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로 살 것인가, 자유인으로 살 것인가?
신상래 목사
노예라는 신분은 이 시대에 낯선 말이다. 노예제도는 봉건주의 시대에 통용이 되었던 신분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예가 얼마나 고통을 받으며 사는 신분인가는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한마디로, 노예가 사람모습을 한 개로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개는 하루 종일 주인의 눈치를 살피다가 주인이 좋아하면 한 없이 행복해하지만, 주인이 싫어하고 때리고 밥을 주지 않아도 참고 견디어야 한다. 주인이 때렸다고 주인에게 으르렁거리고 물기라도 했다면, 개의 운명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죽도록 두드려 맞다가 개장수에게 팔려서 보신탕집에 팔려 갈 것이다. 개를 학대한다고 주인에게 항의하는 사람은 없다. 개는 주인의 재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악한 주인을 만난 개의 운명은 평생 고통에 시달리고 불행하게 살다가 개장수에게 팔려갈 것이다. 그렇지만 개를 불쌍히 여길 수는 있어도 개의 불행한 운명을 바꾸어놓을 수는 없다. 개를 태어났다는 사실이 지울 수 없는 불행의 굴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개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평생 감사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아니, 아침부터 상쾌하지 못한 소리를 하네요? 하며 불쾌하게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의 입장에서 보라. 누가 개로 태어나기를 희망했을 것인가? 개뿐만 아니라 불결하고 비좁은 우리에서 사육당하다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나 돼지, 닭 등의 참혹한 운명에 비하면 개는 조금 나을 수도 있다. 좋은 주인을 만나면 안락한 집에서 호강하며 살 기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혈통이 좋은 애완견으로 태어나야 그런 혜택을 보지, 이름 없는 잡종견으로 태어났다면 소나 돼지와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개나 돼지 소들은 인간처럼 깊은 생각을 하고 판단할 지적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일게다. 마치 정신박약아가 자신의 불행과 장애를 인지하지 못하고 늘 웃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정신박약아가 자신이 불행하거나 고통스럽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정신이 말짱한 사람이 극도의 장애나 고질병을 앓아 고통의 수렁에서 헤매고 있다면 사는 것이 지옥 그 자체일 것이다. 이들은 죽어서 얼른 이 땅을 떠나는 것이 소망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노예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은 예외 없이 노예로 태어났다. 무슨 노예냐면 육체의 노예로 태어났다. 사람은 누구나 육체의 요구대로 살도록 되어있다. 육체가 배가 고프면 무엇인가 먹을 것을 입에 넣어주어야 하고, 육체가 추우면 몸을 덥게 하는 것들로 온도를 덥혀주어야 하고, 반대로 육체가 더우면 차갑게 해서 온도를 내려주어야 하고, 육체가 심심하면 즐겁게 해주는 놀이를 해주어야 하고, 육체가 불쾌해하면 불편한 마음을 풀어줄 무엇이가를 찾아 해소해주어야 한다.
잘 생각해보라.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 까지 파김치가 되어 일터에서 코를 처박고 있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학생이라고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하루 종일 책만 쳐다보고 싶겠는가? 그러나 육체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그런 고난과 고통을 참고 견디며 있는 게 아니겠는가? 하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이유는 누구나 육체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체의 주인이 바로 나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겠지만, 육체의 욕구에 어쩔 수 없이 복종하고 순응하면 살면서 주인이라고 하는 게 우습지 않은가?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육체의 노예로 살지만, 육체가 바로 자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중년이 넘게 살아보면 알게 되겠지만, 육체는 죽을 때까지 끝도 없이 탐욕과 쾌락을 요구한다. 그러나 탐욕과 쾌락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마실수록 갈증은 심해진다. 그러므로 만족하지 못하는 주인의 괴팍한 명령을 따라, 할 수도 없고 되지도 않는 것들을 찾아 평생 헤매는 게 인생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육체를 떠나는 것만이 탐욕스런 주인에게 도망쳐 자유인이 되는 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당신의 인생이 고단하고 팍팍한 이유는, 바로 육체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래 육체가 고약하고 탐욕스런 주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육체를 만든 이가 처음부터 그렇게 지은 것은 아니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바로 하나님이신데, 처음부터 고약한 육체로 만든 것이 아니었지만 선악과 사건으로 말미암아 탐욕스럽게 변질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변질된 사람을 버리고 떠나버리셨다.
그 떠난 자리에 엄청난 위력을 지닌 존재가 속이고 들어와 주인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 주인은 감쪽같이 속이기 때문에 사람의 능력으로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다. 속이고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는 이가 바로 사탄이다. 그러나 사탄은 육체의 감각기관으로는 알 수 없는 존재이기에 전혀 눈치 챌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주인은 변질된 육체가 추구하는 탐욕과 방탕을 부추기어 죄를 짓게 하여 더 큰 불행에 빠뜨리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고통을 이기지 못해 울부짖는 것을 즐기며, 생명과 영혼을 사냥하여 꺼지지 않는 유황불이 활활 타는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악마이다. 이쯤 되면 당신의 운명이 얼마나 위태로운 풍전등화의 가혹한 상황에 있는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불행의 늪에서 고통스럽게 살아온 것은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말하자면 슈퍼맨이 악마의 손아귀에서 빠진 사람을 구출하러 나타난 것이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필자가 만화처럼 이 상황을 설명했지만, 사실은 만화 그 이상이다. 당신이 처해 있는 삶을 잘 살펴보라.
육체를 입고 있는 한 육체의 노예가 되어 살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런데 그 육체의 욕구는 끝이 없이 탐욕스럽다. 그럼에도 타락하여 변질된 약한 육체를 이길 힘이 당신에게 없다. 육체의 욕구를 사로잡아 눌러서 이길 능력은 당신을 지으신 하나님밖에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벌써 육체를 이길 능력을 얻었어야 하지 않은가? 그러나 아무리 오래 교회에 다녔더라도 악한 주인인 육체를 이길 영적 능력이 당신 안에 없다면, 여전히 당신의 악한 육체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교회에 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가슴에 새겨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자 성령은, 예수를 입으로 고백하고 교회예배에 정규적으로 출석했다고 당신에게 단박 오시는 분이 아니다. 혹독하게 그분을 부르고 전심으로 찾아야 오시는 분이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죽기 살기로 찾고 불러야 당신 안에 오셔서 악한 육체의 노예에서 해방시켜주신다.
그러므로 당신이 더 이상 육체의 요구에 따라 살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서야, 비로소 악한 주인에게서 풀려난 것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은 이틀만 찾고 부르는 것을 잊으면 떠날 채비를 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육체를 입고 있는 이상, 날마다 틈만 나면 새로운 우리의 주인이신 성령을 찾고 부르는 습관을 들여야만 한다. 그게 악한 주인인 육체로부터 해방되는 유일한 비결이다.
변질되고 타락해서 탐욕스럽고 방탕만을 좇는 사악한 주인인 육체에서 우리의 영혼을 해방시켜주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보혈을 흘려주셔서 그 길을 열어주셨다. 그런데 아직도 그 길을 들어서지 못한 이들이 우리네 교회 안에 허다하다. 그래서 이 땅에서 여전히 악한 육체의 종노릇을 하다가 지옥으로 던져질 판이다.
당신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므로 교회예배에 정규적으로 출석하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끝없이 탐욕과 방탕을 요구하는 육체의 명령에 여전히 끌려 다니고 있지 않은지 자신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아직도 끌려 다니고 있다면 여전히 육체의 노예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국의 자격은 언감생심이고 이 땅에서의 평안과 형통은 꿈도 꾸지 말기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가 새 길을 활짝 열어주셨는데도, 탐욕과 방탕에 빠져 그 길에 들어설 생각도 없는 당신에게 주어질 천국의 자리는 결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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