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관 자료 ━━/최용우목사

내면의 정결함

Joyfule 2020. 3. 14. 02:23
     
     
       최용우의 햇볕같은 이야기 
       내면의 정결함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마22:12)
    우리는 부자(하나님)의 천국 잔치 초청을 거절했다가 구원받을 기회를 잃어버리고 
    오랫동안 나라도 없이 세계를 떠돌아야 했던 유대인(이스라엘)들을 보면서
     “아이고, 저 멍청한 사람들... 어떻게 그 기회를 놓칠 수 있어.” 
    하면서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얼떨결에 초청을 받아 천국잔치에 들어온 우리들 가운데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전혀 다를 것 없이 멍청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잔치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부자는 그들을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했으니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지사로 여기는 그 믿음에 배신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을 교양이나 취미생활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기독교 신앙은 ‘절대적인 생명을 향한 강렬하고 거룩한 욕망’입니다. 
    몇 마디의 고백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게 아닙니다. 
    신앙 고백 이후에 우리 앞에는 넘어야 될 첩첩산중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잔치 예복을 입는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결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고백은 우리가 그 하나님의 정결하심을 안밖으로 덧입는다는 의미입니다. 
    정결함의 본질적 속성과 성향이 점점 우리 삶 가운데 나타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속사람인 영이 겉사람인 육을 계속 누르고 죄를 짓던 성향에서 
    죄를 멀리하는 성향으로 날마다 조금씩 변하게 합니다. 
    그래서 삶이 단정해지고 단순해집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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