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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된 믿음 안에 있는지 반드시 분별해야 합니다.

Joyfule 2018. 8. 30. 02:42

 

나는 참된 믿음 안에 있는지 반드시 분별해야 합니다.


자신은 구원받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매우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때가 이르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성경은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장 22-23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장 13-14절)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누가복음 18장 8절)


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은 주님을 굳게 믿는 사람들이라 믿었고 그러므로 당연히 구원받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나름대로 교회에서 최선을 다했고,

'주여주여'하며 이론적으로는 주님에 대하여 빠삭하게 알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당연히 구원을 확신했고 구원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각자 개인적으로 남들은 몰라도 자기 자신 만큼은 틀림없이 구원된다며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날에 이르러 주님으로부터 냉정하게 거절당하는 영혼들이 많다고 하십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무엇이 원인입니까?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너무 몰랐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뭔 현상이 나타나고, 뭘 보고, 뭘 듣고, 병을 고치고...

이런 것들을 구원받은 증거로 혹은, 주님을 지식과 이론적으로 많이 안다는 이유나,

교회에서 열심히 충성 봉사하는 것을 가지고 구원받은 증거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놓친 게 있었습니다.

구원의 증거인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대해서는 간과했습니다.

구원받음의 가장 중요한 증거는 어떤 현상을 목격하거나, 머리의 지식이 아니라, 거듭난 성령의 열매입니다.

주님은 마지막 때에 열매를 찾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열매가 없으면 다 불사르겠다고(지옥에 보냄) 하셨습니다.

열매는 내가 임의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는 철저히 내가 아닌 주님(성령님)의 역사에 의하여 나를 통해 주님께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진짜 열매입니다.


이것이 합법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천사)들이 그것(열매 없는자)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한복음 15장 4절)


성령으로 거듭나면 성령님은 당연할 정도로 거듭난 사람을 통해 일을 하십니다.

열매 맺을 부드럽고 뜨거운 마음을 심령 속에 넣어줍니다.

즉, 순종할만한 마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에스겔 36장 26-27절)


이렇게 성령님을 주셔서 나무의 옹이처럼 박혀있는 악한 옛사람의 구습 즉,

육신에 배어있는 악하고 굳은 마음을 제하여주시고 성령의 부드러운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율례를,  성령의 율법 즉, 사랑의 율법으로 행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성품이 나에게 배어있으면 당연히 성령의 일하심이 나타나기에

세상을 향하여 육신의 눈이 아닌 성령의 눈으로 바라보고 생각하고 일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과 동행하며 먹고 마시면 이미 이 땅에서부터 천국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인정하시는 합법적인 열매이고 영적 자유함을 누리며  하늘의 법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순종을 전제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육의 굳은 마음을 제하지 못하고 성취감을 위해 뭔가를 행하기만 했던

바리새인 같은 사람들은 그 마음에 사랑이 없고, 뭔가 인간적인 어떤 목적으로 계산하며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라 뭘 해도 그것은 불법입니다.

주님의 일하심에는 인간적인 계산이 전혀 없습니다.

내가 이걸 하므로 인해 내가 받을 상급과 남이 알아줬으면 하는 주변의 시선... 이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당연히 내가 순종해야 할 일이라는 마음을 성령님이 주셨기에 전혀 주변에 대하여 신경 쓰지 않습니다.

묵묵하게 뚜벅뚜벅 성령님이 주신 인격으로 천국을 침노해 들어갑니다.

이는 인간의 순수한 개인기로는 절대 할 수 없기에

마치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듯 성령께서 우리의 영을 견인하여 이끄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이란 말이 이런 경우에 해당하므로 나온 말입니다.

순종은 사람 대 사람의 관계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주종관계 즉, 하나님과 사람 간의 관계에서 생긴 말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을 회피하고 열매 맺음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주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순종시키기 위해 그 옛날부터 종들을 통하여 혹은 직접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을 네 아들들과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신명기 4장 9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5장 16-17절)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장 23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태복음 26장 41절)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에베소서 5장 15절)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편 19장 12절)


이렇듯 주님께서 붙잡고 인도하는 방향대로 가도록 마음을 세상으로 돌리지 말고,

주어진 자유의지를 엉뚱하게 낭비하지 말며, 주님께서 인도하는 대로 순종하여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결정체입니다.

내가 아닌 주님이 내 안에 사신다면 나는 주님께 순종해서 그분의 의지대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무리 주님이 하시는 일이라도 순종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내가 로보트라서 가만있어도 주님이 다 알아서 하신다면 순종이란 말은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믿노라 하면서 판단 정죄하고, 교만하고, 거짓말하며, 형제에게 라가(심한 욕)라 하는 것도 내 안의 성령께서 그렇게 인도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건 내 자유의지로 불순종을 행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주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부여한 자유의지를 인정하시기에 순종이라는 말씀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말의 주인이 말을 데리고 물가까지는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을 먹고 안 먹고는 말이 하는 것입니다.

안 먹겠다는데 강제로 먹일 수는 없습니다.

말이 주인의 의지대로 순종해야 물을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말은 목마름으로 죽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말이 그냥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아니하고 물가까지 인도하는 것...그게 말에게 베푸는 말 주인의 은혜입니다.

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모든 인류를 구원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즉, 말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시냇물가로 인도하듯 우리를 구원시키기 위해 생명이신 예수님 앞으로 나오도록 부르고 인도하셨습니다.

만약, 말 주인이 말에게 물을 강제로 먹인다면 죽을 말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도 자유의지란 것을 무시하고 사람을 강제로 구원시킨다면

자유의지가 존재할 이유도 없을 것이며 이 땅에 구원 못 받을 인류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순종을 매우 강조하셨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부르심의 은혜에 우리 죄인들이 순종하여 응답하라는 것이고 또한, 우리는 순종하여 응답할 차례입니다.

순종하여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순종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순종하여 내 옛사람으로부터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순종하여 자기 자신을 부인하라는 것입니다.

말이 주인의 뜻에 순종하여 물을 먹으면 살 수 있듯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면 죄를 사하여 주시고 성령으로 거듭나 값없이 영생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믿노라 하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이 없으면, 내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믿는 자에게는 반드시 순종함이 있어야 진정한 믿음 안에 있는 것입니다.

거듭나려는 사람들은 애통하게 회개하며...  가난한 심령이 되어 주님(성령)을 구하고, 찾고, 두드림에 순종할 것이며

이미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주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루셨기에 그분만 의지하며

내 안의 성령님이 주시는 열매의 성품에 철저하게 동화되어 성령님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입술만의 믿음이 아닌, 내 안에 주님이 사시는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진정한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사는 것이 아닌 주님이 내 안에 살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