 것이다(Rice, 1991).  이 말은 우리가 이루는 사역보다 우리의 존재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영성이란 자기중심에서 하나님중심으로 바뀌어지는 과정인데,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중심으로 바뀌어가고 있느냐를 아는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타인중심으로 사느냐에서 나타탄다.   타인들을 고려하지 않는 하나님중심은 위선에 불과하고,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는 타인중심은 세속적 인본주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참된 영성은 하나의 자아가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 및 사람들과의 관계를 성경적으로 맺어가면서 그리스도다움을 향하여 살아가는 삶의 과정이다>고 정의할 수 있다.  
 

  영성은 일반계시는 물론 특별계시적 차원의 삶을 요구한다. 다시 말하면, 일반계시의 윤리 도덕적 인격을 갖추면서 사는 삶 만으로는 영성이 되지 못한다.  특별계시적 차원의 삶 곧 성경적 차원의 삶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반계시 안에서의 윤리 도덕과 특별계시 안에서의 영적 법칙을 하나로 통일시킨 삶이 바로 참된 영적 삶이요 이것이 참된 영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