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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는가? - A. W. 토저.2

Joyfule 2022. 4. 19. 00:33



 

 

    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는가? - A. W. 토저.2

 

이사야는 이 대속의 장면을 이런 아름다운 소식으로 마무리합니다.

『그가 맞은 채찍으로 우리가 치유되었도다』(사 53:5).

'채찍질' 당했다는 말은 그리 유쾌한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온 몸이 한 개의 타박상으로 인한 증상인 것처럼 온통 검푸르게 멍들 때까지 상처를 입고 상한다는 뜻입니다. 인류는 지금껏 이러한 육체적 손상을 징벌의 수단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사회는 늘 잘못을 행한 사람을 징벌할 권리를 부여받았습니다. 형벌은 범죄의 속성상 응당한 것입니다. 형벌이란 사회가 규칙을 무시한 개인에게 내리는 사회적 복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은 징벌이 아니었습니다. 그 고통은 자신 때문에, 혹은 자신이 하신 일 때문에 겪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치유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고치시고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기 위해 기꺼이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고통은 고통에서 시작해서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고통으로 시작해서 치유로 끝이난 것입니다.

형제들이여, 이것이 십자가의 위대함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계획하셨던 계셨던 희생의 위대함입니다. 이것은 회개하는 죄인이 하나님과 평화롭고 영화롭게 교제를 나누게 하는 속죄의 위대함입니다. 이것은 그분의 고통으로 시작해서 우리의 정결케 됨으로 끝이 났으며, 이것은 그분의 상하심으로 시작해서 우리의 씻김으로 끝이 났습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저는 회개의 요지는,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향해 품고 있던 반역적인 태도를 뉘우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서 저는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그 뉘우침을 번복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회개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죄가 씻겨짐과 동시에 사라져 버리는, 일시적인 마음과 영의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회개에 동반되는 그 고통스럽고 격렬한 죄의 자각은 평안과 죄를 용서받은 데서 오는 기쁨을 조금은 감소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거룩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어린양을 징계하고 그분에게 상처를 입히는데 일조했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며, 그는 이로 말미암아 충격에 휩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린양의 상처로 말미암아, 그분에게 상처를 입힌 바로 그자들과 자신의 죄가 씻겨지고 하나님께 용서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느꼈을 놀라움은, 그의 마음 속에 내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주의적 교회의 회원들에게는 거룩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이 감동은 마음에 영적인 순전함을 갈구하게 합니다. 영적으로 메마른 시대를 살았던 요한 웨슬리를 보면 잘 알 수 있고, 또 배울 수 있는 사실입니다.

『거룩함』이란 그 아름다운 말이 교회에 다시 돌아오는 것뿐만 아니라, 저는 하나님께서 염두에 두신 그 단어의 의미 그대로 교회가 다시 거룩해 지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순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을 가지기를 바라고 소망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를 굴욕과 모욕 그리고 숱한 매질에 내어 주셨습니다. 그분이 상하시고 상처를 입으시고, 매질을 당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깨끗케 하고 영적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즉, 우리의 마음이 순전해지고 우리의 생각이 순수하여지길 원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사역은 그분의 고통으로 시작해서 우리의 깨끗케 됨으로 끝이 났습니다. 이것은 그분의 피가 배어나는 찢긴 상처로 시작되어서 그분의 백성들의 화평과 평안 그리고 기쁨이 넘치는 삶으로 끝이 났습니다.

겸손하고 헌신된 그리스도이라면 모두 이 경건의 신비를 항상 놀라워 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꺼이 우리를 대신하여 심판대 앞에 서셨고 또한 형벌을 받으였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 사실을 듣고 별로 놀랍지 않다면, 당신은 무언가 잘못된 사람입니다. 얼어붙은 마음을 깨뜨리고 새롭게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자주 언급했듯이, 바울은 지금껏 살았던 사람들 중 가장 거룩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살아 있을 동안 자신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늘 염두에 두고 있었으며, 이것을 상기시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옛죄들을 붙들고서 자신을 대적하시고 있지 않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계산이 이미 끝이 났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마음은 언제나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도 놀라워 머리를 흔들며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난 정말이지 아무 가치 없는 인간인데, 그럼에도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런 사역에 부름을 받은거야. 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야."

제가 바울의 확신과 기쁨, 그리고 믿음에 대해 이런 언급을 하는 이유는, 만일에 의롭게 된 사람에게서 참회하는 마음이 사그라져 있다면, 그는 타락하고 있는 중이란 이야길 하기 위해서 입니다.

찰스 피니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가운데 한명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증거하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 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때때로 자신의 마음이 차가워 졌다는 고백을 하곤 했습니다.

그는 결코 구구한 변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남긴 기록에 보면, 그는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서 금식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면서 자신을 새롭게 해 주시기를 간구했다고 합니다.

"나는 마음이 다시 뜨거워지길 간구했다."라고 그는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 얼마나 훌륭한 본입니까?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즉 그의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주님을 기쁘게 섬기려면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분이 상처를 입으심으로 우리가 깨끗해 졌으며,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하나님의 화평이 실현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있을 때만이 우리는 올바른 영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상태에서 우리는 그분이 우리를 깨끗케 하심으로 얻은 정결을 유지할 수 있고, 악이나 잘못된 행동을 변명하려 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하시고 찢기신 그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감사의 마음과 기쁨을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얼마나 놀라운 구속의 신비입니까? 상처를 입으신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수백만의 사람들이 치유를 얻었고, 한 분이 매질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치유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받았어야 할 상처와 고통을 그분이 받으셨고, 우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수년전, 장로교파에 속한 일단의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모든 인간을 위한 속죄제물로 내놓으셨다는 사실에 경도되어 서로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앞으로 석 달 동안 신중하게 살아가면서, 우리의 마음을 살피며, 하나님께 마음를 기울이면서 그분의 얼굴을 찾읍시다. 그리고 나서 준비된 마음으로 주의 만찬에 참여합시다. 주의 만찬이 그저 흔해빠진 일상의 행사가 되지 않게 말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겸손하고 마음이 순전하며 그분의 능력과 은혜 그리고 영생을 온 마음으로 믿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대학에서 연구를 하는 식물학자들은 사막에 자생하는 아카시아 덤불에 대해 모세보다 훨씬 더 훌륭한 설명을 늘어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덤불에서 타오르는 신성한 불 속에서 하나님이 무언가 말씀을 해 주시길 간절히 기다리는 겸손한 혼을 찾고 계십니다.

연구실에서 연구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은 빵이나 포도주의 구성 성분, 혹은 특성에 대해 성경의 그 어느 사도들보다 더 훌륭한 설명을 내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위험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빛과 열심을 잃어버리고는, 그저 빵과 포도주만을 손에 들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거룩한 불은 덤불에서 떠나버리고 우리의 모임과 교제 속에는 그분의 영광이 소멸해 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역사나 과학적 사실에 해박해 지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우리의 죄를 대속하게 하신,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게 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더욱 알고자 하는 마음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