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사망이여 - 스펄젼.
3. 그러나 사망이 완전히 멸망하는 것은 미래의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읽은 시편 8편 본문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의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멸망받게 될 마지막 원수는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의미를 볼 때 사망은 아직 멸망받지 않았습니다. 사망은 멸망당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겠습니까?
먼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살아 남아 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보지 않으리라는 의미에서 죽음은 멸망당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불멸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기 전에 몸의 변화를 받을 것입니다. 이들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이들이 잠들어 있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호의를 입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살아 있을 무수한 성도들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광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과 관련해서 볼 때 죽음은 멸망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잠들고 육체와 뼈가 썩어서 흙이 된 무수하게 많은 성도들에 대해서도 죽음은 멸망받게 될 것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면 이들은 무덤에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사망이 멸망받는 것입니다.
저는 무덤으로 들어간 몸의 모든 입자가 그 전과 동일하게 재구성되어 동일한 모습으로 부활하게 되리라고 가르친 적도 없으며, 그렇게 믿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부활한 몸을 보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 분간할 수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땅 속에 심겨진 씨가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땅을 뚫고 나오는 것처럼, 몸은 다시 부활할 것입니다. 땅 밖으로 나오는 것은 씨 자체가 아니라 꽃입니다. 동일한 소재도, 모습도 아닙니다. 그렇게 우리는 무덤 속에서 나올 것입니다. 무덤이 아니라면 땅 속에서 나올 것입니다. 바다 생물에게 잡혀 먹혔다면 바다 속에서 나올 것입니다. 지상에 거할 때의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몸으로 나올 것입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님도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그분의 백성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사망이 승리 속에 삼킨 바 되었느니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음부야!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었다가 부활한 사람들은 그들이 죽음을 겪었다는 사실로 어떠한 해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이 점에서 사망은 우리 주님의 승리로 인해 완전히 멸망받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이 입게 될 새로운 몸은 노쇠함도 없을 것이며, 병색도 없을 것이며, 순교의 상흔도 없을 것입니다. 죽음은 그들에게 어떤 표도 남기지 못할 것입니다. 상흔은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의 상흔처럼 그들에게 존귀를 가져다 줄 영광스러운 표가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니신 상흔은 오히려 아름다움이며, 못에 찔리신 손과 발은 성도들의 눈에 아름답게 보일 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망은 멸망받게 될 것입니다. 죽음은 성도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할 것입니다. 썩어짐의 흔적은 구속받은 사람들에게서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주님의 나팔 소리 이후에는 마침내 더 이상의 죽음도, 더 이상의 슬픔도, 더 이상의 울부짖음도 없을 것입니다. 이전 것들은 다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신 그리스도는 더 이상 죽지 않으며, 죽음은 더 이상 그분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구속받고 잠들었던 성도들도 부활한 뒤에 더 이상 죽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이 또 다시 고통이나 유혹이나 죽음을 겪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생각입니까! 결코 그렇게 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살아 있으므로 너희도 또한 살게 되리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혼의 불멸이라는 이 당연한 교리를 어떤 사람들은 거부합니다. 어떤 혼들은 미래에 영원한 형벌을 받으며, 어떤 혼들은 영원한 복을 받는다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 사실을 다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둘 다 거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들은 영원한 형벌로 들어갈 것이며, 의인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리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받을 형벌이 영원하지 않다면 의인이 받는 생명도 영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원이라는 말이 형벌에 쓰이든지 생명에 쓰이든지, 그 의미는 다 같습니다. 영원히 지속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끝도 없이 계속되는 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눈물도 없고, 슬픔도 없고, 무덤도 없는 나라에서 죽음은 완전히 멸망당하게 될 것입니다.
4. 사망은 '마지막으로' 멸망당하게 될 것입니다
죽음은 마지막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마지막에 나가야 합니다. 죽음은 우리의 원수들 중에서 첫 번째로 오지 않았습니다. 마귀가 처음으로 들어왔고, 그 다음이 죄이고, 그 다음이 사망입니다. 사망은 최악의 적은 아닙니다. 사망은 원수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다른 대적들에 비하면 훨씬 더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짓는 것보다는 수천 번이라도 죽는 편이 더 낫습니다. 죽음의 시련을 받는 것은 마귀의 유혹을 받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죽음과 연관된 단순한 육신의 고통은 죄로 야기되는 섬뜩한 슬픔과 죄에 대한 양심으로 혼에 지워지는 짐과 비교해 볼 때는 사소한 것입니다. 죄로 오염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죽음은 부차적인 재앙일 뿐입니다. 먼저 제일 강한 원수를 패배시켜야 합니다. 목자를 치면 양들은 흩어지게 마련입니다. 모든 악의 주인인 죄와 사탄을 먼저 패배시키십시오. 그러면 사망은 ?마지막? 원수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사망은 ?마지막? 원수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죽음은 ?마지막으로? 멸망받게 될 원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망이 마지막이라고 했다면, 성도 여러분, 진정으로 사망이 마지막 원수가 되게 하십시오.
어떤 형제가 있었는데, 그는 죽기 오래 전부터 죽음을 원해 왔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죽는 순간까지 죽음의 은혜를 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살아 있는데 죽는 은혜가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강가에 이르렀을 때만이 배가 필요합니다. 사는 데 필요한 은혜를 간구하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그러면 죽음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죽음의 은혜도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원수는 멸망당하게 될 것이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싸워야 할 적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잠시 동안은 이 죽음이라는 원수를 내버려 두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원수는 멸망당할 것이지만 우리 개개인에게 있어 그 때가 언제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현재 우리가 받은 지혜대로 살면서 매일 이행해야 할 임무를 수행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시련이 닥치면 시련을 그대로 받으십시오! 원수들이 몰려 오면 그들을 무찌르십시오. 계속해서 무찌르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방을 강타하는 데 실패했다고 해서 그 뒤에 공격해 오는 후열을 두려워한다면 여러분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대적이 전진해 올 때까지 최후의 일격을 보류해 두십시오. 그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 투쟁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적당한 때가 되면 여러분이 마지막 원수를 이기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이 세상과 육신과 마귀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훌륭한 삶을 산 사람은 훌륭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지만 동시에 죽음도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이나 죽음이나 현재의 것이나 장래의 것이나 모든 것이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로다.
사망은 왜 마지막까지 남겨졌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크게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멸망받게 될 마지막 원수는 사망입니다. 사망은 멸망받기 전에 대단한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 많은 교훈을 배웁니다. 친구들의 죽음은 우리가 갖고 있는 어리석고 눈 먼 열정을 꺾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우리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들을 위해 사는 것이 얼마나 가치 없는 일인지를 상기시켜 줍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도 반드시 죽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이 세상을 잡았던 고삐를 놓고 다가올 세상을 향해 날아 올라갈 것입니다.
우리의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서 죽음만큼 강력한 설교는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은 하나님의 장엄한 지혜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우리는 그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남겨 두셔서 죽음으로 하여금 성도들에게 설교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또한, 만일 죽음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성도들은 사랑의 최고의 열정을 나타낼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어디에서 가장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까? 화형대와 고문대에 묶여 죽어간 순교자들의 죽음에서였습니다. 박해의 숲에서 하늘 나라로 올라간 사람들은 손으로 엮은 화환을 주님께 가져다 드렸습니다. 그와 같은 것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그것은 피의 시내를 건너 가져온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죽음으로써 성도들은 그분을 가장 영예롭게 했던 것입니다.
평범한 죽음으로 죽은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과 행위에 있어 인내했다는 승리의 간증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은혜 시대가 지속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만일 성도들이 결코 죽지 않는다면 우리는 생의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킨 승리로 인해 주님께 영광을 가져다 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 교회의 몇몇 회원들이 숨을 거두었을 때처럼 제가 숨을 거둘 수 있다면, 저도 그런 장엄한 기회를 얻고 싶을 지경입니다. 그들이 노래한 것처럼 노래할 수 있다면 저는 죽음을 피해 다른 우회로를 찾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의 눈에서 빛나던 그런 호산나와 할렐루야의 빛이 제 눈에서 빛나게 된다면 죽음은 축복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사랑과 믿음을 가장 크게 시험하는 사망은 마지막까지 멸망받는 것이 잠시 보류됩니다. 그것을 통해 성도들은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없이는 우리는 그리스도와 완전히 일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 안에서 잠들 때 우리는 그분과 완전하게 일치하게 될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서 성도들 사이에 약간의 질투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죽음을 맛보지 않고 변화된 성도들이 죽음을 맛보게 될 여러분과 저를 만나서 느끼는 질투일 것입니다. ?형제님, 제가 경험하지 못한 가지가 있습니다. 저는 무덤에 누워 본 적이 없습니다. 저에게는 결코 죽음의 차거운 손이 닿은 적이 없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 나는 나의 주님과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형제님은 죽음에 있어서까지 주님과 교제를 나누시지 않았습니까.?
살아 남아 있는 사람들이 주 안에서 잠든 사람들보다 호의를 덜 받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 편애라는 것이 있다면, 예수님 안에서 잠들어서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깨어나게 될 우리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망은 아직 멸망받지 않았습니다. 사망은 성도들을 본향으로 데려다 주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성도들에게 다가와서 죽음의 메시지를 속삭일 뿐입니다. 그러면 한 순간에 성도들은 지고의 복을 받게 됩니다. 죄와 근심과 저주가 없는 곳에서 이제 구주와 함께 안식하는 것입니다.
사망은 아직 멸망받지 않았습니다. 유용한 목적들에 소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래에는 멸망받게 될 것입니다. 사망은 주님의 몸된 교회의 마지막 원수입니다. 현재 교회에게는 대항해서 싸워야 할 많은 적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 이후에 우리는 ?사망은 마지막 원수이고, 이제 다른 원수는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끝없는 축복 속에서 영원이 시작될 것입니다. 새로운 기쁨을 가져다 주는 변화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영원 속에서는 훨씬 더 놀라운 축복의 시대들이 이어질 것입니다. 지고의 기쁨도 있을 것입니다. 분노하는 적들로 인한 갑작스런 경보도 없으며, 마지막 휴식이 깨질까봐 근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멸망받게 될 마지막 원수는 사망입니다. 마지막 원수가 살해되면 더 이상의 적은 없습니다. 전투는 끝나고 영원한 승리만이 남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누구입니까? 보좌에 앉으신 어린 양 외에 누가 있겠습니까? 그분께 존귀와 영광과 위엄과 권세와 권능을 영원 무궁토록 돌립시다.
오 주여, 우리의 엄숙한 경배를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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