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신앙, 무엇이 문제인가? (2)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욕망
예전에 멜로드라마나 순정영화에서 판박이로 나오는 줄거리는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정하며 이를 보는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여 호응을 받는 것이었다. 영화뿐 아니라 대중가요의 가사 중에도 너나없이, 사랑하기 때문에 이별한다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환경을 마구 설정하여 감정에 약한 대중들에게 호소하는 일이 잦았다. 그렇지만 현실의 삶에서는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결혼하여 서로를 책임지고 미래를 함께 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며, 어떤 이유든지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진정으로 사랑하는 지를 의심해보아야 하는 것이 합리적인 생각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 최우선으로 모든 일을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나 명예, 성공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면 무슨 변명을 할지라도 그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크리스천에게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아님 세상의 것을 더 사랑하느냐?’라고 묻는 것은 부질없는 질문이다. 그렇지만 그가 교회의 새벽예배에서, 조용한 기도원의 골방에서 기도하는 내용을 들어본다면 필자는 그가 진정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장담한다. 이글을 읽는 독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수님께서 기도문으로 가르쳐주어 모두 알고 있고 자주 암송하는 ‘주기도문’의 주요 내용은 여섯 가지이다. 그 중에서 앞의 세 가지는 하나님의 뜻과 나라를 구하여 그분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며, 뒤의 세 가지는 우리의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재물,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품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시련과 악한 영의 공격에 대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줄기차게 기도하는 내용의 대부분은 우리가 소원하고 요청하는 욕망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생계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이 아니라 끝없는 부를 위해 돈을 얻게 해주는 직장에서 잘되며 사업체의 번창으로 얻는 수입이 더 늘어나게 해달라는 것이고, 자녀의 성공적인 학업과 질병의 치유나 건강유지 등 모두 자신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성공과 부에 대한 욕구가 대부분이다.
그것에 비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기를 요구하는 기도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이 땅에서 잘 사는 것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어 늘 얻기를 소원하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기도의 내용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다. 말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제자라 되어 그 분의 영광을 위해서 살 것이라고 힘주어 말할 지라도,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이 세상의 것들을 소유하고 채우는 것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면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의 줄에 서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동상이몽(同床異夢)
마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초등학교 시절에 읽은 ‘나무꾼과 선녀’의 이야기를 알고 계실 것이다. 선녀가 목욕을 하기위해 벗어 놓은 날개옷을 누군가가 훔쳐가 버려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자, 이미 이런 상황을 교묘하게 설정해 놓은 나무꾼의 도움(?)으로 원치 않는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았지만 결국 하늘도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잡자말자 떠나고 만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에 나무꾼과 사랑을 나누며 다정스럽게 사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하늘나라의 삶을 결코 잊지 않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나무꾼은 선녀가 이 땅에서의 삶을 사랑하기를 원했지만 선녀는 끝내 하늘나라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것처럼, 하나님은 이 세상의 복을 주시기 이전에 하늘의 복을 먼저 주시기를 원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 땅의 복이 먼저이고 하늘의 복은 덤으로 오기를 바라는 것에 큰 차이가 있다. 사실 초신자나 신앙이 연약한 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늘의 복이 현실로 느껴지지 않고 삶에서 늘 맞닥뜨리는 부나 성공 등의 현세적인 복을 갖고 싶어 하는 욕심은 날마다 피부로 느껴지는 것들이라 이것들을 먼저 구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신앙이 깊어지고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서 오랫동안 배워 온 성도들은 초신자의 경우와 다르기에, 하나님은 그들의 우선순위에 하늘의 복이 먼저 있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바람과는 아랑곳하지 않게 교회를 오래 다닌 중견교인조차도 물질주의와 성공만능주의에 사로잡혀있기에 여전히 세상의 복만을 줄기차게 요청하는 답답한 일만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우리가 이 세상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이다.
요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기복신앙이 교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데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욕망이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교회에서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가르치기보다 여기에 편승하고 한술 더 떠서 이를 하나님의 복인 양 왜곡하여 가르치고 있기에 하나님의 뜻에 무지하고 탐욕에 마음을 뺏긴 성도들은 어리석게도 발람의 어그러진 길을 서로 다투어 좇아가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고 지옥의 불로 던져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의 백성임을 의심치 않고 살다가 천국 문 앞에서 내어쫒긴 자가 될 것이다. 세상 사람이야 처음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지도 않았겠지만 평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다고 자처하는 이들의 허망함과 실망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러한 원인은 다름 아닌 기복신앙의 뒤에 숨은 거짓의 영의 은밀하고 교묘한 위장에 있다.
눅 4:5~7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님을 시험하던 마귀는 자신이 가진 세상의 부와 권력을 보여주며 자신에게 절하면 이것들을 모두 주겠다고 제안한다. 사탄의 정체와 간교한 목적을 아시는 예수님은 일언지하에 이를 거절하였지만, 만약 우리에게 이러한 제안을 해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겠는가? 사람들은 사탄이 검은 망토를 두르고 삼지창을 든 채 검은 고양이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다.
사탄은 위장의 명수이다. 지혜롭기로 유명한 그가 자신의 정체가 일시에 탄로 나는 어리석은 복장으로 오지 않는다. 그는 아마 기사가 운전하는 값비싼 외제차를 타고 와서 최고급 양복에 명품으로 치장하여 자신의 부를 과시하며 인자한 미소를 띠며 세련되게 접근하고 하나님을 앞세워 경계를 누그러뜨린 후 엄청난 부를 약속하며 이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며 그를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부드럽게 속삭일 것이다. 그가 사탄인지 하나님의 사자인지 외모나 행동을 보고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하는 말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 지를 보고 판단해야할 것은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아야한다. 사탄의 제안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구약의 하나님의 말로 이를 대신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기복신앙은 교회에 와서 예수를 열심히 믿는 징표로 주일성수하고 각종 예배에 빠지지 말고 참석하며 십일조와 헌금을 아끼지 않고 드리면서 목사의 말을 잘 따르기만 하면 이 땅에서 부유하고 하는 일마다 성공하며 형통하게 살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여기에 구약에서 약속한 부유하고 잘되는 복에 대한 성경구절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언뜻 보면 아무것도 틀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부터 이들이 하나님을 저주하고 예수를 멀리하라고 하며 우리가 믿는 성경이 아닌 다른 성경을 가져왔다면 이들의 정체를 모를 성도들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그러한 잘못을 저지를 만하게 어리석지 않다. 그렇기에 이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성경을 잣대로 판단을 해야 할 것이며, 한 귀퉁이에 있는 말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뜻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신앙 행위의 근간은 믿음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배를 드리는 행위보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태도를 중요시하고, 십일조나 헌금의 액수보다 자신의 수입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정하고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어야 하나님도 기쁘게 받으신다. 그렇지 않다면 그동안 신앙생활에 바친 시간이며 교회에 드린 돈들은 아무런 효력이 없이 허망하게 사라진 것임이 틀림없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에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지만, 세상을 더 사랑한다면 신앙행위의 목적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마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위의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미래에 겪을 우려를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애쓰고 힘쓰는 행위의 속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의 온전한 뜻을 좇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자가 되며 형통하는 데 속내가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다면 허망하며 허무한 결과로 매듭지어질 것이다.
기복신앙의 어리석음과 무서움이 여기에 있다.
기복신앙은 전파자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세상에서의 복을 얻기에 급급한 사람들의 욕망을 채워주어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심리적인 만족을 주기는 하겠지만 천국 문 앞에서 쫓겨나는 무서운 결과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복신앙을 퍼뜨리는 자들은 눈앞의 이익에 사로잡혀 자신은 물론이고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들까지 함께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무시무시한 일들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출 처 : 다음 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 신상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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