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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단상 - 이기숙

Joyfule 2013. 4. 18. 09:28

   지하철 단상 - 이기숙

 

 

지하철이란 교통 수단의 단골 손님이다.
버스로 한 30분 타고 송정역으로 간다. 지하철을 타는 시간도 서울 어디를 가던지 최소 한 시간은 걸린다.
그동안 서울 강북에서 주로 살았으니 갖가지 모임이 주로 강북에서 이루어진다.
친척집 일이나 남편과 동행하는 모임에는 자가용으로 간다. 직장동료 모임, 친구 모임 , 문인 활동 등 나 혼자 움직이는 일에는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두 시간 이상 걸려서 갈 때도 종종 있다. 길에다 버려야 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세월 서울에서 한 평의 마당도 없는 빌딩의 일층에서 살았다. 버스가 다니고 땅 밑으로는 지하철이 다니는 대로변에 있는 집이라 문 한 번 열어놓지 못하고 살았다.
소음과 공해 속에서 살아온 세월이었다. 방과 거살겸 주방 뿐 베란다 하나 없는 집에서 말이다. 자식들 성장해 결혼하고 분가하니 남편과 나, 단 둘이 남아. 공기좋고 한적한 곳으로 가 숨을 좀 쉬면서 살고 싶었다. 그래 서울을 떠나 이사한 곳이 인천 서구 불로동이다.

문인이란 꼬리표가 붙고나니 간간히 날아드는 문학잡지와 수필집, 시집을 다 읽어낼 시간이 없다. 그래 집을 나설때는 반드시 가방에 책 한권은 집어 넣는다. 경로석에 앉아 책을 보고 있노라면 수필 서너편 읽는 동안 어느새 종로 3가 혹은 동대문 운동장이다. 가끔은 갈아타야 하는 역을 놓치기도 하지만 이동하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음에 흐믓하다.

 

어느 날 이었다. 평소와 달리 지하철 속은 대 만원이었다. 빽빽이 들어선 승객들의 틈새에서 중심을 잡고 서 있었다. 경로석은 아예 기대도 못하고 일반석에서 '혹 누가 자리를 양보해 주지 않을 까'하고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 대부분은 '경로석이 따로 있는데 왜 우리 자리까지 양보를 해'라는 생각으로 꼼짝 않고 앉아있다. 앉아있는 승객 중 아직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았을 정도의 젊은 남녀가 눈에 띄었다. 그들의 뻔뻔함에 놀라지 않을 수없다. 자리 양보는 못 할지언정 얌전히 앉아 있으면 좋으련만...

쉬지않고 애정 행각을 벌이는데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망각하고 있다. 이 때 들어선 8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그들 앞에 와 서 계셨다. 아량곳 하지않고 있다. 보다 못한 옆에 앉은 아저씨 한 분
"야, 너희들 일어나 이 할아버지께 자리 양보해야 되잖아..."라고 호통을 친다.

그제야 비시시 일어나며 억지로 자리를 양보하는 그 들... 잠시 후 그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서서도 여전히 마주보며 허리를 감싸기도하고 궁둥이를 어루만지기도 하다니...

 

전철을 타면 간간히 만나는 행상이 있다. 껌을 팔아 달라는 할머니, 칫솔을 파는 아즘마, 장갑을 파는 아저씨, 우산을 파는 여인, 모자를 파는 남정네, 선풍기 덮게를 파는 사람, 볼펜, 명함집, 음악CD를 파는 신사까지 그 종류도 무궁무진이다. 유창한 말씨로 능수능란하게들 상 행위를 하고있다. 비교적 가격이 싸 많은 사람이 산다. 나도 가끔 살 때도 있다.

 

하루는 깔끔하고 고상하게 생긴 중년 여인이 까만 여행용 가방을 끌고 내가 탄 전철안으로 들어섰다.
문 입구 즉 경로석 앞에서 모기소리만 한 목소리로 손에든 것을 제대로 치켜 들지도 못한 채 "대일벤드 하나 팔아 주세요"
라고 한다.

왠지 안 쓰러워보여 얼른 하나 샀다. 내 옆에 노인도 산다고 하였다.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주고는, 그 여인은 두번 다시 팔아달라는 말도 없이 그냥 멍하니 서 있다. 보다못해
"아즘마 이거 치켜들고 대일밴드 하나 사시라고 외쳐요. 왜 이리 가만히 서 있기만해요?"
라고 부추겼다. 여전히 가만히 서 있는 것이다. 상기된 얼굴은 부끄러워 어쩔 줄 모름이 역역히 나타난다. 난 조금 큰 소리로
"이 아즘마 장사 처음 나오셨나 봐... 용기를 내요. 그냥 달라고 구걸하는 사람도 있는데... 얼마나 떳떳해..."
라고 했더니 주변에 앉았던 사람들이 너도 나도 하나씩 산다고 돈을 내 밀었다. 얼굴을 들지 못하고 물건을 내 주던 그 여인 두 눈에선 눈물이 글성이었다.
"아즘마 장사 처음 하시는구나... 힘내요... 힘, 살다보면 좋은 날 올 거야요..."
이를 악물로 눈물을 참던 여인 내 말 끝에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없어 두 눈을 가린다. 전철이 역에 서자 그는 도망치듯 내린다. 내다보니 가지도 못하고 벽에 기대어 울고 있다. '그래 싫것 울어라. 눈물을 흘릴만큼 흘려야 살아갈 용기가 생기지...' 하지만 알수 없는 그의 사연과 애처러움이 지워지지 않는다.

 

어디 그 뿐이랴.
"예수를 믿으세요 예수믿고 천당 갑시다,"
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려운 사연을 적은 종이를 돌려놓고 수금을 하러 다니는 사람, 사랑의 이웃돕기 기금이라며 성금을 요구하는 사람, 시력장애를 가진 맹인이 노래를 부르며 구걸 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하루는 다리가 전혀 없어 두꺼운 고무판에 몸을 올려놓고 기어다니는 장애인이 동정을 구한다. 국가에서 복지기금으로 생활비를 대 주어야할 중증 장애인이 왜 전철 안을 누비고다니는지 알 수가 없다. 요구하는 사람마다 다 줄 수는 없어 하루 두 번 정도 전철 요금낸다 생각하고 도와주기로했다.

 

요즈음 젊은이들 하나 같이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거나 핸폰으로 문자 메세지를 보내거나 게임을 한다. 책을 본다거나 공부를하는 사람은 눈 비집고 찾아봐도 없다.
중년 직장인들은 신문을 보기도 하지만 10대 20대 젊은이들은 거의 신문도 보지 않는다. 하루는 고1이나 2쯤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정신없이 독서를 하고있다. 그 모습이 하도 귀엽고 사랑스러워 메모지를 꺼내어 몇자 적어서 그에게 주었다.
"학생, 공부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라고 쓴 쪽지였다. 발그레 상기된 얼굴로 쳐다보며 고개를 까닥이며 인사를 한다. 웃음으로 말없이 답례하였다.

그 후 어느 날 경로석에 앉아 수필을 읽고 있었다. 읽고 있는 책위에 하얀 종이 쪽지 한 장이 놓여졌다. 깜짝놀라 쳐다보니 얼마 전 그 여학생이었다. 밝은 미소로 목례를 한다. 건내진 쪽지를 보았다.
"독서하시는 모습이 너무 존경스러워요."
"다음에 또 만나면 떡볶이 한 그릇 사 주세요. 인사 드리고 싶어요."
라고 쓰여 있었다. 미소지으며 그에게 답례를 하고는 내려야 할 역에 도착돼 말없이 헤어졌다.

언젠가 그 여학생을 다시 만나게 되면 같이 내려 맛있는 음식을 사 주리라...... 마음먹고 다니는 전철...... 아직은 전철을 이용할 수있는 건강에 감사하며 오늘도 책 한권을 집어 넣고 집을 나선다.

 

수필가. 한국수필로 등단 . 수필집 '애인이 생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