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우의 햇볕같은 이야기
두 눈으로
성경을 볼 때는 두 눈으로 봐야 합니다.
어느 한 쪽 눈으로만 보면 균형을 잃고 치우쳐서 쓰러집니다.
물론 한쪽 눈으로 봐도 사물은 잘 보입니다.
그러나 잘 보인다는 것은 나의 착각이고 실제로는 한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습니다.
①상황론(狀況論)이라는 눈으로
믿음 좋은 사람이 하나님을 더 깊이 배우겠다고 설레는 마음으로
신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시작 하면서 가장 크게 놀라는 것은
‘모세 오경을 모세가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입니다.
구약 모세오경은 모세가 죽은 후 약 1천년 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
에스라’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사본들과 전승되어 내려온 구전들을
‘책(두루무리)’형태로 편집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에스라가 모세의 전기를 쓴 것이지요.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모세가 쓴 것도 아니고 안 쓴 것도 아닙니다.’입니다.
상황론은 왜 성경이 그때 그렇게
쓰여졌는지 객관적인 증거들과 그 배경을 아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상황론에 빠지면 역사책이 되면서 상황분석으로 흘러
오늘날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책이 되고 맙니다.
신학교에서는 열심히 성경을 상황분석하여 그것으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땁니다.
②존재론(存在論)이라는 눈으로
성경이 성경인 것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는 ‘존재론적’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기록은 역사를 뛰어 넘는
존재론적, 철학적, 신비론적인 놀라운 의미가 숨어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으로 나와 dnfl, 현 시대와 미래를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존재론에만 머물면
논리도 근거도 없는 ‘토정비결’같은 책이 되고 맙니다.
성경구절을 아무데나 자기 맘대로 갖다 붙여서
원래 성경이 의도하는 뜻과는 거리가 먼 엉뚱한 해석을 하게 됩니다.
잘 들어보면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그 본 뜻과 상관없는
뚱딴지같은 설교를 하는 분들이 엄청 많습니다.
성경을 볼 때는 상황론이라는 눈과 존재론이라는 눈 -두 눈으로
균형을 맞추어 가면서 봐야 합니다. 그래야 안 쓰러집니다. ⓒ최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