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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꿈꾸는 교회

Joyfule 2015. 2. 19. 18:53

 우리가 꿈꾸는 교회

 

 

필자가 엊그제 ‘무교회주의자들은 비성경적인가?’라는 칼럼에 댓글을 다신 분이 있어, 이 문제를 생각해보면서 필자가 꿈꾸는 교회란 무엇인가를 곱씹어보게 되었다. 그분의 주장은 무교회주의는 썩은 물의 나쁜 기억 때문에 물을 안 먹기로 결정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교회에 가지 않고 자유스럽게, 자의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행위는 예수님의 몸에 접붙임을 부정하는 비성경적이라는 투의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그분이 우려하시는 것과 다르게, 필자는 무교회주의자는 아니다. 단지 교회라는 정의에 대해 작금의 우리네 교회의 크리스천들과 생각이 좀 다를 뿐이다.

 

그분이 말하는 교회란 십자가와 교회간판이 붙은 건물이 있고, 그 종교건물을 중심으로 모여 예배의식과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는 교인들의 신앙방식을 전제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아무리 작금의 우리네 교회가 썩었다고 하더라도, 교회를 떠나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예수님의 몸에 붙어있는 가지를 부정하는 행위로 성경적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그게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모습인가? 기독교를 내세우는 종교건물을 중심으로 예배의식과 희생적인 신앙방식을 추구하는 크리스천이 모여 있어야, 그게 성경적인 교회가 된다는 말인가? 물론 그런 방식도 교회일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진정으로 교회다우려면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방식을 추구하여야 할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종교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무리들의 공동체(헬라어인 ‘에클레시아’의 번역)를 말한다. 그래서 이들이 서로 모여 말씀을 배우고 기도를 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필자는 결코 무교회주의자가 아니다. 필자도 성령이 사모하는 자들과 같이 모여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교회를 꿈꾼다. 그러나 교회의 신앙방식이 성경적이 아닌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꿈꾸는 교회에 대해 말해드리겠다.

 

필자가 꿈꾸는 교회는 가장 먼저 성령이 내주하여서 성령과 자신이 공동체를 먼저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동행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게 가장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내 안에, 내 영혼이 하나님 안에 있어서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영적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와 해박한 성경말씀을 바탕으로 하는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필자가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을 실시하는 사역을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아무리 웅장한 대형교회건물을 세우고 수많은 사람들이 멋드러진 예배의식을 거행하더라도, 그들의 마음 안에 성령이 내주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 기독교를 종교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집회일 뿐이다.

 

두 번째 필자가 꿈꾸는 교회는 가정중심을 신앙을 추구하는 교회이다. 다시 말하자면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무리들이다. 그렇다면 서너명 이상의 가족들이 모여 있다면 훌륭한 교회가 아닌가? 꼭 교단 소속을 밝힌 교회 간판이 붙어있는 교회건물에 모여 있어야 교회가 되는가? 그렇다면 구약의 성경위인들은 교회를 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 야곱의 12아들들은 정처 없이 신선한 풀을 쫓아 양떼를 몰고 다니는 목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작금의 우리네 교회의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죄다 성경의 탁월한 위인이 되었다. 초대교회를 살펴보자. 사도들과 제자들은 박해를 피해 고향을 등지고 뿔뿔이 흩어져서, 가정에서 은밀하여 모여 예배의식을 거행하고 교제를 나누었다. 이들이 바로 가정중심의 신앙방식을 추구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우리네 교회는 가정중심의 신앙은 없다. 모든 신앙행위를 멀리 떨어진 교회건물에 모여서 해야 한다. 예배의식은 말할 것도 없이 기도회나 교회봉사 등, 모든 신앙행위가 교회 건물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건물에 모여야만 기도할 수 있다면 항상 기도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성경의 명령을 따를 수 있겠으며, 일상의 삶에서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예배의 삶을 살 수 있겠는가? 백번 양보해서 지금 교회의 신앙방식으로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고 있다면, 이렇게 양들이 주리고 목말라서 핍절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영적 침체가 가속화 되는 작금의 우리네 교회가 이상하지 않은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에 이런 희한한 현상이 벌어질 수 있는가? 그 이유는 우리네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자를 양육하는 교회가 아니라, 형식적인 종교행위를 반복하고 교회 외형만 키우고 헌금에만 눈독을 들이는 삯꾼목자들이 있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교회에는 더 이상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으며 양들의 마음에 기쁨과 평안과 자유함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래서 교회건물 중심의 신앙방식이 아니라 가정 중심의 신앙방식을 세워야 한다. 가정은 매일처럼 식구들이 마주앉아 세상의 피로를 씻고 행복을 누리는 곳이다. 그래서 그곳에서 가장이 자녀들은 말씀으로 가르치며 양육하고, 틈만 나면 가족들이 모두 모여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을 추구할 수 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예배의식을 통해 찬양과 경배를 할 수 있다면 더 없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아닌가? 그런데 10~20분 기도하려고 새벽처럼 일어나 집에서 멀리 떨어진 교회에 가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여야 하며, 툭하면 거대한 교회조직을 운영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유지하느라 파김치가 되어야 하는 우리네 교인들이 불쌍하기만 하다. 그러면서 정작 하나님과 개인적은 깊고 친밀하게 만나는 교제의 기도를 잊고 있다. 그래서 가정중심의 신앙방식을 주축으로 하여 교회를 세우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시간낭비,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세 번째는 소그룹 중심의 교회를 세워야 한다. 작금의 우리네 교회는 예수님이 원하는 제자를 양육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교인을 대량사육하는 시스템을 유지하기위한 대형건물과 예배의식, 교육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강의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목숨까지도 바치는 제자를 양육할 수 없다. 일주일에 한번 예배의식에 참여하여 헌금을 내는 교인들만 양산할 따름이다. 그래서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이 내주하는 자녀들이 소그룹으로 모여 양육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교회를 지향해야 한다. 당신이 이런 교회에 다닌다면 훌륭한 교회인 것이다.

 

필자는 홀로 떠돌아다니는 무교회주의를 찬성하지 않는다. 먼저 하나님과 공동체를 이루고, 식구들이 교인이 되는 가정중심의 교회를 이루고, 그런 사람들이 소그룹으로 모여 격려하고 위로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교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떻게 필자가 무교회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