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더러는 좋은 땅이 있더라

Joyfule 2023. 6. 9. 05:27





     더러는 좋은 땅이 있더라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욕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마13장8-9절)

 

하나님의 말씀은 씨로 우리의 심령에 뿌려져서

생명의 양식이 되었다가 보화로 발전이 되어 갑니다.

말씀이 씨로 뿌려지고 양식이 될 때까지는 수동적이어서 은혜를 받는다고

말하는 단계이고 자신의 보화가 되는 순간부터 능동적으로 진리를 따라 침노하게 됩니다.

이를 테면 주님이 복이 되면(마5장) 주기도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생활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지고(마6장)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나아가 그리스도와

동업이 이루어져 반석 위에 집을 짓는 복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입니다(마7장)

여호와이신 구원의 하나님께서 예수로 오셔서 아담의 대표로서

우리의 죄를 몽땅 처리하고 보좌에 앉으신 후에 그리스도로 임하시므로

예수의 십자가의 효력이 하나님의 아들들 속에 나타나서 드디어 말씀의 씨가

스며드는 좋은 마음의 땅이 되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하게 됩니다.

더러는 좋은 땅이 있어 말씀이 스며들어 겨자씨처럼 자라고

누룩과 같이 부풀어 양식이 되므로 제자가 된 서기관이 되어 그 곳간에서

옛 것과 새 것을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이 말씀을 전파하는 이가 있습니다(마13:52)

 

물론 이런 마음의 땅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 다가 아니고 더러 있을 뿐입니다.

길 가 밭은 말씀을 깨닫지 못하므로 새 들이 먹어 치웁니다(마13:4)

돌밭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으나 속에 뿌리가 없습니다(마13:5)

가시떨기 밭은 말씀을 받아 자라기는 하지만 가시 눌려 질식하고 맙니다(마13:7)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씨가 으깨어지지 않은 것과 같아서

썩은 씨는 먹지 않고 씨를 통째로 먹는 새가 와서 날름 삼키고 맙니다.

따라서 길 가의 밭은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는 마음의 땅입니다.

씨가 돌밭에 뿌려지는 경우에는 씨가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음은 있으나 자기의 것으로 화합이 안 됩니다(히4:2)

말씀을 듣거나 읽고 아 그렇구나 하고 맙니다, 남의 이야기이며 성경속의 이야기입니다.

자기의 것 하고는 상관이 없죠.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가시 떨기 위에 떨어진 씨는 생활화가 안 됩니다.

자기 속에는 들어 와 있으나 생활이 안 되는 마음의 땅입니다.

생활이 잘 될 때는 재리의 유혹이 오고 안 될 때는 세상의 염려가 와서

이 둘 때문에 말씀이 생활화 되지 않습니다.

 

오리에 하나 십리에 하나 또는 성읍에 하나 도시에 둘이 있어

더러 있는 옥토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뿌리를 내려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듣고 믿어 따르는 세례로 그와 합하여 죽고

다시 살아나므로 거듭난 좋은 땅이 되어 말씀이 결실화 되어 갑니다.

그 다음 100, 60, 30배로 생산 하게 됩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열매는 그 마음 곳간에서 나오는 입술의 말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심령에 떨어져 결실이 되는데 까지는 오직 수동이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열매 맺는 것은 능동입니다.

헬라어의 동사에 수동태, 중간태, 능동태가 있듯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오고 그 다음에는 그 말씀으로 살고

그 말씀에 의해 행동하며 그 말씀을 따라 천국을 침노하며 남에게 전파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복이 되고 이 복이 행복이 되어야 합니다.

어제는 한 전도사님이 이제 나는 행복하다는 걸 느끼게 됐다고 말을 하더라고요.

바로 말씀의 씨를 받아 소화흡수가 되어 삶이 되는 고백과 찬양을 하고 있는 겁니다.

씨를 그대로 두면 언제나 씨일 뿐입니다. 성경은 백점이지만 나는 빵점입니다.

이 씨를 열매화 시켜야 복이 됩니다.

그리고 이 열매를 다시 증거해서 재생산을 해 봐야 행복이 됩니다.

어떤 사람이 돈을 열심히 벌어 노름판에 가서 다 잃었다고 한다면

이는 그 돈이 그의 복이 되지 못한 것일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복의 원료인데 이 복을 나의 것으로 만들면 행복이 됩니다

그렇다고 돈을 벌어 통장에 넣어두고 그 걸 들여다보고 즐거워하는 건

복을 누릴 줄 모르는 것이듯 천국은 이 복을 누리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목이 터져라 찬양을 하는 영광의 찬송이 되어 가고 있지 않아요?

 

성경은 분명한 방법과 절차와 과정에 대한 논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누룩은 효소로서 입자를 분해하므로 세포분열이 되어

발효가 되는 과정이 있습니다. 밀로 된 누룩과 밥을 섞어 놓으면 술이 되죠.

그런데 천국을 누룩으로 비유하시는 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부풀어 천국화 되고 있느냐 하고 물으시는 겁니다.

교회의 모델로 세워진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처럼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

밖으로 흘러넘치는 마음의 땅이 되어 있는 것일까 묻고 싶은 겁니다.

기독교의 확장이 로마를 정복하고 결국 로마는 멸망했습니다.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 즉 떡덩이도 거룩하고

뿌리가 거룩한 즉 가지도 그러합니다(롬11:16)

술맛은 누룩 맛에서 나옵니다. 빵 맛도 사실 밀가루에 있기도 하지만 누룩 맛에 달렸습니다.

우리 가운데 뿌려진 말씀의 씨는 거룩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럼에도 왜 거룩이 결실하고 충만해서 넘치지 않을까요?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지 않고 예수만 믿으니

더러 있는 좋은 땅이 되지 않는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지상사역을 하신 예수는 아담의 대표였지만 지금 보좌에 앉아서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대표임을 잊지 마세요.

되지 않은 마음의 땅을 가지고 다니엘 기도를 한들 일천번제를 드린들

다니엘의 신앙이 되어 지고 솔로몬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돌아서면 까 먹히고 아멘 할렐루야 하고 그만이어서 개구리 낯짝에 물 끼얹기죠.

재리의 유혹과 세상의 염려에 묻혀 끙끙대는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것뿐입니다.

부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짊어지므로 성령의 감동이 살아 있어

그리스도께서 살아 역사하시는 좋은 땅이 되어 새 부대에 담겨진

새 포도주처럼 말씀이 잘 부풀고 가득하게 되어 그 마음의 곳간에서

말씀이 줄줄 흘러나오는 제자가 된 천국의 나팔들이 되어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