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yful자료실 ━━/신상래목사

당신은 성령으로 거듭난 증거가 있는가?|

Joyfule 2015. 2. 21. 22:15

 

 

당신은 성령으로 거듭난 증거가 있는가?|

 

 

필자가 목회자이어서 그런지 고약한 직업병(?)이 있다.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의 신앙상태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물론 특별한 목적이나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래서 단지 직업병일 거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필자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은 거의 크리스천들이고, 대부분 오랜 신앙의 경륜을 가지고 있다. 목회자를 비롯해서 장로나 권사, 집사 등의 직분을 가지고 있고, 나름대로 기도나 말씀에도 일가견이 있으며, 신앙생활과 교회봉사를 열정적으로 한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들이 직분이나 신앙의 연륜, 기도하는 시간이나 성경지식을 신앙상태의 잣대로 삼는 것은 아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증거가 있는지 살펴본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3:5~8)

 

거듭나다라는 표현은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예수님의 언급에서 나온 단어이다. 아시다시피, ‘거듭난다는 의미는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육체의 사람에서 성령의 사람으로 변화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내용은 당신도 이미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던 터일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거듭났음을 알려주는 증거는 무엇일까?

 

육체로 태어난 사람은 몸이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돈을 추구하고 자기를 사랑하며 사는 사람으로서, 탐욕과 방탕을 쫓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인생의 목표와 삶의 목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이러한 필자의 정의는 교회의 설교에서 많이 들어 알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부족하지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 들어난 희생적인 신앙행위나 예배의식에 참여하는 모습으로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난 희생적인 신앙행위로 평가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의 속내가 목적, 동기나 의도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날카롭게 살펴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희생적인 신앙행위나 예배행위의 속내가 과연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순수한 동기에서 하는 것인지, 세속적인 축복을 바라거나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싶어하거나, 마지못해 의무감에서 하는 신앙행위인지를 날카롭게 분별하신다는 것이다. 그런 행위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가증한 행위이므로,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어떠한가? 성령의 사람은 신앙행위를 포함해서 일상의 삶이 과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자신의 속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지를 날마다 살피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육체를 입고 있는 사람으로서, 모든 일에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이러한 삶이 가능하다. 말하자면,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이런 삶을 가능하게 하신다. 이런 삶의 모습은 성령이 내주하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비로소 생각이나 성품, 말과 행위에 하나님의 뜻을 가늠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2,23)

 

위의 말씀은 하도 많이 들어 줄줄이 외우는 분도 적지 않다. 성령의 오래 거주하여 맺어진 열매로 명시했기 때문이다. 위에 열거된 9가지 열매 중에 7가지가 거룩한 성품을 말하고 있다. 성령이 오랫동안 내주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는 증거로서, 세속적인 성품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하여야 한다. 그러나 신앙의 연륜이 오래 되었고 교회직분이 무거워도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지 않는 이들이 허다하다. 물론 그러한 변화는 가까운 가족이나 친분이 두터운 이들만이 알아챌 수 있다. 유명하고 인기 있는 목회자들조차, 속을 훤하게 보고 있는 가족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하는 성화는 천국 가는 그날까지 추구해야 하는 숙제이다. 그러나 오랜 신앙의 연륜에도 부족한 성품을 고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라면 성령과 아무런 상관없다고 보면 된다.

 

많은 이들이 성경지식이 출중하여도 성령으로 거듭난 증거를 보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시다시피,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을 쉬운 일이 아니다.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 요구하는 희생적인 신앙행위나 예배의식을 통해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성령을 만나는 성경의 원칙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끈기 있게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면 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간절히 그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성령이 오실 때가지 기다리지 못한다. 간절히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에 무지하며 인내를 보여주지도 못하기에 성령을 만난 증거를 가진 크리스천들이 보기 드물다. 그래서 교회지도자들은 성경에는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자신들에게 없는 성령의 증거를 애써 무시하거나 이미 과거의 일이라고 치부해버린다. 성령의 증거를 얻을 노력을 하지 않고, 먹을 수 없는 신 포도라고 위안을 삼으며 포기해버린 것이다. 그런 목회자의 가르침을 받는 교인들의 생각이야 말할 나위 없다.

 

성령으로 거듭난 증거는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기도의 능력이나 귀신을 쫓아내고 불치의 병의 치유하는 은사만 있는 게 아니다. 육체가 요구하는 탐욕과 방탕을 추구하는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인생관으로 바뀌어야 하며, 세속적이고 부족한 성품에서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런 증거가 없다면 성령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볼수 없다. 없다면 없는 것이고,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성품과 인생과 그리고 기도의 능력이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고, 없다면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회개하고 마음을 찢으며 간절하게 불쌍히 여김을 요청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그리 오래지 않아 성령의 내주를 경험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애타게 찾는 자녀들의 외침을 외면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지은이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