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잃은 소금.
마가복음9:50에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고 했습니다. 누가복음14:34-35에는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5:13에는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맛 잃은 소금'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소금은 바닷물을 정제한 소금이므로 맛을 잃은 소금도 없고 길 가에 버려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유대 지역은 다릅니다. 유대 남쪽에 소금 바다라는 의미로 '염해'(鹽海)라고 하기도 하고 죽은 바다라는 의미로 사해'(死海)라고 불리는 바다가 있습니다.
사방이 막혀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호수인데 남북의 길이가 80km나 되는 넓은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바다라고 합니다. 그 지역은 구약시대에 소알과 소돔과 고모라 등의 성읍이 있던 지역이었는데 지층이 갈라지고 화산이 폭발한 지역입니다. 그 재앙이 끝난 다음에는 그 지역이 내려앉아 해발 -400m나 낮아졌고 그 곳에 물이 고여 호수가 된 것입니다. 그 남쪽에는 거대한 소금 덩어리로 된 소금 산이 있는데 그 소금 산 밑으로는 지하 7-8km까지 거대한 소금 광산이 있습니다.
사방이 막혀 있어서 물이 계속 증발되는데다가 소금산과 소금광산이 녹아 소금의 농도가 33%나 되었습니다. 보통 바닷물의 소금 농도가 3.7%이니까 그에 비하여 9배나 됩니다. 소금이 더 이상 녹을 수 없는 포화상태입니다. 소금 끼가 너무 많아서 사람이 물에 들어가 누우면 둥둥 뜰 정도입니다. 그래서 생물이 전혀 살 수 없어서 아무 생물도 살지 않습니다. 당시 유대 지역에서는 우리같이 정제된 소금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바로 사해 남쪽에 있는 산에서 캔 소금 돌(鹽石)을 시장에서 사다가 소금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금 돌은 산에서 캔 것이기 때문에 나트륨(Nacl)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그 소금 돌을 사다가 밤새도록 물에 담가 두었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면 소금만 우려 나와 소금물이 되었는데 그 소금물로 음식을 요리하는데 사용했습니다. 그 소금 돌이 며칠 지나면 소금 성분이 완전히 다 빠져 나와서 짠 맛이 전혀 없는 돌 덩어리만 남게 되었는데 그 돌은 밖에 버렸습니다. 그러기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가 과거에 조개껍질이나 연탄재를 길에 버리면 사람들이 밟고 다니듯이 사람들이 밟고 다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돌을 지붕에 뿌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유대 지붕은 평평했는데 그 지붕의 흙 위에 그것을 뿌렸습니다. 그러면 지붕의 흙이 단단해지고 지붕에 샐 수 있는 구멍들이 생기지 않게 됩니다. 당시 지붕은 사람들이 기도도 하고 모여 이야기도 하는 장소였습니다. 그러기에 그 곳에서도 그 소금 성분이 빠진 돌들이 여전히 밟히게 됩니다. 그것이 맛 잃은 소금인 것입니다. 그런 배경에서 예수님은 소금이 맛을 잃게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버려져서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라고 한 것입니다.
'소금'에 대한 배경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γη, earth)의 '소금'(αλαs, salt)이라고 했습니다 (마5:13). 소금이 맛을 잃으면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짜지 않은 소금이 있을까? 과연 짠맛을 잃은 소금이 있을 수 있을까? 소금이 조금 덜 짜거나 더 짤 수는 있겠지만 전혀 짜지 않아서 밖에 버려지는 소금이 있을 수 있을까? 이 말씀을 오늘날 우리의 환경에서 생각하면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바닷물을 정제한 소금을 쓰므로 맛을 잃는 소금이 없고 길 가에 버려지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지역에서는 정제한 소금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땅이나 산에서 나는 소금 돌을 사용했습니다. 유대의 사해 주변에는 땅 속에 소금 성분인 나트륨(Nacl)이 많이 매장되어 있고 산 전체가 소금 성분인 나트륨 덩어리로 되어 있습니다. 그 지역은 과거에 소알과 소돔과 고모라 등의 성읍이 있던 지역이었는데 지층이 갈라지고 화산이 폭발한 지역입니다. 그 재앙이 끝난 다음에는 그 지역이 내려앉아 움푹 패인 지역이 되었고 그 곳에 물이 고여 사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해는 해발 -400m나 낮은 곳입니다. '사해'(死海)는 '죽은 바다'라는 뜻입니다. 소금기가 많아서 생물이 살 수 없는 바다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사해는 염해로 불리기도 하는데 '염해'(鹽海)은 '소금 바다'라는 뜻입니다. 사실 사해는 남북의 길이가 80km나 되기 때문에 바다라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사방이 막힌 호수입니다. 그 사해의 남쪽에는 거대한 소금 덩어리로 된 소금 산이 있는데 그 소금 산 밑으로는 지하 7-8km까지 거대한 소금 광산이 있습니다. 사해는 이 소금 산과 소금 광산이 계속 녹아서 소금의 농도가 33%나 되었습니다. 보통 바닷물의 소금 농도가 3.7%이니까 그에 비하여 9배나 됩니다. 그 정도 농도는 소금이 더 이상 녹을 수 없는 포화상태입니다. 사해는 그처럼 소금의 농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 생물이 살 수 없고 사람이 들어가 누우면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둥둥 듭니다. 여름이 되어 물의 증발량이 많아지면 수면 위에 소금 결정체가 둥둥 떠다닙니다. 그 정도로 사해와 그 주변에는 소금이 풍부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소금을 사해 주변 소금 산에서 캔 소금 돌(石鹽)을 사용했습니다. 여인들은 시장에서 그 소금 돌을 사 와서 집에서 사용합니다. 그런데 그 소금 돌은 산에서 캔 것이기 때문에 나트륨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순물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그 소금 돌을 사다가 밤새도록 물에 담가 둡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면 소금만 우려 나와 소금물이 됩니다. 그 소금물로 음식을 요리하는데 사용했습니다. 그 소금 돌이 며칠 지나면 소금 성분이 완전히 다 빠져 나와서 짠 맛이 전혀 없는 돌 덩어리만 남게 됩니다. 그 돌은 밖에 버립니다. 그러기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가 과거에 조개껍질이나 연탄재를 길에 버리면 사람들이 밟고 다니듯이 사람들이 밟고 다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돌을 지붕에 뿌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유대 지붕은 평평했는데 그 지붕의 흙 위에 그것을 뿌렸습니다. 그러면 지붕의 흙이 단단해지고 지붕에 샐 수 있는 구멍들이 생기지 않게 됩니다. 당시 지붕은 사람들이 기도도 하고 모여 이야기도 하는 장소였습니다. 그러기에 그 곳에서도 그 소금 성분이 빠진 돌들이 여전히 밟히게 됩니다.
소금의 가치는 대단합니다. 유대인의 속담 가운데 소금에 대한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포도주 없이는 살아도 물없이는 못산다. 후추없이는 살아도 소금없이는 못산다" 이 속담처럼 소금은 옛날부터 사람들에게 가장 가치있고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소금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느냐면 화폐로 사용할 정도였습니다. 당시에는 봉급을 소금으로 주기도 했습니다. 봉급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인 '쎌러리'(salary)가 소금을 뜻하는 '쏠트'(salt)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 나라 고대사를 보면 소금을 얻기 위해 전쟁까지 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 배경에서 예수님은 소금이 맛을 잃게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버려져서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라고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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