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영성(Christian Spirituality) (1) - 안영복
제 2장 영성발달을 위한 인간 이해와 성령의 역사
A.인간의 본질적 구조
1.삼분설(三分設)과 이분설(二分設)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는 “김씨 집안의 셋째 아들이요 성격은 내성적이다.”고 말한다. 이러한 자기 의식을 우리는 <자아> 혹는 <자아의식>이라고 한다. 이와같이 우리가 제일 접근하기 쉽고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나>는 누구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 자신에 대하여 특별한 생각 없이 “나는 나지, 별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는가?”하며 특별한 생각 없이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라는 인간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를 상고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내가 누구인가를 정확히 알아야, 나의 발전을 이루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라는 존재를 어떤 존재라고 하는가?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성경에 근거하여 <나>의 본질을 추구하다가 생긴 이론이 소위 <삼분설><이분설>, 혹은 <일분설>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교단별로 견해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통합측은 1분설, 합동측은 2분설, 그리고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 침례교 등은 3분설을 주장한다. 성경은 3분설 혹은 2분설적 견해을 보여준다.
(1)<3분설> 입장의 성경 말씀들 ---
데살로니가 전저 5:23에 보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το πνευμα spirit)과 혼(η ψυχη soul)과 몸
(το σωμα body)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여기서은 인간이 [영 + 혼 + 몸]으로 구성된 것으로 나타난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ψυχη soul)과 영(πνευμαspirit)과 및 관절과 골수(joints and marrow)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라니” 이 말씀에서는 인간이 [영 + 혼 + 관절과 골수]로 되어 있는 것으로나타난다. 이렇게 볼 때, 살전 5:23의 <몸>이 여기서는 <관절과 골수>로 표현되어 있을 뿐 같은 입장이다.
(2)<2분설> 입장의 성경 말씀 ---
마10:28 “몸(the body)은 죽여도 영혼(the soul)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σωμα body)과 영혼(ψυχη soul)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 인간 = 몸(σωμα) + 영혼(ψυχη = 혼(원어) ]
롬8:10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το σωμα body)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το πνευμα spirit)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 인간 = 몸(σωμα) + 영(πνευμα) ]
전도서 12:7 “흙(רפעה the dust)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the spirit חורה )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전에 기억하라”
[ 인간 = 흙(רפע 몸) + 신(영 חור 하나님이 주신) ]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רפע the dust)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םייח תמשׁנ the breath of life)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a living being היח שׁפנ )이 된지라”
[ 인간 = 흙(몸) + 생기(영) = 살아있는 혼(생명체)(היח שׁפנ) ]
(=생물 היח שׁפנ 창2:19)
이 본문에서는 인간이 “살아있는 혼”이 되었다고 되어 있는데, 이 말은 ‘살아있는 생명체’를 의미하며, 원어로 볼 때에 창 2:19의 “생물”고 동일하다. 이것은 생명체라는 입장에서는 인간과 생물이 동일하나, 그 차이는, 인간 창조에서는 하나님의 생기(영)가 흙으로 만든 몸 안에 불어넣어졌다는 것이다여기 불어넣어진 생기는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이라고 본다(전12:7 참조).
히브리서 12:9 “우리 육체(flesh σαρξ)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spirits πνευματα)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하지 않겠는냐” (cf. 요3:6 ).
[ 인간 = 육체(σαρξ)(몸 + 혼적 요소 Calvin) + 영 πνευμα ]
( Cf. 엡2:3 “육체의 욕심”(σαρξ) = <몸 +혼의 욕망>으로 봄)
롬7:25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σαρξ)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 인간(내자신) = 마음 + 육신(죄의 법을 섬김) ]
엡4:22-24 “너희는 .. 옛 사람(old self)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new self)을 입으라”
[ 인간 = 옛 사람 + 새 사람(하나님의 형상: 참 지식(골3:10),의,거룩) ]
(3)몸과 혼과 영에 대한 개별적 고찰 ---
1)<몸>(רשׂב 육신) ---
ㄱ)인간의 뼈와 살을 포함한 육신 전체를 말한다(왕상21:27, 왕하 6:30)
ㄴ)인간의 모든 영적 기능의 좌소가 되어, 하나님을 사모하여 부르짖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한다(시119:120, 84:2)
Cf. <육체 σαρξ>라고 할 때는 몸(육신)의 의미가 아니고,
<몸 + 혼>의 기능을 합한 의미이다(엡2:3, 히12:9, 롬7:25)
2)<혼>(שׁפנ) -- 혼은 <영>이 육신에 작용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창2:7 인간 = 흙(육신) + 생기(영) = 살아있는 혼]
혼의 성격은 다음과 같다 ---
ㄱ)혼의 일반적 의미는 <생명>(life)이다(출21:23, 4:19).
ㄴ)혼은 모든 지정의의 좌소이기도 하다. 한글개역은 <혼>
(שׁפנ)을 여러 가지로 번역한다 -- “마음”(민21:4,삿16:16),
“뜻”(창23:8-9, 시105:22), “욕심”(전6:7, 잠23:2), “영혼”(겔18:
4), “생명”(레17:11) 등등.
ㄷ)혼은 또한 의식하고 감독하는 주체로서의 인간 자신를 의미
하기도 한다(창2:7). [인간 = 살아있는 혼]
Oeheler “인간은 영을 갖고 있는 존재이나 그 자체는 영은 아니고 혼(שׁפנ)이다.”
Payne “인간은 영을 갖고 있으나 그 자체는 혼이다. 인간은 그의 영으로서 사고하나 그 사고자는 혼이다.
3)인간의 영(חור) ---
ㄱ)영은 혼의 원동력(motive power)이다. 인간의 영(חור)이 인간의 육신을 통하여 지정의의 어떤 개성적이요 인격적인 형태로 표현될 때 그것을 <혼 שׁפנ>이라 불렀다. 구약은 <혼>을 인간의 지정의의 좌소로 보았으나, <영>은 더 근본적인 지정의의 좌소로 보았다. 그러나 한글개역은 <영>을 “마음”으로 번역하고 있다(창26:35 마음(חור), 학1:14 마음(חור), 대하36:22 마음(חור)).
ㄴ)사람은 자기의 <영>의 작용을 다스리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롭게 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이 사실은, 영을 새롭게 하는 역사가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가능함을 증거한다. 다윗이 범죄후 시51:10에 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בל)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חור)을 새롭게 하소서”하고 기도한데서 잘 나타난다.
ㄷ)한글개역은 <영 חור>을 주로 “마음”(심령)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마음과 영은 다르다(“상한 심령”(시51:17), “통회하는 마음”(사57:15) ).
(4)인간의 마음(בל) ---
ㄱ)혼(שׁפנ)과 마음(בל)은 구별되어야 한다. 신약성경도 <혼>은 프쉬케(ψυχη)로 되어 있지, 마음을 가리키는 칼디아(καρδια)로 번역된 일은 없다. 김희보 교수에 의하면, “<혼>이란 영에 근원한 것으로 인간 육신 밖에서 들어온 외래적인 것이나, <마음>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육신의 일부분이요 하나의 생리학적 불가견의 기관이라.”고 한다.
ㄴ)<마음>과 <혼>은 서로 다르나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인간의
<혼>은 오직 <마음>이란 기관을 통해서만 활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육신적인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마음>이 지정의(知情意)의 좌소가 된다. <혼>의 지정의의 표현은, 오직 인간의 육신의 기관인 <마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인간의 육신의 모든 기관 중에서 보이지 않는 기관인 <마음>만이 오직 <혼>의 활동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기관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육신에 있어서의 도덕적 신앙적 행위의 유일한 기초는 <마음>에 있다. 따라서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사람의 도덕적 신앙적 상태가 결정된다(신6:5,삼상16:7). 그래서 성경은 인간의 구속이 <새 마음>을 받음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겔11:19, 마5:8, 눅6:45).
ㄷ)인간의 <지혜>의 좌소도 <마음>에 있다고 한다. 욥34:10에 보면 “총명한자”(wise man)가 원문에 ‘마음을 바로 하는 자’라는 의미로 “마음의 사람들”(בבל ישׁנא)이라고 표현된다. 이와같은 의미로 잠6:32의 “무지한자”는 원문에 ‘마음의 허무자’(בל רסה)라고 말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을 종합하면, 인간의 <영 πνευμα>과 <혼 ψυχη>은, 각기 지정의(知情意)의 인격적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영>이 <혼>의 원동력이 되며, 특히 <영>이 새롭게 되는 일은 성령하나님의 역사로 가능함을 보여준다(시51:10 cf.요3:6). 그리고 우리말 개역성경에는 영과 혼이 각기 <마음>으로 많이 번역되고 있는데, <마음>은 보이지 않은 <몸>의 한 기관으로, 혼의 모든 지정의의 표현은 이 마음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인간 자신이 <몸>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삼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은, 본질적으로 <영과 혼과 몸>으로 구성되도록 지음 받았으나, 때로는 인간 인격이 <영과 육체>로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 <육체>( σαρξ)는 <혼과 몸>의 의미가 합해진 의미이다.
성령님께서 구원을 각 개인에게 적용하실 때에도 <영>에는 내적인 생명으로 역사하시고, <육체>(몸+혼)에는 외적 능력으로 역사하심을 보여준다. 요한복음 3:6에 보면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함으로, 중생시에 성령께서 우리의 <영>을 거듭나게 하심으로 새 생명을 갖게 하신다. 그러나 승천 하신 후 주님께서는 성령을 < 모든 육체 >(πασαν σαρκα) 위에 부어주어, 복음증거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심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온전히 복음 사역에 수종들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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