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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금송아지는 무엇인가?

Joyfule 2018. 2. 4. 08:49

 

 

 당신의 금송아지는 무엇인가?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경악하고 기이한 사건들을 수도 없이 접하게 된다. 기적과 이적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해하지 못할 상황도 적지 않게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신기하고 기묘한 일도 여러 번 접하면 심드렁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두 번, 세 번 읽게 되면 마음에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래서 성경읽기가 흥미가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오늘은 그 중에서도 오랫동안 이해가 되지 않았던 사건을 찾아서 그 실마리를 풀어보도록 하겠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32:1~10)

 

위의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기묘한 행동을 기술하고 있다. 모세의 인도로 10가지 재앙을 애굽왕 바로에게 쏟아 부어, 무려 200만 명(성인남자만 60만 명)에 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여정을 출발하였다. 그러나 바로는 끝내 그들을 보내주지 않으려고 용맹한 전차병들을 보내었지만,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는 기가 막힌 기적을 연출하면서 애굽의 병사들을 바다에 수장시켜버렸다. 그래서 이 드라마틱한 사건은, 훗날 영화로 찍어서 많은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어디 그뿐인가? 그들은 날마다 하늘의 양식인 만나를 먹었으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눈으로 보고 살았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압권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러 간 사이에 일어났다.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기슭에 서 있는데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여호와께서 시내 산 곧 그 산 꼭대기에 강림하시고 모세를 그리로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경고하라 백성이 밀고 들어와 나 여호와에게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또 여호와에게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에게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산 주위에 경계를 세워 산을 거룩하게 하라 하셨사온즉 백성이 시내 산에 오르지 못하리이다(19:16~23)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우레와 번개, 그리고 빽빽한 구름과 함께 연기가 떠오르고 온산이 진동하며 큰 나팔소리가 들려서, 그들은 죄다 극한 공포심으로 오금이 저리고 떨리는 두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서 산으로 올라가서 직접 계명을 받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아마 그들은 이 기막힌 광경에 너무도 두렵고 떨려서 말조차 나오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기가 막힌 상황은 그 뒤에 일어난다. 오늘 읽은 본문말씀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의 기이한 행동이다. 모세가 산에서 더디 내려오자, 그들은 자신들의 금 장신구를 빼내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그 우상에게 절하고 뛰놀며 춤추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그동안 천지를 지으시고 놀라운 기적과 이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신 하나님을 목격하고도, 어떻게 자신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그것이 그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절을 하고 춤을 추며 뛰놀 수 있겠는가? 얼마 전에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드러내신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도, 자신들이 직접 우상을 만들어서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절할 수 있겠는가? 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킬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이한 행동을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동안 보아온 하나님을 거절하고 새로운 하나님을 만들었을까?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이 바로 애굽에서 이끌어낸 하나님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신이 아니라, 자신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요셉이 섬기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들이 원하는 하나님을 만들고 있다는 데 있다. 자신들이 꿈꾸는 하나님, 자신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하나님, 즉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하나님을 만들어서 경배하고 환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이들의 패역한 행위를 진노하시면서 몰살시키고 싶어 하시지만, 모세의 간곡한 만류로 분노를 거두신다. 그러나 이 백성들은 광야에서 죽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음은 물론이고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말하자면 지옥의 불에 던져진 것이다. 그래서 후세사람들은 어리석고 미련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조롱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떠한가? 자신만의 하나님을 만들어서 절하고 경배하며 섬기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오늘은 우리네 교회에서 자행하고 있는 금송아지에 대해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번영신학과 기복신앙의 하나님

번영신학의 사전적인 정의는, 하나님을 믿으면 복이 따라서 성공과 번성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신학사상이다. 또한 기복신앙은 복 받기를 기원하는 신앙이다. 번영신학과 기복신앙의 공통점은 성공과 부를 염원하는 세속적인 축복을 소망한다는 것이다. 우리네 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전도 캐치프레이즈를 살펴보자.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가 아닌가? 그렇다면 그 복이 무엇인가? 바로 번영신학과 기복신앙에서 말하는 세상에서 잘되고 부자가 되는 세속적인 복이다. 그래서 교회에 발을 디딘 사람들의 목적은 천국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세상에서 잘되고 부자가 되는 세속적인 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하나님을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성경적인 축복을 말씀하시는 산상수훈의 예수님의 팔복을 살펴보라. 어디 세상과 세상의 축복을 말하는, 세속적인 복에 관해 한 마디라도 하셨는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축복의 본질은, 세상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되는 영혼의 축복을 말씀하고 계시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1분짜리 영접기도를 마치면 천국의 자격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영혼이 잘되는 축복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일성수와 십일조, 새벽기도 등의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통해 세속적인 축복을 바라마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신앙관은 목회자들로부터 들어왔던 것이다. 대다수의 목회자 역시 목회의 목적이 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어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목회성공에 있다. 급성장한 대형교회의 설교를 들어보라. 세속적인 축복과 덕담, 감성을 자극하는 위로와 격려가 넘쳐나고 있다. 그래서 교인들은 이런 설교를 들으며 큰소리로 아멘하며, 눈물을 글썽이며 은혜 받았다고 다투어 말하고 있다. 물론 성경에는 우리가 세상에서 필요한 물질에 대한 공급을 약속하셨지만, 이는 영혼의 축복을 얻는 믿음의 수혜자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오직 세상에서 잘되고 부자가 되는 하나님만이 필요할 뿐이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7~10)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1~33)

 

성경은 돈을 사랑하고 부를 추구하는 세속적인 마음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세속적인 생각을 넣어주는 이가 누구인가? 바로 맘몬의 영이자 미혹의 영인 귀신들이다. 맘몬의 영은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하여 죄를 짓게 하는 귀신의 별명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네 교회는 번영신학과 기복신앙이 판을 치고 있다. 이는 맘몬의 영이 목회자와 교인들의 머리를 타고 앉아 세속적인 축복으로 유혹하여 죄다 이에 넘어가 죄를 짓고 있다. 이런 모습은 자신들이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이 만든 금송아지 하나님을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율법적이며 종교적인 하나님

 

모든 교회는 종교적 헌신을 매우 강조한다. 그래서 신앙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 독실한 신앙인들은 자기 삶의 상당부분을 교회활동에 바친다. 주일성수를 비롯한 각종 예배의식의 참여, 십일조, 새벽기도회, 각종 교회봉사, 수련회 등 교회에서 요구하는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고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그런 사람의 대표적인 표본이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다. 이들은 성경을 암송하고, 십일조와 하루 세 번의 기도, 600여 가지가 넘는 율법의 조항들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행해 독사(귀신)의 새끼라고 독설을 날리며, 이들이 교인 한 사람을 만나면 배가 지옥자식을 만든다고 저주하셨다. 그들이 지옥의 불길에 던져졌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독설과 저주를 받아야 했을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통해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만족시키고 자신의 의를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성품인 사랑, 자비, 불쌍히 여김, 오래 참음, 용서, 배려, 친절, 너그러움, 공평, 의로움 등의 성품을 요구하고 계시다. 그러나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그런 성품이 아니라 고집, 오만, 교만, 독선, 자기의, 자기자랑에 빠지게 된다. 물론 겉으로는 겸손한 척, 경건한 척 교묘하게 포장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속내와 동기와 목적을 날카롭게 살펴보시는 분이시다. 예전에 성령께서 종교주의자들은 자기만족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열정적인 행위를 알아주지 않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도리어 힐난당하고 비난당하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분노가 치솟고 억울해하며 울화통이 터져서 견딜 수 없어하기 일쑤이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4:3,4)

 

예전에 성령께서 귀신이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 교만하고, 고집이 세며, 자기중심적이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고 말씀하셨다. 자기중심적이고 고집이 센 사람이 바로 교만한 성품의 소유자이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옳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모든 신앙의 행위들은, 오직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죽음으로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받게 되는 길을 열어주셨다는 것에 무한 감사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혹의 영은 이러한 종교행위들조차,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내 중심으로 교묘하게 비틀어서 넣어주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교회직분이 높고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었으며,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이기적이고 독선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성품으로 변질되는 이유이다.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17:7~10)

 

위의 구절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종의 태도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계시다. 이 종은 하루 종일 땡볕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해가 져서 집에 돌아왔지만, 인정머리 없는 주인은 그에게 저녁을 짓고 다 먹을 때까지 수발을 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종은 군소리 없이 즉각 명령에 순종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무익한 종이라는 극도의 겸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종의 태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녀의 모습이다. 우리는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를 때 주님 주님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피조물이자 하찮은 종임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소원을 들어주고, 부와 명예를 누리게 하주고, 지난한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하나님만을 만들고 예배하며 경배하고 있다면, 당신은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수많은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한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고, 당신이 세상에 살고 있는 지조차 모르고 계실 것이 뻔하다. 이렇게 성경을 열심히 읽고 교회문턱을 닳도록 다녀도 여전히 성경에서 명령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들어오시고 동행하시며 그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