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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시 - 문주생

Joyfule 2013. 4. 16. 09:01

 

  마음의 시 - 문주생

 

밖의 은행잎이 하나 둘 떨어지던 날, 한 권의 시집을 받았다. 얼마전 인사동에서 만난 최 시인이보낸 것인데 그의 모습이 물방울무늬로 만든 책표지에 어른거린다. 가을이라 그런지 시들은 가슴을 파고드는 데가 있다. 그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절절한 외로움과 아픔을 "서울로 서울로" 띄운 것들이다. 나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 시집을 끝까지 읽었다. 감동이 진한 몇몇 작품들은 표시를 해두었다가 밤에 다시 읊어보고 노트에 옮겼다.

 

늘상 독서의 유익함을 느끼고 있지만 시집도 기쁨을 주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깊어 가는 밤, 우주와 자연이 들어 있고 사랑과 슬픔이 깔린 시편들을 대하다보면, 나는 어느새 시인과 한마음이 된다. 가슴에 와 닿는 시를 두 번 세 번 외워보다가 자연스레 그런 시를 옮겨놓곤 한다. 나는 이 노트의 제목을 "마음의 시" 라고 붙여 보았다. 칠팔 년 전부터 시를 적기 시작했는데 백 편을 훨씬 넘어섰다. 즐거울 때보다는 괴롭고 우울할 때 이 노트를 자주 펼치게 된다. 여고시절, 우리들에겐 저마다 한 권의 시 노트가 있었다.

 

대부분 국어교과서에서 시작하여 소월, 목월, 천명, 지훈, 윤동주, 박두진, 김광균, 유치환 등을 비롯보들레르, 릴케 같은 이들의 시들로 채워져 나갔다. 욕심 많은 아이도, 화를 잘 내던 아이도 시를 베끼는 시간에는 마음이 비단 같았다. 한사람이 어디선가 좋은 시를 가져오면, 친구들은 너도 나도 그것을 자신의 시 노트에 옮겨 놓았다. 그것의 부피가 커질수록 우리들은 보화를 키우는 듯 흐믓한 마음이었다. 또한 그 시를 통하여 정서와 낭만을 키우면서 미래의 세계로 조금씩 발돋음 하고 있었다. 그 노트는 일기장 다음으로 소중한 것이었다. 저마다 단장하는 일에 마음을 쓰곤 했는데 페이지마다 꽃잎과 낙엽으로 장식하고, 더러는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하였다.

 

나는 국어 시간이 기다려졌다. 선생님이 한 편의 소설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좋았지만 직접 골라온 시를 칠판에 써놓고 낭랑하게 읊어줄 때가 더욱 즐거웠다. 그 시에 취한 기분이었다. 그때 아이들은 숨을 죽인 듯 하였고 두 눈은 저마다 빛이 났었다. 사춘기에는 누구나 그렇듯, 장래 시인이 되리란 꿈을 꾸어본 시절이었기에 어줍잖은 시를 끄적이고 백일장에도 한두 번 참가해 보았다.

세월이 흐른 요즈음, 윤동주의 "별헤는 밤"과 릴케의 "가을의 기도"를 낭독하던 여선생님을 뵐 때가 있다. 또 김광섭의 "설야"를 지그시 눈감고 읊어주던 남선생님을 뵙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옛 시절을 회상하면서 세월의 아쉬움을 느낀다. 그 분들의 젊은 목소리는 여전히 내 가슴속에 살아있으나 세월에 많이 변하셨다. 제자인 나도 어느덧 불혹이 되었으니 말해서 무엇하랴. 그처럼 소중하게 아끼던 시노트는 어디로 간 것일까. 애송하던 소월, 릴케의 시집들은 지금껏 간직해 왔으나 노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가끔 눈에 띄는 것이 그 시절 이후에 적어 놓은 시들이다.

 

그 시절엔 성숙하지 못한 감성이었기에 서정이 짙은 시라면 뭐든지 좋아했다. 고향, 자연, 사랑이 담기 시들을 한 줄 한 줄 외워보는 마음이 얼마나 순수했던가. 목월의 "나그네"를 읊을 때엔, 그림 같은 시골 풍경에다 나를 세워 놓는 상상에 빠졌었다. 지금 생각하면 소녀와 나그네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또한 윤동주의 "소년"을 외우다 보면 내가 그리던 남학생의 환영을 보는 것 같아 자주 감상에 젖어 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십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서정에 얽매이지 않고, 이지적인 것도 관념적인 것도 수용한다. 인생을 노래한 시,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시, 현실의 고달픔을 읊은 시에서 감동하고 위로를 받는다. 다만 감정에 녹이 슬고, 그 시절처럼 외울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소녀 때 소망했던 시인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다행인지 모른다. 이 나라엔 시인들이 모래알처럼 많아서 하루에도 많은 시집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누구의 시집을 고를까 한참이나 망설이게 한다.

 

시에 생명을 건 시인의 작품을 읽을 때면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재질도 없는 내가 시를 쓴다면 누가 읽어 줄 것인가. 이제 나는 중년이 되어 수필을 쓴다. 그저 좋아서 시작했지만 재주가 없음은 수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원고지 칸을 메꾸는 것이 긴 강을 건너는 것처럼 아스라하고, 절벽을 오르는 것처럼 고통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 날은 나도 모르게 시 노트를 열어본다. 시에서 위로를 받음은 물론이거니와 한 편의 짧은 시를 얻기 위해 피를 말리는 시인의 고통을 헤아리게 되고, 수필을쓰는 마음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자성해 보기도 한다. 어느 연극에서인가, 작가인 주인공의 독백이 잊혀지질 않는다. 글을 쓰는 이유는 자신의 짐을 덜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어쩌면 나도 삶의 짐을 덜기 위하여 붓을 잡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수필을 넋두리로 채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소망을 안고 있다. 시처럼 정밀하게, 깔끔하게, 아름답게 써보려는 꿈이다. 하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절망할 때가 많다. 그런 작품이 나오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내야 할까.

 

수필가. 전북김제출신. 한국수필로 등단. 수필집 '듣고싶은  풍금소리'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