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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 사망이여 - 스펄젼.

Joyfule 2022. 4. 16. 14:25


 

 

    잘 가라 사망이여 - 스펄젼.

 

2. 멸망당할 원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심으로써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평생 속박되어 있는 우리를 구해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아직 죽음을 완전히 파괴시키지는 않으셨지만, 거의 그렇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복음을 통하여 죽음을 폐기하시고 불멸을 밝히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으로 보아 주님께서는 죽음을 완전히 멸망시키는 것에 대단히 근접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주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영적인 죽음에서 구해내심으로써 죽음을 정복하셨습니다. 허물과 죄들로 죽었던 너희를 그가 살리셨으니.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없었을 때 우리는 모든 영적인 것들과 신성에 속한 것들에 대해서는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려내신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생명의 새로움으로 일으키셨으며,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은 정복되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죽음을 정복하셨습니다. 우리의 원수 사망이 예수님의 명령으로 자신의 희생자들을 단념했던 세 번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회당장의 집에 들어가셔서 이미 죽음의 잠을 자고 있는 어린 소녀를 보셨습니다. 그 소녀 주위에는 사람들이 애곡하고 있었습니다. 그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느니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을 때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사람들을 모두 밖으로 나가게 하신 뒤 주님께서 소녀에게 '소녀야,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파괴자가 강타를 당하고 지하 감옥의 문이 열렸습니다.

또 주님께서는 나인성 성문에서 장례 행렬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한 젊은이를 운반하고 있었는데 그는 그의 어머니의 외아들이요 그녀는 과부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젊은이여,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젊은이가 일어나 앉자 주님께서는 그를 그의 어머니에게 넘겨 주셨습니다. 또 한 번 죽음의 희생자가 막강한 원수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것입니다.

세 번째 사건은 나사로입니다. 나사로는 너무 오랫 동안 무덤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누이는 주여, 지금은 악취가 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사로야, 나오너라는 말씀에 복종하여 수의에 동여진 채 죽음에서 일으켜진 나사로가 걸어 나왔을 때, 죽음이 인자에게 복종하는 것을 모든 사람이 목격했습니다. 죽음을 정복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를 풀어 주어 다니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의 속박이 제거되고 포로가 석방된 것입니다.

그밖에도 구속주께서 부활하셨을 때 성도들 중 많은 사람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거룩한 도성으로 들어갔습니다. 십자가에 처형되신 주님께서 사망과 무덤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정복한 위대한 승리는 십자가 상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그분은 자신의 백성들을 대신해서 죽음의 형벌을 맛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성도들은 죄에 대한 형벌로 죽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한 가지 죄에 대해 두 번이나 똑같은 형벌을 요구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미 죽으셨기 때문에 육신의 죽음은 하나님의 자녀가 죄에 대한 벌로서 지불해야 할 고통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성도들이 죽는 것입니까? 하늘 나라에 가기 위해서입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려면 몸이 변화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혈과 육'은 그 모습 그대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변화시키셔서 불멸과 영광에 어울리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죽음과 무덤은 말하자면 정제시키는 용광로 같은 것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몸은 미래의 축복에 합당하도록 준비되는 것입니다.

사망은 아직 완전히 멸망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살아 계신 구속주께서 사망을 이기심으로써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셨습니다! 성도들은 이제 죽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서서히 분해되고 떠날 뿐입니다.

죽음은 범선을 묶어 둔 밧줄을 끌러 아름다운 항구로 항해해 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하나님께로 올라가게 해 주는 불병거입니다. 위대하신 왕께서 자신의 연회장에 들어오셔서 다정한 음성으로 ?더 높은 곳으로 올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독수리의 날개 위에 타고 안개 구름 자욱한 이 세상을 멀리 떠나 영원한 평안의 집, 저 높은 곳에 있는 찬란한 하나님의 집으로 날아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죽음을 폐기하셨습니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이며,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구속주께서는 그 쏘는 것을 제거하셨습니다. 이제 그 쏘는 것을 제거당한 죽음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거하기는 하지만 이들에게 '죽는 것은 죽음이 아니기' 때문에 그 죽음은 전혀 해를 끼치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을 정복하셨습니다. 부활하심으로써 완전히 사망을 이기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모습은 어떠했을지 상상해 봅시다.

무덤의 한켠에서 잠깐 동안의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신 주님은 조용히 수의를 벗으셨을 것입니다. 얼마나 여유 있게 움직이셨을까요! 먼저 작은 수건을 개서 옆으로 놓으신 뒤에 수의를 벗어서 따로 개어 놓으셨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무덤에 왔을 때 잘 개어져 있는 옷을 발견하도록 말입니다. 이제 무덤은 더 이상 무시무시한 지하 납골실이 아니었습니다. 잘 정돈되고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기숙사 방처럼 된 것입니다. 그곳은 더 이상 습기차고 어둡고 으시시한 감옥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을 완전히 바꾸셨던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우리 주님의 무덤에서 바위를 굴려 내어 신선한 공기와 빛이 안에 계신 주님께 닿도록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무덤 밖으로 걸어나오실 때, 주님은 정복자 그 이상의 모습이셨습니다. 죽음은 달아났습니다. 무덤은 무조건 항복했습니다.

성도들이여,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그분은 모든 성도들의 몸이 영광스러운 생명으로 부활할 것을 너무나도 확실하게 보증하셨습니다. 성도들의 혼의 생명은 단 한 순간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 점에서 주님은 죽음을 정복하셨습니다. 그날의 커다란 승리 이후에 그리스도께서는 매일같이 죽음을 이기고 계십니다. 성도들에게 그분의 영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들 안에 그분의 영이 계시기 때문에 성도들은 두려움 없이 마지막 원수를 대하게 됩니다. 성도들은 때로 노래하며 죽음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성도들은 대개 온화한 표정으로 죽음을 맞으며 평화롭게 잠이 듭니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죽음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죽음은 용처럼 보이지만 그 쏘는 것은 사라졌습니다. 죽음은 이빨 부러진 늙은 사자입니다. 그런데 왜 죽음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우리는 죽음이 우리를 멸망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는 다만 우리로 황금문을 통과하게 해 주는 사자(messenger)로서 보냄을 받았을 뿐입니다. 우리가 그 문을 통과했을 때 우리의 구세주를 영원히 대면하게 될 것입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많은 성도들이 죽음의 잠을 자기 위한 침상이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침상 중에서 최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혼이여, 내게 말하라. 어떻게 이것이 죽음일 수 있단 말인가?? 죽음은 이들이 예상했던 것과 너무도 달랐던 것입니다. 너무도 고상하고 즐거운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모든 근심을 다 벗고 안도했습니다. 이런 것이 평생 두려워했던 죽음일 수 있을까 하고 기이히 여겼습니다. 죽음이 칼로 찌르는 것 같으리라고 생각하고 두려워했는데 압정으로 찌르는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죽음은 지상에서 눈을 감았다가 하늘에서 눈을 뜨는 것입니다. 그때 이들은 죽음은 침대에서 기지개를 쭉 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무섭고 섬뜩한 통로를 통과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높임을 받으신 우리 주님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이런 죽음의 쏘는 것을 없애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