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레터
영화 속에 나타난 일본의 정서- 잔잔함과 잔인함의 공존(글: 제4막)
벚꽃이 원래 화들짝 피었다가 우루루 지는데 일본인들의 성격을 반영한 것이라 한다. 뭐든 집단최면에 걸리기만 하면 못할 게 없는 종족 또한 일본이다. 일장기가 뚝 피 한 방울 떨어진 모양새인데 여기에서도 일인의 섬찍한 비장미를 느낀다.
수년 전 일본 영화가 개방되면서 일본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일본 영화 한 편 이상은 보았지 싶은데 나 자신 그다지 일본영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비디오를 통해 본 몇 편의 영화에서 느낀 감상을 토대로 아마추어적 비평 흉내를 내본다.
우선 일본 영화에는 왜 그렇게 자주 꽃이나 눈, 해바라기, 국화 같은 자연물과 죽음이 연관되어 있는지 곰곰 생각해 보았다. 도대체 일본 영화에는 왜 그토록 자주 자연의 맨 얼굴에다 그리움의 미학을 가져다 대고 죽음으로의 결말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일까?
일본에서는 수백 만의 관객이 들었다던 <실낙원>의 마지막은 불륜관계를 맺었던 야쿠쇼 코지와 그의 애인이 자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가 한국에서 심혜진, 이영하 주연으로 리메이크되자 우리 관객들은 "아니. 죽긴 왜 죽어? 꼭 그렇게 죽어야 되나"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고 한다.
<철도원>은 눈물샘을 자극하면서 내달리는 일본 장인 정신의 구현이다. 평생 눈발이 날리는 호로마이 역을 지키는 이 사내 오토는 아이가 아파도, 아내가 병원에서 죽어가도, 기차 하나만 바라보고 산다. 그는 철도시간에 맞추느라 딸과 아내의 죽음조차 보지 못했다. 철도부의 관리로 입신하여 이제는 스키장에 취직하게 된 동료 스기우라와 달리 오토의 삶은 너무나 적적하고 괴괴하기만 하다.
이러한 오토의 정서는 와비와 사비라는 일본의 전통적인 미학과도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다. 와비와 사비는 힘 빠지고 쓸쓸한 아름다움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전통적인 정서를 말한다. 오토는 삶의 한 켠에서 완전히 비켜난 여백 같은 존재이다. 보잘것없는 영락과 한적함 속에서도 깊은 풍성함을 느끼는 사비의 미학과 가난함과 부족함 가운데서도 마음의 충족을 이끌어 내는 와비의 미학은 젊은 청년이었던
오토가 반백의 노년으로 속세를 초월하여 기차를 쓸쓸히 기다리는 삶과도 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러브레터>와 <철도원>의 포스터는 첫눈에 봐도 아주 비슷한 구석이 있다.
<러브레터>의 포스터는 주인공 와타나베 히로코의 얼굴을 큼지막하게 클로즈업 시킨 것인데 흰 눈을 맞으며 허공의 하늘을 응시하는 와타나베의 얼굴에는 흰 눈이 송이송이 내리고 검은 옷의 와타나베와 흰눈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철도원>의 포스터도 마찬가진데 검은 제복의 오토는 하늘을 향해 넋이 나간 듯한 시선을 보내고 그 빈 하늘에는 하염없이 눈만 쏟아진다. 각도와 배경 의상까지도 거의 유사한 이 두 개의 사진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철도원>과 <러브레터>의 정조는 결국 죽은 사람을 잊지 못하는 자의 비애, 대상 부재의 그리움, 그리고 기억의 회한들이 갖는 슬픔이다. 산에 가서 죽은 애인을 못 잊는 여자, 러브레터의 정한은 이루지 못한 사랑의 비가, 다시는 돌려질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의 부재를 극한까지 밀어올린 그리움의 송가이다. 이때의 그리움의 극한은 죽음을 넘어서는 기억이요, 그것이 극한으로 치닫게 되면 결국 그 그리움의 대상 자체가 없어지는 역설이 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주인공 와타나베 히로코가 연인이 죽은 겨울 산에서 '오겡끼 데쓰카'를 부르짖는 장면은 두말할 것 없이 러브레터의 모든 것이기도 하다. 모노노아와레를 구현하는 <철도원>과 <러브레터>의 끝은 결국 눈과 벚꽃으로 회귀된다. <철도원>에서 젊은 시절을 회상하던 오토는 사내 분규로 기차의 운행이 중단되었던 봄을 기억해낸다. 노조로 인한 파업이 단행되자 오토와 스기우라는 어떤 일이 있어도 열차 운행은 지속되어야 한다며 단결이라는 붉은 띠를 머리에 매고 끝까지 열차를 지켜낸다. 이때 흩날리는 벚꽃 송이들로 인해 일본식 집단주의와 시각적 나르시즘이 극대화된다.
이 장면에서 기관사 오토의 짧은 봄을 상징하는 이 벚꽃과 죽은 아내와 아이를 상징하는 눈은 그리움과 아쉬움이라는 동일한 정서를 상징하는 것 같다. 반면 <러브레터>의 눈은 녹아 없어지면 그뿐인 그리움의 기억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산에 묻고 온 와타나베 히로코는 눈밭에서 일어 날 줄 모른다. <러브레터>의 시작과 끝은 한 소년과 한 소녀가 동시에 중첩된 공간과 시간들을 연결해주는 순백의 기억, 즉 눈이다. 이제 히로코의 죽은 연인 후지이 이츠키(남)는 오따루의 또 다른 여성 후지이 이츠키(여)의 기억 속에서 환생한다. 낯선 이로부터 온 편지를 통해 한 여성은 죽은 이가 남긴 소외의 공간을 극복하게 되고 또 한 여성은 자기속에 감추어졌던 기억의 색깔을 되찾게 된다.
'한'이라는 우리의 정서를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들 듯 일본 영화속의 와비나 사비 모노노와레 역시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힘들 것 같다.
확실히 <서편제>로 대표되는 우리 한의 감정은 격한 분노와 우울의 간단없는 뒤섞임이라면 일본인의 정서는 때론 더없이 잔인하고 폭발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렇게 잔잔하고 미동도 없는 쓸쓸함을 감추고 있지 않은가? <러브레터>의 센티멘털리즘은 <철도원>의 신파는 너무나 깨끗한 거의 투명에 가까운 순백이라 어떤 흠집도 용납하지 않는다.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의 지극한 감성으로 일본의 미학적 감수성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잔상을 자연물들 안에서 남기며 공명하고 있다. (2001년 4월 15일)
'━━ 감성을 위한 ━━ >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세이돈 어드벤쳐(1972) (0) | 2017.10.23 |
---|---|
클라라 (0) | 2017.10.21 |
나의 청춘 마리안느(Marianne de ma Jeunesse) (0) | 2017.10.19 |
지상에서 영원으로 (0) | 2017.09.18 |
늑대와 춤을 / Dances With Wolves 리뷰(역사) (0) | 2017.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