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갈대 - 조병화
때때로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의 그 존재의 장소를 생각한다.
실로 유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터무니없이 넓은 우주 공간 속에서,
그리고 그 어머어마한 시공 속을 헤엄치고 있는 나의 작은 종교관 속에서,
그리고 항상 가시지 않는 불안과 공포,
변화무쌍한 국제적·국내적 정치와 경제의 어두운 카오스 속에서,
그리고 먼지와 바람, 피곤한 감정이 쉴 곳 없는 이 사회 속에서.
그리고 때때로 나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의 그 존재의 현상(現象)을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불안하니까. 그리고 고독하니까.
그리고 인간은 항상 혼자이니까.
이러한 나의 존재의 자리, 존재의 부근, 그 이웃, 그 속에서의 나의 행동,
그 존재의 형태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한시도 불안해서 배길 수가 없다.
다시 말하면, 한시도 자기 자신을 잃고선 불안해서 배길 수가 없다는 말이다.
과거,현재, 미래를 통한 일관된 자기 철학이 서지 않고선 견딜수가 없는 이 불안한 갈대,
나는 항상 생존 앞에서 떤다.
나는 지금 1983년이라는 시간의 정거장을 60대 성인 아닌 성인으로 통과하고 있다.
실로 많은 무시무시한 전쟁을 겪어 왔다.
몇 번이고 죽음을 넘어서 지금 이 시점까지 온거다.
어떻게 보면 지금은 덤으로 생존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식민지 시대하의 만주 사변, 중일전쟁, 일본 군국주의에 의한 세계 제2차 전쟁, 해방,
그리고 6.25 한국동란, 월남전쟁 등. 그리고 지구상에서 동양, 동양 속에서
극동 한반도 한국에 태어나 한국 국적으로 격변하는 한국에 살고 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상상적으로 생활 전반적으로 현대화로 달음박질하고 있는 신생국가,
그 엄청나 개혁 속에 살고 있다.
빈곤을 몰아 내고, 정치적 낭비를 몰아 내고,
사상적 혼란을 몰아 내고 건설로, 번영으로, 부강으로, 자립으로,
빛으로 향한 민족적 대혁신 속에서 힘을 다하여 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현실 속에서 대학이라는 숲속에서 살고 있다.
시를 다루는 현대 문학을 택하여 살고 있다.
그 속에서도 시(詩)라는 인간 영혼의 현상을 줄잡아 살고 있다.
그리고 이걸 나의 철학, 나의 종교, 나의 전생애로 시비를 하고 있다.
나는 특별한 기성 종교를 아직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나의 말[詩]이 그걸 대신해 주고 있다.
영국의 어느 시인은 「시는 종교에 이르는 중도의 집」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나의 말, 나의 시를 통해서 나를 발견하고, 나를 형성하고,
나를 인식하고, 나를 확인하고, 나를 이끌고,
나의 종말을 향해서 지금 걷고 있는 거다.
나는 이곳에 있는 거다.
이러한 다원적 긴장체계의 자리에서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를 살고 있는 거다.
이걸 또한 확인하면서 살고 있는 거다.
나는 나를 확인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약한 생리를 가지고 있다.
우선 여기서부터 나의 모든 건 출발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거기 고독한 단독자(單獨者), 나를 발견한 때 처음으로 안심을 하는 거다.
나는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 고독한 안심 속에서 다시 시간을 보고,
공간을 보고, 시대를 보고, 움직임을 보고, 변화를 보고, 생(生), 사(死), 애(愛)를 보는 거다.
그리고 언제나 줄어드는 세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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