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꺼져가던 생명 - (채홍) 이영숙
지난여름 내게 희망을 안겨 주었던 소담스런 행운 목의 푸른 잎사귀가 밑 둥에서 부터 노랗게 말라 들어가고 있다. 베란다에 방치했다가 거실로 부랴부랴 끌어들였다.
제법 굵은 행운 목은 4년 전 등산로 야산근처에서 내 눈에 띄게 되어 우리 집에 입주시켰다. 누군가가 화분에 서있던 나무를 죽어 간다고 생각하고 가차 없이 뽑아 내동댕이쳐 버린 것이다. 산자락에 누워있던 나무는 장마철이라 제법 굵은 몸통에서는, 고온다습한 온도에 힘입어 이미 여러 군데에 두꺼운 나무껍질을 비집으며 파릇한 싹이 나오기 시작하여 새 생명의 기미를 보여 주었다.
물먹은 나무를 옆구리에 끼고 와서 아파트마당의 화단에 전주를 세우듯이 하여 반듯하게 자세를 잡고 흙을 그러모아 단단히 심으며 뿌리가 내리기를 기다렸다. 가을이 초입에 들려 할 때 키 큰 화분에 부엽토를 넣어서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옮겨 심어 햇빛이 직접 쏘이지 않는 거실 한쪽에 모셔 놓듯 하고 무관심 한 듯 관심 있는듯하며 아침저녁으로 보살폈다.
내가 한 생명을 건져주었다는 뿌듯함은 오래 지속되었다. 그렇게 답례라도 하는지 잎들은 힘차게 너울 하니 퍼져서 제 기상을 보여주었다. 여름에는 베란다로 내보내고 겨울에는 거실로 모시기를 4년 동안이나 했다가, 올해 100년만의 겨울한파에 베란다에 그대로 내 깔겨두었다. 우리 집 화초들은 내 건강의 여하에 따라 변수가 심하다. 그야말로 죽었다 살았다 로 번복할 때가 많다.
내 몸 하나 간수도 힘든데 화초를 미처 챙기지 못함에 행운목의 잎이 노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아 뿔 사 그 제서야 열대식물이라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아파트가 아무리 남향집이라 해도 오동지 섣달 밤을 견디기에는 추웠을 것이다. 반 음지 식물인 놈을 한낮의 햇빛에 방치했다. 추위가 다 지난 2월에서야 거실로 들여왔지만 이미 잎이 말라 들어가고 있어 볼품없는 몰골을 하고 있다. 그런 매가리 없는 화초를 보자 하니 내 기분이 다운 돼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열악한 몸을 지탱하면서 시원찮은 꽃대를 밀어 올리고 있었다. 파 꽃 같은 꽃봉오리를 주저리주저리 달고 길게 밀고 올라온 하얀 꽃들은 저녁마다 벙글거린다. 거실가득 삼삼한 꽃향기는 퍼져서 비실거리는 내 몸을 편안하게 해준다.
꽃향기는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기에 자연의향은 그 위력이 대단했다. 땅거미가 내리는 밤마다 걸어 나와 온 거실을 압도했다. 동양 난인 듯, 백합향이 듯 고고하고 은은하게 우리가족을 여러 날 동안 매료시켰다.
식물들은 생명에 위협을 받으면 종족번식을 위해 기어이 꽃을 피운다 하지 않던가. 행운과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행운목은 학명으로 ‘해피 트리’라고도 한다.
지난 한 해 동안 나는 참으로 지난하게 살아내었다. 기력이 쇠약해지면서 건강의 리듬이 완전 깨져서 의욕도 잃었고 삶의 의미조차도 가물거렸다. ‘위 무력증과 담적’이라는 진단을 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을 허비했다. 어지럼증과 두통으로 연일 신경과를 찾아도 차도가 없었다. 그동안 나는 운동을 게을리 해서 벌을 단단히 받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조금씩 먹고 많이 움직여야겠다.
이런 빈사지경의 우리 집에 무슨 행운이 깃들 일이 있다고 꽃은 저리도 피어서 내게 실 같은 용기를 주는가.
행운 목 꽃은 8년이 돼야 꽃을 피울 수 있다는데 얼마나 삶이 절절 했으면 저렇게 고사해가는 나무속에서도, 살아있음을 입증이라도 하듯 온힘을 다해 결실의 증표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 나도 다시 한 번 삶에 박차를 가해 보는 거야. 나이 듦이란 이런 거지 뭐? 가족들의 걱정은 태산만큼 높지만 난 두렵지 않다. 다만 고통이 따를 뿐이다.
버석해진 누런 행운 목 잎들을 가위질해 다듬고 떼어주면서 다시 파란 잎으로 복구해 재기할 날을 기다려본다. 시원찮은 몰골이지만 다시 내게 부단한 생명력을 보여 줄 것 같은 가능성을 기대해본다.
거실에 서있는 꺼져가던 생명은 다시 삶의 의지를 더해서인지 파란 새순들이 고물고물 올라오고 있다 나무에게서 또 한 번 배워본다. 나의 찌질 하고 지난했던 삶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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