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의 타박 - 임병식

오늘 아침에도 나는 노모로부터 따끔하게 타박을 들었다.
어제 보리쌀을 구입했는데, 이전에 압맥은 사지 말라는 말씀을 깜박 잊고 또 가져왔더니 당신말씀을 시글방귀로 생각하고 듣지 않았다고 화를 내신 것이다. 밥통 뚜껑을 열어보시더니 압맥의 보리밥이 섞이지 않고 그대로 위로 떠올라 있는 걸 보시고 하신 말씀이었다.
“꼭 말을 안 듣고 이상한 사람이야”
힐끗 쳐다보며 하시는 말씀이 몹씨 마음에 안드시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는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시나 하면서도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얼른 다소곳한 표정으로, "그만 깜박 잊었네요 어머니" 하고 예봉을 피하였다. 그렇게 대답을 하니 역정을 푸셨지만, 한편 생각하니 우습기도 하였다. 옛날 주나라의 노래자(老萊子)란 사람이 농사를 지으며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 70노구(老軀)로 늙은 어머니 앞에서 색동옷 입고 춤을 추었다는 고사가 전해오지만, 이런때는 나의 경우도 환갑이 다된 자식이 90노모의 꾸지람을, 그것도 '잘못했다' 빌고 있으니 어찌 우습지 않는가.
노모께서는 아내가 입원했다는 말씀을 듣고 큰댁에서 한달음에 달려 오셨다.그런 후 나의 집에 머무르시며 집만을 돌보고 계신다. 그것도 식사만 챙기시는 게 아니고 빨래를 비롯하여 온갖 자질구레한 일을 다하신다. 보행이 불편하여 시장을 보거나, 그밖에 공납금을 납부하는 일은 못하시지만 밖에 쓰레기 봉지를 내다 버리는 일도 다 하신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참견을 하시고 마음에 안든 행동을 하면 대놓고 타박를 하시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똑같은 꾸중을 들었다.
“무슨 사람이 물건하나를 제대로 사지를 못해. 배가 이렇게 나왔는데, 생물이라고 사왔어”
시장에서 갈치를 사왔는데, 오래된 것을 가져왔다고 나무라는 것이었다. 이런 류의 꾸지람은 꼭 물건 사는 데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번은 식사를 마치고 났는데, 나더러 고칠 게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했더니 다름이 아닌 ‘왜 보기 싫게 국그릇을 들고 후루루 마시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래 가지고서 어디 조심스런 자리에 가서 밥이나 먹겠느냐는 것이었다.
집이니까 그렇게 한 것인데, 그리고 직장생활을 할 때는 비록 높은 자리에 있지는 않았지만 격식 있는 자리에서 여러번 식사도 했건만, 못 미더워 하시는 말씀이 분명했다. 옛 말에 부모의 눈에는 자식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린애로 보인다더니 정말 그러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노모의 말씀을 전적으로 공감하고 사느냐하면 그렇지는 않다. 옛날 살아오시면서 누가 당신에게 서운케 대했던 일을 곱씹거나, 어려운 역경을 넘긴 일들은 되풀이 말씀을 하실 때는 막어서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종종 TV를 너무 크게 틀어놓는다며 타박을 하시는때가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당신께서 오히려 연속극을 보실때 훨씬 크게 틀어놓아 입씨름도 벌어진다.
노모께서는 우리 집에 오신 후 완전히 주권을 잡으신 인상이다. 처음에는 손님처럼 물어가며 일을 하시더니, 몇 개월이 지난 지금은 모든 걸 당신의 뜻에 따르라고 하신다. 그러니 나는 대놓고 말은 못하고 슬슬 눈치를 보게 된다.
이러한 노모께서 하루는, 내가 아내가 입원한 병원을 다녀왔더니, 몹시 분개해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으니 어디서 전화가 왔는데, 나를 찾기에 ‘ 누구신데, 용건을 밝히면 아들이 돌아오면 전해겠다’고 하니 그 말에는 대답도 않고 금방 끊어버리더라는 것이었다.도무지 돼먹지를 못했다고 분개가 대단하셨다. 누가 그랬는지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분에게는 차마 그런 자초지종을 말하지도 못하였다.
요사이 노모께서는 기를 세우시는 일로 사시는 것 같다. 무슨 일이든지 참견하시고, 알고자 하신다. 보시는 연속극도 그냥 가만히 보시는 게 아니고,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역을 맡은 탈렌트나, 대사가 나오면 ‘아이 못된 것’하고 거푸 욕을 하신다. 그게 안타까워,
“어머니 배역을 일부러 그렇게 한거예요. 그 사람 본래 나쁜 사람이 아니예요”
하면,
“그래도 그러면 못쓰지, 천벌 받지”
하신다.
나는 이러는 노모를 지켜보노라면 망극득모(亡戟得矛)라는 말을 많이 생각한다. 이 말은 물건을 얻거나 잃거나 함에 있어 그 이해(利害)를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는 뜻인데, 마치 나의 경우가 그러한 면이 없지 않는 것이다. 아내의 입원으로 모든 게 잃고만 산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노모를 모시면서 고치고 살아가야 할 것을 배우는 것이다.
사실, 직장생활도 마치고, 환갑이 다된 내게 누가 뜻한바 있어 쓴 소리를 해줄 것인가. 어머니의 타박을 들을 때마다 고분고분 하는 것은 내 성격이 좋아서가 아니라 앞으로 사시면 얼마나 사실 것인가 하는 생각에 그렇게 하는 점이 없지 않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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