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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 종교 - 엄상익 변호사

Joyfule 2023. 3. 20. 08:30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껍데기 종교



십이년전 나는 일본에서 그곳에 가 있는 구 전도사와 함께 나가사키 변두리의 골목길을 돌아보고 있었다. 어린 시절 동대문 밖 서민들이 살던 우리 동네와 비슷했다. 낮은 블록 담장 위에 선인장을 심은 작은 화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손바닥 만한 마당에서 런닝셔츠 차림으로 꽃을 심는 사람도 보였다. 거리에는 어릴 적 타고 다니던 전차들이 그 모습 그대로 다니고 있었다. 일본풍경을 보면 어떤 곳은 시간의 흐름을 거부한 듯 보이는 곳도 있었다. 나는 그런 풍경에 더 친근감을 느낀다. 이면도로의 코너에 판넬로 지은 가건물이 있었다. 그 이층에 수줍어 보이는 간판을 단 작은 교회가 보였다. 불교국가같은 일본에서 외로운 섬 같은 존재 같았다. 호기심에 가건물의 철계단을 밟고 올라가 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벽에 걸린 십자가 아래 덩그렇게 강대상 하나만 있을 뿐 아무런 인테리어도 없었다. 그 앞에 접이식 철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었다. 면 바지에 갈색셔츠를 입은 오십대 중반의 일본인 목사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구 전도사의 통역으로 일본인 목사의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칠년 전에 이곳에서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이런 교회는 헌금이 없습니다. 목사들이 편의점이나 주유소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교회를 유지하는 겁니다. 처음 일 년간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이 년째 한 사람이 교회에 왔는데 노숙자였습니다. 내게는 귀한 신도였습니다. 그를 위해 성실하게 메시지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설교만 시작하면 그분은 자 버립니다. 의자 위에서 끄덕끄덕 졸다가 옆으로 쓰러지려는 것을 보면서 내가 목사를 계속해야 하나 회의도 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칠년 동안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침 네시에 일어나서 텅빈 교회 안에서 저 혼자 새벽기도를 하지만 빠뜨리는 날은 없었습니다.”

공허한 길을 혼자 가는 그의 집념이 대단해 보였다. 

그가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일본과 한국은 똑같은 피부색을 가지고 이렇게 가까운데 왜 미워할까요? 

저는 일본이 사죄해야 한다는 걸 압니다. 전쟁으로 한국인들을 아프게 했으니까요. 일본의 수치입니다. 

또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문화재들을 가져왔습니다. 일본을 대신해서 사과드립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용서해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래서 서로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요? 

국적에 상관없이 다음에 우리는 천국에서 만나는 게 아닐까요?”

나는 그에게서 한 사람의 성자와 진짜 복음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옆에 있던 구 전도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일본에 와서 이십육년을 살았습니다. 여기서 살아보니까 제가 전할 도(道)라는 게 뭔지 모르겠다는 회의가 들었어요. 

오히려 일본문화를 사랑하게 됐다고 할까요. 우리는 모든 역사적 불행이 일본과 친일파 탓이라고 세뇌되어 왔습니다. 여기와서 그런 사고에서 벗어나 한번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도 했어요. 

우리가 일본을 탓하고 조롱하는 속에는 우리의 찌그러진 마음과 열등의식 그리고 미움이 섞여 있는 건 아닐까요?”

그의 말에 전날 나가사키의 니시오카 공원에서 본 광경이 떠올랐다. 일본인 순교자를 기념하는 성지였다. 반바지를 입은 일본의 초등학교 아이들이 견학을 와서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때였다. 주차장의 관광버스에서 내린 수십명의 한국인들이 ‘일본전도’라는 글씨가 적힌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공원으로 들어왔다. 그들이 떠들면서 단체 사진을 먼저 찍었다. 그 속에 있던 육십대 쯤의 한여성이 옆 사람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일본 아이들 보니까 어쩐지 얼굴에 빛이 없는 것 같네. 하나님을 모르고 사니까 저렇게 되는 거야. 

지금이 겨울인데 초등학교 아이들을 반바지를 입히는 걸 봐.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서 통곡이 나올 것 같아.”

그 아이들의 교복이었다. 스타킹에 타이즈를 입고 있어 추울 것 같지 않았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그들을 인솔하는 사람이 앞에서 목청을 높여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여, 이 암흑의 영혼이 지배하는 땅, 팔백만 우상과 귀신이 득실거리는 땅, 전 국민의 영점팔퍼센트만이 크리스챤인 땅을 구해 주시옵소서”

이어서 단체로 온 사람들이 각자 목청을 한껏 높인 상태로 “아멘”하고 화답을 한 후 각자 울부짖고 소리쳤다. 일본에 복음을 전하러 왔다는 한국의 한 교회 신도들이었다. 

기도가 아니라 과격한 노동자단체의 시위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곳을 지나던 일본인들과 견학을 온 일본 초등학교 아이들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전하려고 온 것이 무엇인지 되묻고 싶었다. 

그런 단체들이 많은 것 같았다. 

동남아로 간 대형교회의 신도단체가 “오직 예수”하고 소리치니까 돌이 날아오더라고 했다. 

내가 봤던 그 광경을 구전도사에게 얘기했다. 잠시 생각하던 구전도사가 이런 말을 했다.

“일본 땅에 전도를 한다고 한국인들이 오는데 일본귀신과의 싸움을 한다면서 먼지를 날리고 진흙을 일으킵니다. 

선교한다면서 자신들 교회의 이벤트를 하는 겁니다. 한국정치에도 그런 식으로 개입하는 교회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일본에 전도를 하려면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리고 일본 교회를 진심으로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선교일 겁니다. 사랑과 용서를 전해서 미움을 화해와 협력으로 바꾸는 거죠.”

종교에서도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남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