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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알아야 할 기독교 핵심진리 20

Joyfule 2021. 8. 15. 04:17


 

 

   꼭 알아야 할 기독교 핵심진리 20 

 

02 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하나님 자신에 대한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곧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만났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고,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경험했다는 말입니다. 모든 은혜는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하여 함께 나누겠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인류의 오랜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밝혀준 내용은 이것입니다. 1)모든 인간에게 내적의식(신 의식)이 있음으로 앎(롬 1:19) 2)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으로 창조하신 만물에 두신 흔적이 있음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증거 함. 3)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내적의식’이나 ‘만물에 창조하신 하나님의 성품의 흔적’으로는 구원에 이를 만한 지식으로 충분하지 않아 특별한 계시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리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하나님을 아는 완전한 지식이 아니라, 참다운 지식을 말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알게 되느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또는 특별한 이들에게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모두 아는 완전한 지식을 알 수는 없어도 참된 지식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 지식은 성경에 집약되어 있고, 그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에는 비공유적 성품인 자존성, 불변성, 완전성, 영원성, 전지성, 전능성이 있고, 공유적(도덕적) 성품으로는 거룩하심, 의로우심, 진실하심, 선하심, 사랑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자로서(사 43:7),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감으로써 하나님을 닮게 됩니다. 하나님을 닮아 갈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신 분이십니다.(하나님의 자존성 시 115:3, 출 3;14) 하나님은 어떤 존재에도 의존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모든 만물은 다 하나님께 의존하여 존재합니다. 물론 사람은 하나님을 의존하여서만 참된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존재의 의미는 상실됩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참된 인간으로서 존재의 의미는 없는 것입니다.(26-27)

 

둘째, 하나님은 영원히 변치 않으십니다.(하나님의 불변성 약1:17, 히 6:17) 하나님의 불변하심은 하나님의 존재, 성품, 목적, 약속에 있어서 변치 않으신다는 의미입니다. “나 여호와는 변역치 아니하나니”(말 3:6)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십니다.(시 33:11) 약속에 있어서 변하지 않으십니다.(민 23:19)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격성을 이해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자이시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대하여 인격적인 감정을 나타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현재적 태도나 현재적 의도를 실제적으로 표현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 성품, 목적, 약속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상황에 따라서 달리 행동하시거나 느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행하시고, 감정을 느끼십니다.(27-28p)

 

셋째,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원성 느 9:5, 벧후 1:11) 시간에 제약을 받는 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시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시간 세계를 초월하기도 하시고, 시간 세계에도 오셔서 자신을 나타내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셔서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벧 3:8) 같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역사 전체를 영원히 생생하게 보십니다.(29p)

 

넷째,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하나님의 편재성 신 10:14, 렘 23:23-24) 하나님은 공간 세계에 제한받지 않으십니다.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아십니다. 장소적으로 모든 곳에 계십니다. 즉 어떤 존재도 하나님의 눈길을 떠날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시 139:7-10) 하나님은 때때로 하나님의 임재를 특별하게 나타내신 장소와 때가 있으십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만물을 붙들고 운행하시기 위하여 어디에나 계시므로 어떤 존재도 하나님의 눈길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십니다.(히 1:3)

 

다섯째, 하나님은 영이십니다.(요 4;24) 그래서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으시고, 어떤 신체적인 감각으로 인식할 수 없습니다. 우주의 어떤 실체로 생각할 수 없고, 어떤 실체로 하나님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에게 하나님의 영적인 본성(하나님의 형상)과 닮은 것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 할 수 있도록 영혼을 선물로 두셨습니다.(고전 6:17)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온 세상을 붙들고 계십니다.(창 1:2 “운행하시더라.” 의미 : 새가 날개로 새끼를 품음과 같이) 또한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께서는 우리를 양자 삼으신 것을 증거 하십니다.(롬 8:16)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다.(요 1:18) 보이는 것으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전체적인 본질을 아무도 볼 수 없지만 계시로 나타내 주십니다.(다양한 방식과 그리스도)

 

여섯째,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하나님의 전지성 대상 28:9, 요 2:25) 하나님은 단번에 영원히 하나님 자신과 실재하는 모든 것, 실재 할 수 있는 모든 것, 일어나는 모든 것과 일어날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히 4:13) 그래서 모든 존재의 목적을 향하여 이끄십니다. 그런 능력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변하지도, 늘어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나님을 놀라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성품 중에서 사람이 가질 수 없는 비공유적 성품에 대하여 생각하였습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문. 나님이 우리와 가장 분명하게 공유하시는 속성들은 무엇입니까? 

2문. 하나님의 어느 한 속성이 다른 모든 속성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어떤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을지 말해 봅시다. 

3문. 여러분은 하나님의 어떤 속성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입니까? 그런 속성을 통해 여러분이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02 ②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의 성품 중에 공유적(도덕적) 성품으로 거룩하심, 의로우심, 진실하심, 선하심, 사랑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어(사 43:7)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감으로써 하나님을 닮아갈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도덕적 성품을 생각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지혜로우십니다.(하나님의 지혜로우심 롬 16:27, 욥 9:4)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지혜로우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최선의 목표와 최선의 수단을 택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창조와 섭리에 나타납니다. 지혜로 만물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지혜로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룹니다.(롬 8:28)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기도 하십니다.(약 1:5)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전부 공유하지는 못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롬 11:33)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하여 이해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호와를 의뢰”해야 합니다. 우리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잠 3:5)

 

둘째, 하나님은 선(히, 토브)하십니다.(하나님의 선하심 눅 18:19)

하나님은 모든 선의 최종적 기준이 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와 행하심은 전적으로 선하십니다. 선은 하나님의 성품과 그 성품에 합치되는 것으로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입니다.(창 1장) 하나님의 선하심은 하나님이 참 하나님 되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선은 모든 선의 기준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선의 원천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선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심지어 징계조차도 하나님의 선하심이요, 하나님의 사랑도 선하십니다.(히 12:10) 하나님의 선하심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인간이 비참함과 낙심에 빠져 있을 때에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형벌 인생에게 내려주신 하나님의 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에게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갈 6:10) (35p)

 

셋째,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하나님의 사랑하심 요일 4:8, 요일 4:10)

하나님의 사랑을 구약의 인자하심(핫세드), 신약에서는 신적인 사랑(아가페)으로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당신의 자녀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인간의 에로스라는 사랑은 사랑의 대상을 소유하는데에 이르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적인 사랑, 아가페는 사랑의 대상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는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7-39)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우리는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요일 3:18) (36p)

 

넷째,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하나님의 거룩하심 시 99:9, 레 19:2)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의 지체로서 거룩하게 빚어지는 과정에 있습니다.(엡5:26-27) 점점 속된 것으로부터 하나님을 닮아 구별되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거룩하심의 발산입니다. (37p)

 

다섯째,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 신 32:4, 롬 3:25-26)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신 32:4) 하나님은 무엇을 행하시든지 옳은 것에 부합하게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옳은 것으로 기준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행하려 할 때에 하나님의 도덕적인 성품에 부합되는 일을 행하려 애써야 합니다. 그와 같은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심을 두 방향으로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는 심판을 통하여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에 대하여 벌하시고, 또 하나는 죄에 대하여 용서하시는 사랑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면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어떻게 용서로 공의를 나타내시는가? 그런 의문이 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대신 형벌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들의 죄에 대하여 대신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누구를 택하시고, 누구를 유기하셨는지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롬 3:25-26) 결국 하나님은 모든 것을 바로 잡아 정의를 실현하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정의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의 파편적인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의(체다카: 옳음)와 공평(미쉬파트: 옳은 판결)을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잠 21:3) (38p)

  

여섯째,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출 20:5, 사 48:11)

기본적으로 하나님은 독점적 사랑을 요구하시고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영광을 보존하십니다. 그 때에 질투로 나타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은 고유하기 때문입니다.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8:11) 그래서 “신앙은 삶의 열매로 알 수 있지만, 그 열매들은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매들인지 살펴봐야 알 것입니다.”(존 칼빈) 세상에는 아름다워 보이는 열매가 있지만 대부분 자기 영광을 위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열매를 오히려 질투하십니다. 불신자의 선행도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39p)

 

함께 생각해 봅시다.

1문. 하나님이 우리와 가장 분명하게 공유하시는 속성들은 무엇입니까?

 

(참고)

여러분이 매일의 삶에서 더 많이 닮고 싶은 하나님의 속성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말해 봅시다. ‘하나님의 의로우심’ 하나님께서 우리와 공유하시는 성품은 거룩함, 의로움, 진실함, 선하심, 사랑입니다. 그 중에서도 닮고 싶은 하나님의 성품이 의로우심”이라고 할 때에 의로움(체다크)은 공의(미쉬파트)와 같은 어군에 속하고, 결국 하나님의 한 속성에 속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옳은 행위만 하시고 하나님께서 옳음의 기준이 되십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을 고한다.”(사45:19)고 하셨습니다. <공의:미쉬파트>는 특별히 공적인 재판에서 옳은 판결을 내리는 행위를 배경으로 합니다. <하나님의 칭의>를 생각하자면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옳음의 기준을 가지시고 옳다고(의롭다) 판결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칭의>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에 대한 대가(삯)를 대신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유일하게 옳음의 기준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칭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가 <옳은 판단>을 할 때, 우리가 무엇을 판단해야 할 때에 믿음의 분별력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신자의 옳은 판단들은 ‘의’에 대한 갈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배경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마5:6)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갈망하는 믿음이 생명력 있는 신앙의 척도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신실하심(faithfulness)은 진실하심과 동의어입니다. 참되신 하나님이시며, 그의 지식과 말씀이 참되셔서 진리의 최종 기준이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와 관련되어 <렘10:10-11>의 말씀이 계시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약속하신 대로 행하시기 때문에 말씀을 믿는 것은 곧 하나님의 그 성품을 믿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신자는 고난의 기간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지 못하도록 유혹을 강하게 받습니다. 고난에서 요구되는 믿음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그래야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고난 중에서 특히 요구됩니다. 결국 인내하는 삶에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기 때문에 참다운 인내가 뒤따르게 됩니다. 정확하게 고난 속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인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성품 중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인내하고, 오래 참는 것은 그런 배경 안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